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7.02 00:31 / 기사수정 2005.07.02 00:31
-조우-
"좀더 빨리!좀더 빨리 움직여!"
코치의 지시에 따라 일련의 선수들이 녹색의 필드를 전속력으로 오가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곳은 F대학교 럭비부 부원들의 훈련현장.곧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코치의 휘슬 소리와 동시에 선수들은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
"어이구,코치님.오늘은 정말 심했어요."
"심하긴,이제 곧 춘계 대회가 열린다.그때에 맞춰 최고의 몸을 만들어 놔야 할것 아니야."
코치의 말에 선수들은 울상을 지으며 서로들 불평을 해대었다.이때,
"코치님 말대롭니다.선배라고 하는 양반들이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해대서 부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자리에 앉아있던 선수들은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다 보았다.그곳에는 다른 선수들보다 몸집이 작은 한 남자가 럭비공을 한 손으로 짚은 채 훈련이라고는 받지 않은 것 마냥 여유롭게 서 있었다.
"최창진!"
"최창진,이 2학년 자식이!"
"코딱지만한 SH(Scrum Half.럭비의 포지션 중의 하나.상대적으로 체격이 작다)새끼가 죽고싶어서 떠드는 거냐!"
최창진이라고 불리운 작은 남자와 다른 선수간에 갈등이 증폭될 무렵,저만치에서 한 여성이 손에 하얀 상자를 들고 달려왔다.
"창진,그렇게 서있으면 어떡해?"
"혜린?"
"연습때문에 다리가 퉁퉁 부어있잖아.이쪽으로 와봐.내가 아이싱 해줄 테니까."
럭비부의 매니저인 혜린은 창진의 손을 잡고 그를 부실 옆으로 데리고 갔다.
.
.
.
"그래서,또 선배들이랑 싸운거야?"
"별수있어?또 한심하게 구는데......아!"
혜린은 창진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고는 발목에 얼음을 가져다대었다.
"창진이라고 잘한것 하나도 없어.걸핏하면은 선배들에게 대들기만 하고.선배들도 지금까지 잘 참아온 거라고."
"........"
"내일이라도 좋으니 선배들에게 가서 잘못을 사과해.그개 럭비부 분위기 개선에도 도움이 될거야."
"........몰라."
"끝까지 고집이다."
혜린은 창진의 발목에서 얼음을 떼었다.
"그럼 난 간다.잘 생각해봐."
"........."
홀로 남겨진 창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거 골치아프게 됐군."
.
.
.
다음날,조금 늦게 럭비부실에 도착한 창진은 부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부실에는 이미 코치와 매니저,선수를 포함한 부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할듯한 일촉즉발의 분위기.자신 때문인가?창진은 아무래도 사과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생각하고 바로 앞에 있는 선배에게 말을 건넸다.
"저,저기 선배.어제는 내가....."
"으.으흑......창진아.....으흐흐흑!!!"
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선배가 울음을 터뜨렸다.당황한 창진은 선배를 달래며 이유를 물었다.
"아니,내가 잘못한건 아는데.......왜그래요?"
"아니.....그게 아니라.....창진아......사실은......우리 럭비부......오늘 아침에...없어졌어......으흑...."
"네?"
그 말을 들은 창진은 곧바로 감독에게 달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감독님,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우리 럭비부가 없어지다뇨?"
".......잘 들어라 창진아.우리 럭비부가 근래 각종 대회에서 주목할만한 성적을 얻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근래 우리 대학의 재정 형편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그로 인해 오늘 아침 총장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내리신 결정이 이것이다.너로서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그럴리가요.그럴 리가 없어요."
"인정해야돼,창진아."
"젠장할.영감탱이,이걸 인정하라고?뭐야.난 10년간 럭비만 하면서 살아왔는데,이제와서 럭비를 포기하라고?제길,전부 뒈져버리라고 그래.전부!!전부우우우!!!"
창진은 책상을 내리치며 절규했다.다른 부원들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
.
.
저녁,인적이 없는 주택가의 뒷골목.창진은 혜린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헤어진뒤 집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혜린과의 대화에서도 그는 아무런 답을 찾을수 없었다.다만,조금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혜린은 매니저 생활을 그만두고 보통의 대학생활을 할 것이라고 한다.그럼 이제부터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창진은 막막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집까지의 거리가 얼마 안남았을때,반대방향에서 다가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툭'
둘이 교차하는 순간,둘의 어깨가 부딪치며 지나갔다.창진이 입을 열었다.
"이봐,아저씨."
"응?"
"뒈지고 싶어?"
어깨를 부딪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학생.이것참 미안하네.내가 사과하지."
"사과한다고 해서 될일 같애?이 새끼가 말이야..."
남자는 창진보다 체격은 컸지만 인상은 선해 보였다,싸움 같은 것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것 같은 인상.짓밟아 버리고 싶었다.저 남자를 짓밟아 지금의 착잡한 기분을 해소해 버리고 싶었다.
"시비거는건가,학생?그러면 안되는데...."
"어서 쳐맞을 각오부터 하시지.어서!"
"자꾸 그러면...이쪽에서도 나가주지."
남자가 주먹을 올리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일반 복싱보다도 높이-주먹을 눈썹이나 그 위까지-가드를 쳐올리고 앞다리를 덜렁거리는 스탠딩 자세.길거리 싸움을 질리도록 해본 창진으로서도 처음 본,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자세였다.
"뭐야,싸움 한번도 안해본 자세구만.자,간다!"
창진이 남자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순간,남자의 얼굴이 주먹의 타점에서 사라졌다.
"!?"
다시한번 주먹을 내지르는 창진.그러나 이번에도 남자의 얼굴은 주먹에서 크게 빗나가 있었다.
"뭐,뭐야?"
"이번엔 내가 간다.학생!"
남자가 땅을 가르듯 낮게 발을 휘둘렀다.그대로 창진의 허벅지에 꽂혀들어가는 킥.마치 전력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듯한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지며 창진은 그대로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으억!"
"마지막이다!"
창진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어오는 남자의 오른발이었다.그리고,별이 번쩍이며 창진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
".....이봐."
".......?"
".....정신이 느나?"
눈을 뜬 창진의 앞에는 자신을 기절시켰던 예의 남자가 서 있었다.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서보려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창진은 입만을 열어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다...당신 대체 누구야?누군데 이렇게 센거야?"
"누구긴,지나가는 행인이지."
"나도 왠만큼은 세다고 생각했었어.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센거지?"
"답이 알고 싶은 건가?"
창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더러운 성격만 고쳐주면 알려줄 수도 있지."
".....생각해 보지."
"답은 여기에 있어.그럼 난 가본다."
"이,이봐?어디가?"
남자는 종이 한장만을 던진채 어디론가 가버렸다.잠시후,겨우 몸을 움직일수 있게 된 창진은 종이를 손으로 집고 읽어 보았다.종이는 남자의 프로필이 적힌 명함이었다.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강성 무에타이 체육관 사범 윤 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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