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은경 기자] 도핑테스트 관련 질문이다. 강수일과 박태환, 최진행까지 종목과 상황이 다른 선수들에게 서로 다르게 적용된 어떤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일단 알아둘 것이 있다. 통상적으로 운동선수가 도핑 테스트를 받을 때는 소변 혹은 혈액 샘플을 A샘플과 B샘플 2개로 나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관계자는 “샘플을 두 번 채취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채취할 때 병 2개에 나눠담는 것이다. 오염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샘플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선수가 결과에 불복할 경우 B샘플까지 검사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B샘플 결과도 양성일 경우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확정한다.
질문은 여기서부터다. A샘플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선수는 그 순간 선수자격이 정지될까? 아니면 최종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선수자격에 문제가 없을까. 다음 사례를 살펴 보자.
사례 #1 강수일
강수일(제주)은 지난 11일 도핑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통보를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받았다. 당시 강수일은 축구대표팀에 선발돼 말레이시아에 있었다. 강수일은 즉시 귀국조치됐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은 도핑에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가 A매치에 출전할 수 없다며 결과가 나오자마자 강수일의 도핑 양성반응 사실을 공개했다.
강수일은 메틸테스테론이 검출됐다는 결과를 통보받았고, B샘플 검사를 요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즉각적인 귀국 요청에 대해서도 항명하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의 조연상 팀장은 “양성반응이 나온 순간 해당 선수는 임시자격정지를 받는다. 그래서 대표팀에 있던 강수일을 귀국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축구연맹에서 도핑 관련 세부 규정은 문서화돼있지 않다. 그러나 철저하게 국제반도핑기구(WADA)와 KADA의 규정에 따른다는 내부 방침이 있다.
KADA는 홈페이지를 통해 도핑 제재 및 항소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도핑방지규정 위반이 발생하는 순간 임시자격정지와 통보가 동시에 이뤄진다. 대한체육회의 선수 반도핑교육 때는 “도핑 양성반응 통보를 받는다면, 그 순간부터 이후에 열리는 대회에는 나가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은 “축구에선 FIFA와 AFC가 철저하게 WADA 규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프로축구연맹도 이에 따라 강수일에 대해 즉각 임시자격정지를 줬다”고 말했다. 강수일에 대한 징계 확정은 이후 징계위원회에서 이뤄졌다. 강수일은 15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사례 #2 박태환
전 수영국가대표 박태환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개막 직전인 9월 3일 WADA가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상시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박태환은 이 결과에 불복해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했고, 10월엔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WADA의 B샘플 검사 결과 역시 양성이었고, 박태환의 소명 청문회까지 열린 후 국제수영연맹은 지난 3월 24일 박태환에 대해 18개월 선수자격정지 징계를 확정했다.
박태환은 WADA와 KADA의 반도핑 규정에 따라 징계가 확정되기 이전인 지난해 9월 3일을 기준으로 이미 임시선수자격정지가 적용됐다. 이에 따라 9월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메달이 모두 박탈됐다. 단체전인 계영(릴레이) 메달까지 박탈당하면서 수영대표팀의 동료들까지 피해를 봤다.
그렇다면 전국체전의 메달은 어떻게 됐을까. 29일 전화 취재 결과 대한수영연맹 직원은 “박태환의 2014년 전국체전 메달 자격과 관련해서는 전국체전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심의위원회가 열린 건 박태환이 도핑 양성반응을 보여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례 #3 최진행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최진행은 지난 25일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금지약물 양성반응에 따른 3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최진행은 상시금지약물인 스타노졸롤 성분이 검출됐다.
최진행의 도핑테스트는 5월 초에 이뤄졌고,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 A샘플 양성반응 결과가 통보됐다. 최진행은 이에 불복해 B샘플 검사를 요청했다. B샘플 최종결과가 통보되고 KBO 징계가 결정된 건 25일이다. 이날 전까지 최진행은 선수자격을 유지하고 1군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한화 홍보팀의 석장현 과장은 지난 26일 본 매체 기자에게 “반도핑규정에 따르면, 도핑검사자는 도핑 검사 사실과 결과에 대해 누설하면 안 된다는 비밀규정이 있다”며 “도핑테스트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담당자를 제외하고는 프런트에서도 진행 상황은 알지 못했고, 결과는 더욱 몰랐다”고 주장했다.
‘비밀 원칙’에 따라 구단은 최진행의 도핑 양성반응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KBO의 박근찬 홍보팀장은 29일 이와 관련한 본 매체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최진행은 양성반응 결과를 통보받은 후 이 결과에 불복해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최종 결과가 나온 건 25일이었고, 2차 테스트까지 끝나야 최종적으로 확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이어서 “KBO엔 아직 도핑검사 결과 통보 후 곧바로 임시자격정지가 적용되느냐 여부를 명시한 규정이 없다. 굳이 규정을 기반으로 이야기하자면 한화가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고 했다.
KBO는 A샘플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어도 B샘플의 최종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진 선수자격이 정지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한화 구단이 ‘비밀 원칙’을 운운하고 KBO 관계자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도핑에 적용시켜 말한 것은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얼마나 WADA의 반도핑규정에 대해 무지한지 드러내는 부분이다.
박태환의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KADA 관계자는 “비밀 원칙은 물론 있다. 그 원칙에 따라서 WADA가 지난해 박태환에게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양성반응을 통보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비밀이다. 그러나 박태환에 대한 임시선수자격정지는 이미 A샘플 양성반응이 확정된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 때문에 박태환에 대해선 지난해 9월 3일 이후 참가한 대회의 메달 박탈여부를 심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성반응이 나오면 곧바로 임시선수자격정지가 시작된다는 원칙에 따라 프로축구연맹은 A샘플 양성 통보를 받자마자 인정사정 없이 강수일을 귀국시켰다.
다만 KADA 관계자는 “프로야구의 경우 KADA가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KBO 규정이 KADA 규정과 다르다면 KADA에서 그를 제재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KBO에는 도핑 검사 후 경기 출전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다.
KADA의 규정을 기준으로 하면, 최진행은 A샘플 양성반응 결과가 나온 시점부터 임시선수자격정지가 시작되는 게 맞다. 그러나 한화 구단은 엉뚱하게도 반도핑규정의 ‘비밀원칙’을 근거로 최진행의 경기 출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화 구단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KBO가 KADA 반도핑규정을 충실히 따른다면, 박태환의 사례처럼 최진행의 경기 출전에 대한 추후 징계가 뒤따라야 맞다. 만일 한화나 KBO가 “KBO의 규정은 KADA 규정과 다르다”고 설명했으면 모르지만, ‘비밀 원칙’이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운운한 것은 반도핑규정을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다.
만일 내년에 또 도핑 양성반응을 보인 선수가 나온다면 KBO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그때는 최진행이 아니라 과거의 다니엘 리오스처럼 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선수가 걸린다면? 그리고 이미 그 선수가 도핑테스트 양성반응 이후 징계가 확정되기까지 팬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3~4승을 추가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프로야구는 약물의 영향을 받은 기록과 순수한 땀으로 만들어진 기록이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엑스포츠뉴스 스포츠팀장
[사진=강수일, 박태환, 최진행(위부터) ⓒ 엑스포츠뉴스DB]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