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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 후보] 두려움 없이 ’수비수 김형일’

기사입력 2007.11.06 18:46 / 기사수정 2007.11.06 18:46

편집부 기자

수비수의 태클

골은 축구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수비수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 순간을 막아선다. 환희의 직전 그들의 태클은 무자비한 테러가 된다. 공격수들의 아름다운 드리블과 그들의 신체에 가해지는 두발의 위해는 때때로 수비수들 자신의 인성과 함께 비난 되는 행위이다.

그러나 모든 태클들이 비난을 받는 것은 아니다. 상대 공격수의 신체에 해를 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볼을 쟁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뛰어드는 태클이라면, 그리고 그 태클이 성공하였을 때는 수비수들 역시 갈채와 환호를 받는다.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상대의 엇갈리는 두 다리 사이로 자신의 몸을 던지려면 그 시도 자체에서부터 용기가 필요하다.

대전 시티즌의 수비수 김형일의 태클 역시 환호받기도 하나, 비난받기도 한다. 그 자신은 상대 선수에 대한 신체적인 위협을 목적으로 태클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183cm에 83kg의 장신 수비수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대 공격수는 드믈 것이다.

그러나 김형일은 정당하게 들어간 태클은 좋은 전술이고 좋은 테크닉이라고 한다. "태클에 대해 나쁜 평도 있지만, 제 태클이 멋있게 들어가서 상대의 공격을 멋있게 끊어준다면, 저 스스로 뿌듯하기 때문에 그런 평들에 대해서는 웃을 수 있어요.” 라며 싱긋 웃어보이던 김형일은 이제 겨우 K-리그 1년차가 된 대전의 수비수이다. 

1년차이지만, 리그 득점 1위인 경남의 까보레가 거친 김형일이 리그 수비수들 중 제일 까다롭다 손꼽아 주었던 것은 수비수에게는 칭찬으로 들릴 말이다. 수비수 출신이었던 前 대전 최윤겸 감독은 “공격수는 필드에 나가면 옷깃 한번 세워주고, 관중들을 위해 멋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수비수가 경기 후 깨끗한 유니폼으로 필드를 나오는 것은 수치다.” 라 했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이는 바로 김형일이었다.

김형일 역시 자신의 이야기 같다며, 웃어보였지만, 바로 정색한 얼굴로 더 몸을 사리지 않고, 집중하고 막아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다음 시즌의 그의 플레이에 대한 기대를 높여보아도 될 듯하다. 더욱이 올해는 3백에서건 4백에서건 스토퍼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과 달리 팀 내 수비라인의 정비가 이뤄질 내년에는 스위퍼로써의 가능성도 조심스레 테스트 중이다.

수비수의 눈물

공격수들은 자신으로 인해 경기에서 이겼다 말하지만, 수비수들은 자신으로 인해 진 경기들을 말한다. 자신이 막아서지 못했던 상대 공격수의 슈팅이 팀의 골네트를 흔들던 장면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공격수들은 득점을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과 에너지를 한순간 한곳에 쏟아 붇는다. 그리고 그 한순간만큼은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0.1초 후 그들은 세상의 ‘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비수들은 한순간 한곳에 에너지를 쏟아내서는 안 된다.

그들은 90분 내내 긴장하여야 하고,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된다. 매 순간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면, 그들의 몸과 부딪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해서는 안 된다. 90분 동안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한순간의 실수면 그들은 바보가 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누군가 수비수 그들에게 자신의 책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서였는지 K-리그 1년차인 이 수비수가 필드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은 모두 팀이 승리를 얻지 못하였던 순간들이었다.

4월 1일, 대전은 홈에서 경남을 맞이했다. 김형일은 머릿속 살이 하얗게 보일 만큼 머리를 바짝 밀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유니폼 안에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두사부일체’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간의 불화로 인한 폭력 사건이 불어져 두 사람의 거취가 불분명해지자, 선수들은 자신들의 스승이었던 두 지도자를 위해 메시지를 담고 그라운드에 들어섰던 것이다. 하지만, 양 팀은 모두 득점 없이 경기를 끝내야 했고, 그렇게 0대 0으로 경기는 끝을 맺었다.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이 울려 퍼지자, 그라운드에 머리를 묻은 채 일어서지 않던 김형일이 보였다. 한참을 그리 있다 일어선 그의 두는 붉게 충열되어 있었다.

