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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그리스 맞붙는 곳, 미리 가본 크레이븐 코티지

기사입력 2007.01.25 20:56 / 기사수정 2007.01.25 20:56

편집부 기자

미리 가본 크레이븐 코티지(Craven Cottage)

[엑스포츠뉴스 = 런던, 안희조 기자]  2007년 첫 A매치 데이인 2월 6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그리스와 평가전을 치른다. 장소는 다름 아닌 영국 런던.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위한 전지훈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평가전을 홈에서 치러왔던 지금까지를 생각한다면 대한축구협회의 이 같은 결정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는 주요선수들의 소집을 쉽게 하기 위해 유럽의 제 3국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다른 축구강국의 사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우리로서는 흔치 않은 사건. 어쨌든 이동국을 포함해 여러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줄을 짓는 가운데 맞이하는 첫 번째 중립국 평가전은 남 다른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 있는 첫 게임이 벌어질 장소는 바로 프리미어리그 풀럼FC(Fulham FC)의 홈 구장 크레이븐 코티지(Craven cottage). 런던 중심부에서 약간 서쪽에 치우쳐있는 풀럼지역은  템즈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조용하고 평온한 곳이며 그 풀럼의 중심에 바로 크레이븐 코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이 경기장에서 바로 풀럼과 이영표가 뛰고 있는 토트넘의 런던 더비경기가 펼쳐졌다. 시즌 중반의 치열한 순위경쟁과 함께 런던지역의 자존심대결로도 관심을 모은 경기였다. 

 경기장에서 가장 가까운 튜브(지하철)역인 풋니 브릿지(Putney Bridge)역에서 크레이븐 코티지로 가는 길은 풀럼과 토트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로 경기시작 두 시간 전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런던지역의 더비 경기라 토트넘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걷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람들을 따라 약 15분 정도 걸으니 템즈강변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경기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경기장의 외관은 주변의 주택들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주변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자칫 경기장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다소 허름해 보이는 이 경기장은 사실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풀럼이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한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1879년 ‘세인트 앤트류 교회 학교 축구클럽(St Andrew's Church Sunday School FC)’으로 클럽을 결성한 풀럼은 1888년 현재의 ‘풀럼 FC'라는 명칭으로 바꾼 뒤 1896년부터 크레이븐 코티지에 정착해 클럽의 역사를 써 오기 시작했다. 크레이븐 코티지에 오기 전에는 현재 챔피언십에 속해있는 퀸스파크래인저스(QPR)와 함께 홈구장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1896년 이후에는 크레이븐 코티지를 떠나지 않았다. 

 1900년대까지의 크레이븐코티지는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스탠드가 없었기 때문. 결국 당시 런던 시의회의 결정에 따라 새로운 스탠드 건축이 진행되었고 스코틀랜드 건축가인 아치발드 라이치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춘 도로 쪽 스탠드를 공사, 1905년에 완공하게 된다. 공사비는 15,000파운드로 당시의 최고 금액이었다. 스티브네이지 로드 스탠드 (Stevenage Road Stand)로 이름 붙여진 이 강 반대편의 스탠드는 2005년 공사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을 지내기도 했던 풀럼의 가장 대표적인 선수, 조니 헤인스의 교통사고 사망(2005년)을 추모해 조니 헤인스 스탠드(Johnny Haynes Stand)로 이름이 바뀌어 졌다. 스티브네이지 로드 스탠드는 영국 사학협회로부터 ‘후세에 보존되어야 할 건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도 높다.

