[엑스포츠뉴스=이지은 기자]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 안 좋을 때가 지나면 좋은 때도 오고…"
기나긴 부상의 터널을 뚫고 돌아온 롯데 자이언츠 강영식(34)은 달라져있었다. 수술 뒤 재활까지 마쳤으니 몸이 건강해진 게 첫 번째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애써 움켜쥐고 있던 많은 욕심들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건강한 마음까지 따라왔다.
강영식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15년차 베테랑 투수에게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서른셋의 나이에 다시 한 번 기약없는 수술-재활의 늪에 뛰어들어야 했다. 강영식은 올시즌 스프링캠프에도 참여하지 않고 시즌초 2군에 머물며 재활에 매진했다.
5월이 돼서야 1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5월 12일 사직 넥센전을 앞두고 1군에 등록된 강영식은 14일 3연전 마지막 날에서야 복귀전을 치렀다. 결과는 1이닝 4실점(2자책). 넥센의 타선에 일격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5월에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14.73점. 도무지 제공을 뿌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랬던 강영식이 9월에 완벽히 부활했다. 9월 5경기에 등판하는 동안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1.93점. 시즌 방어율은 4점대까지 떨어졌다. 특히 10일 사직 삼성전에서는 9회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⅔이닝 무실점으로 롯데의 1점차 승리를 지켜냈다. 자신의 시즌 첫 세이브 기록이었다.
강영식 자신은 사실 이날 등판을 예상치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정대현의 앞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자신보다 정대현이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강영식은 "나가려고 몸까지 다 풀었는데 8회 정대현이 나가는 걸 보고 '아 내 임무는 끝났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9회에 나가라고 해서 정신없이 나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생각할 여유 없이 그냥 던졌기에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는 의미였다.
올 시즌 강영식의 달라진 마음가짐은 여기에 있었다. 바로 '잡념 없애기'다. 강영식은 "나한테 집중되려고 하면 머리에 생각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혼자서 별 생각을 다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들어오면 그냥 던져버린다"며 자신의 지난날을 웃어넘기는 여유를 부렸다.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 강영식은 '인정하기'라는 방법을 택했다. "예전에는 마운드에서 안 좋으면 불펜에서 좋았던 것이 뭐였는지, 안 좋았던 것이 뭐였는지 떠올리며 좋아지려 애썼다"던 강영식은 "하지만 이젠 안 좋으면 그냥 안 좋다고 인정한다. 그 와중에 좋은 부분으로 승부하려 한다"며 속내를 밝혔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베테랑의 여유는 신인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성민, 김원중 등 롯데 불펜을 책임질 신인급 선수들에 대한 관리도 강영식의 몫이었다. 강영식은 "정대현 같은 고참들과 함께 상대 타자나 등판 상황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9월 ERA 2.52(리그 1위) 롯데 불펜의 부활은 여기서 비롯됐다.
"(김)대륙이랑 (강)민호가 한 거지, 내가 한 게 아니다." 시즌 첫 세이브를 축하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강영식은 펄쩍 뛰었다. 제가 잘 던진 것이 아닌 동료 선수들의 덕분이라는 정답같은 대답이 나왔다. "대륙이한테 뭘 사줘야할지 모르겠다"며 웃는 강영식에게서 느껴지는 힘. 역시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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