10월 21일 6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을 만났던 대전은 홈이 아닌 원정길에 올랐어야 했다. 결과는 2대 0.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대전의 2007시즌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기 후 대전의 하얀 어웨이 유니폼은 짙푸른 진딧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의 90분이 얼마나 격렬했고 고단했는지를 보여주던 얼룩은 선수들의 눈물처럼 유니폼에 번져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은 그들과 함께 먼 길을 달려온 팬들 앞에 섰다. 팬들의 노래를 들으며, 김형일은 눈물을 떨어냈다. 고개를 숙여 눈물을 감출 사이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풀물이 들어버린 그날의 유니폼을 대전 팬들에게 던져주고 난 후, 맨몸이 되어서 믹스트 존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은 금세 터질 듯 붉어져 있었지만, 낯선 기자들의 시선이 그의 눈물을 막았다. 남들 앞에선 울고 싶지 않았던 남자의 자존심. 

"저는 그냥 그때뿐이에요. 그때는 북받쳐서 그랬지만, 슬픈 건 빨리 잊는 편이기 때문에 기억 없는데요.(웃음)" 며칠이 지난 후에는 웃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얘기할 수 있었지만, "남자도 사람인데 울죠. 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안 좋은 모습이니까." 라며 자신의 눈물을 들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수비수의 마음

때로는 막시무스라 불리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강백호라고 불리는 만큼, 필드에서 김형일은 플레이 역시 거칠기 그지없다. 정작 자신은 강백호를 좋아하진 않지만, 짧게 자른 머리를 강백호가 연상되도록 붉게 물들였던 것은 팀의 색깔로 머리를 물들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잠시 기르는 듯했던 머리를 리그가 끝나기 두 경기 전, 다시금 짧게 치고 나타났던 것은 6강 플레이오프를 향한 ‘마지막 발악’ 이라고 한다. 남은 두 경기에서 모두 이겨야지 만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마지막 티켓을 쟁취할 수 있었던 대전에게 다른 경우의 수란 없었다.“마지막 발악한 번 해봤어요.(웃음) 두 경기 모두 이겨 보려고, 제 마음을 위해서요.”

6강 플레이오프전을 목표로 짧게 머리를 깎았던 그의 유니폼 바지에는 플레이오프 6강 경기가 끝난 후, 쓸려간 잔디의 자국이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수없이 상대의 발밑으로 자신의 몸을 날렸던 흔적이었다. 하지만, 2007시즌을 보내면 그에게 남은 상흔은 바지에 물든 풀빛만이 아니었다.

5월 27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발에 맞아 윗입술을 다쳐 제대로 지혈도 못한 채, 거즈를 입에 물고 뛰어야 했었을 때도, 경기 후에는 입술을 꿰매야 했을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다.

지금 그의 오른쪽 눈 옆에는 기다란 상처가 하나 나있다. 김호 감독이 대전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여름이었다. 연습 중 태클하는 다리에 뛰어들다가 무릎에 눈두덩을 맞으며, 꿰매야 했던 자리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은 흉터로 남아 있었다. 연습 때조차도 몸을 사리지 않아 대려, 감독이 그를 걱정할 정도이니,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경기 중에도 공을 향해 상대 공격수가 발을 뻗을 때, 자신의 위치가 그의 뒤여서 함께 발을 뻗어 자신의 공으로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는 주저 없이 몸을 앞으로 날린다. 섬뜩할 정도로, 공을 향해서라면 지체없이 상대의 발 앞에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 댈 만큼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김형일에게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뛰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이기고 싶어서요.”

그것뿐이었다. 수비수의 눈물과 희생의 목표는 승리. 수비수들은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다. 두려움 없이 팀의 승리를 위해 그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 만이 수비수가 될 수 있다는 듯, 김형일은 그러한 존재였다.

수비수 김형일

수비수 김형일은 지금 또 다른 목표에 도전 중이다. 어찌 보면 욕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수비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리그 6위 팀의 수비수이다. 하지만, 그는 2007 K-리그 신인왕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전의 6강이 확정되었던 10월 14일 대전-수원전에서 이미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수원의 하태균을 의식한 기자들의 질문에 2007 신인왕 자리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었다. 플레이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언변으로 미소와 함께“신인왕, 솔직히 욕심이 나요.”라던 그의 답변에 오히려 질문을 던진 기자가 웃으며 한발 물러섰을 정도.

골은 사람들을 환호토록 한다. 변덕스런 숭배자들은 항상 골을 넣는 그들의 이름을 외쳐줄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골만큼 값진 패스가 존재하기도 하고, 골만큼이나 값진 태클도, 선방도 존재한다. 그리고 변덕스런 숭배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항상 공격수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우리는 피치위에 떨어지는 땀과 눈물 모두에 감동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김형일의 플레이에 환호한다. 두려움을 뚫고 뛰쳐나와 몸을 던지며, 공을 향해 보여주는 이 수비수의 열정을 쉽게 잊지 못한다. 그런 김형일의 신인왕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은 상태이다. 골이 아니기에 ‘기록되어지지 않는 플레이’들이 게임을 지배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하는 것은 축구는 가슴으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2007 K-리그의 신인왕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 수비수에게로 영광이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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