 사실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만들어 온 풀럼의 역사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1910년대부터 클럽 이사인 헨리 노리스가 의욕적으로 풀럼을 런던 빅 클럽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지만 계속해 실패를 거듭했다. 1938년 밀월과의 경기에서 49,335명의 엄청난 관중동원을 기록하는 등 팀은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1부 리그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고 결국  세계대전까지 겹치며 1949년에야 클럽 역사상 처음, 축구리그 참가 47년 만에 처음으로 1부 리그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1부 리그 진출과 함께 크레이븐 코티지에는 전광판이 설치됐고 홈팀의 응원석인 햄머스미스 엔드 스탠드(Hammersmith end) 에 지붕이 지어졌다. 이 후에도 탬즈강변 쪽에 새로운 스탠드를 공사하는 등 크레이븐 코티지는 풀럼의  1부 리그 잔류와 함께 조금씩 더 완벽한 축구경기장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니 해인스와 조지 코헨이 주도하던 클럽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며 1968년, 풀럼은 다시 2부 리그로 돌아갔고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한  Harrod's owner Mohamed Al Fayed 가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며 클럽의 재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었고 풀럼은 루이 사아, 보아 모르테 등의 활약에 힘입어2001/2002시즌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구장, 크레이븐 코티지는 프리미어리그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당시까지도 크레이븐 코티지의 골대 뒤편은 서서 관전을 하는 입석 스탠드였다. 하지만 1989년 벌어진 비극적인 힐스브로참사의 여파로 ‘테일러 리포트(Taylor report)’에 따른 전면적인 프로축구 무대의 개혁조치가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하나가 모든 1부 리그 경기장의 입석 철폐였다. 크레이븐 코티지의 양쪽 스탠드는 새로운 관중석 공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또 하나, 좌석제를 실시할 경우 고작 20000명 정도에 불과해지는 경기장의 수용규모는 관중들의 입장료를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클럽의 입장에서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며 큰 규모의 재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경기장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는 곧 역사 깊은 크레이븐 코티지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크레이븐 코티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 하거나 새로운 경기장을 건설해 사용하는 것 등, 프리미어리그의 자격조건을 갖추기 위해 클럽은 몇몇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002년 4월 27일 레스터 시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크레이븐 코티지에서의 경기를 잠정 중단했다. 공사가 진행될 동안 풀럼은 인근 라이벌 구단인 퀸스파크레인저스의 홈구장 루프투스 로드 스타디움(Loftus Road Stadium)에 셋방살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구단의 공사 계획을 두고 풀럼의 팬들을 중심으로 많은 반발이 일어났다. 클럽의 역사가 고스란히 서려있는 경기장을 떠나거나 바꾸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 지역을 떠나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것은 곧 지역의 이름인 풀럼을 버리는 것이 되고 영국 기관에 등록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경기장을 허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구단은 대대적인 공사 계획을 중단, 양측 골대 뒤편의 증축과 지정좌석설치로 공사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02/03, 03/04 시즌 동안 껄끄러운 라이벌 구단에 신세를 지던 팀은 04/05시즌을 앞두고 2년 만에 다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토트넘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열린 이날 경기장에는 많은 관중이 입장했다. 사방의 스탠드를 가득 메운 이날의 관중 수는 현재 크레이븐코티지의 정원을 의미한다. 경기장에 모일 수 있는 관중 수는 비록 한정되어 있지만 경기장의 열기만큼은 그 어느 곳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토트넘 원정팬들과 풀럼의 홈팬들이 공존한 풋니 스탠드의 열기는 가장 뜨거웠다.

 크레이븐 코티지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일하게 원정응원단 지정석이 없는 유일한 구장으로 경기장 남쪽의 풋니 엔드 스탠드는 'for away'가 아닌 ‘중립(neutral)'지역이다. 즉 원정팀과 홈 팀의 팬이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기장의 보수공사가 진행되던 2004년 클럽이 리그로부터 중립지역을 만들 수 있는 허가를 얻어냈고 이는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크레이븐 코티지에서는 단 한 번도 팬들과의 심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날 역시도 두 팀의 응원단은 서로의 목소리만으로 그들의 열정을 표현했을 뿐이었다.

 

풋니 스탠드의 오른쪽에는 축구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오래된 영국식 가옥인 2층 집의 발코니에는 경기를 보기 위한 좌석이 설치되어 있고 어김없이 사람들이 앉아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실은 그 곳이 바로 오리지널 코티지. 과거 풀럼구장의 클럽 하우스였던 곳이다. 코티지는 ‘시골집, 오두막’과 같은 집을 뜻하는 단어로 풀럼의 경기장이 크레이븐 코티지인 이유는 바로 그 건물 때문. 이전에는 선수들의 가족을 위한 자리였지만 현재는 특별 가격을 매겨 판매되고 있다.

 코티지의 바로 오른편에는 역사적인 조니 해인스 스탠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지 해인스 스탠드에는 여전히 예전에 사용되던 목재 좌석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 경기장 바깥 도로를 끼고 있는 조지 해인스 스탠드는 관중석 출입구를 비롯해 경기장 사무실, 티켓 오피스, 미디어 출입구, 팬샵 등 경기장 대부분의 시설이 위치하고 있는 건물이다. 조니 해인스 스탠드의 맞은편에 위치한 리버사이드 스탠드는 말 그대로 템즈강을 뒤로 하고 있는 관중석으로 구단 고위 관계자들의 자리와 티비중계석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경기장 어디에도 대형 화면이 없다는 점은 이 오래된 경기장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하나의 아쉬운 증거(?)이기도 했다.

 

또 하나의 런던 더비인 이날 경기는 1-1 무승부로 마감되었다. 홈팀 풀럼이 헬거슨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노장 이적생 몬텔라의 페널티킥 골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듯 했지만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놓고 토트넘의 심봉다가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올 시즌 풀럼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하며 이 날 경기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말브랑크는 친정팀 팬들의 야유 섞인 원성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플레이를 펼쳐나가며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놀라운 선방을 펼친 폴 로빈슨은 토트넘 팬들의 ‘잉글리시 넘버원’이라는 칭찬을 끝임 없이 들었고 대한민국의 이영표는 무난한 플레이로 자신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냈다. 


크레이븐 코티지는 이제 두 번의 홈경기를 치른 다음 잠시 새로운 손님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게 된다. 이 장소에서 맞붙을 대한민국과 그리스의 일전은 경기장 보수 후 2005년 6월 호주와 뉴질랜드의 대표팀 경기가 펼쳐진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A매치다. 어찌 보면 이 경기장은 한국 선수들과도 인연이 깊은 편이다. 

벌써부터 영국은 교민사회를 중심으로 흔치 않은 기회에 적잖이 흥분하는 분위기다. 교민 신문에도 티켓을 판매하는 광고가 일찌감치 나오고 있고 현지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중립국 원정경기. 이정표를 세우기에 역사 깊은 영국의 이 경기장은 너무나도 어울리는 장소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 안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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