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필자는 주한 외국인들이 모여 만든 다소 점잖은 모임에 초대를 받았었다.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고 모든 사람들이 손에 칵테일을 들고 있는 꽤 멋진 모임이었다. 거기서 지인으로부터 핀란드 중년부부를 소개받았다. 필자로선 난생 처음 만나는 핀란드인이었다. 필자는 먼 나라에서 고생하는 핀란드 부부를 위해 고국 핀란드가 한국에선 꽤나 인지도가 높은 나라란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아마도 그들 입가엔 고국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배어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필자는 '한국에선 스웨덴보다 핀란드가 더 유명하다'라고 말해주었다. 예상대로 부부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선 시벨리우스가 아바를 능가하는 모양이군'하는 눈빛이었다.
이어 필자는 조용히 그들을 향해 속삭였다.
"저도 실은 잠자리에 들기 전 ‘자일리톨’을 씹는답니다."
핀란드 부부로부터 '굉장한 핀란드통(通)'이란 평가를 기다리던 필자였지만 그들은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필자는 이윽고 그들의 이해를 도울 만한 제스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양손을 하늘로 올리고 히프를 좌우로 살짝 흔들며 이렇게 점잖은 성량으로 소리쳤다.
"휘바- 휘바-"
그 날 이후, 핀란드 부부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모임에 동석했던 지인은 그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느라 필자를 '한국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한 댄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핀란드에선 잠자리에 들기 전 자일리톨을 씹지 않을 뿐더러 휘바(hyvaa)는 '잘했어요'란 뜻이란다. 게다가 북유럽인을 만났을 땐 '껌'을 화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바로 '아이스하키'를 화제로 삼는 것이 온당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27일 남자 아이스하키 금메달은 어느 나라에게로?제20회 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최종 향배가 핀란드와 스웨덴으로 압축됐다. 25일(이하 한국시간)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은 강력한 우승후보인 체코를 7-3 로 제압하고, 복병 핀란드 역시 빙판위의 붉은 군대 러시아를 4-0으로 샷아웃 시킨 것. 이로써, 스웨덴과 핀란드는 각각 12년, 16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 쾌거를 이루었다.
국내 언론에선 대회 초반부터 이변이 벌어지고, NHL 본토국 캐나다와 미국의 탈락을 충격이라 묘사했지만, 사실 전문가들은 섣불리 우승국을 예언하지 않았었다. 8강 진출국 가운데 스위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의 대표선수들이 모두 NHL 톱클래식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전력차가 크지 않았던 것. 게다가 NHL 리그 일정 때문에 각국의 주요선수들이 올림픽을 불과 3일을 앞두고 소집된 까닭에, 개인기량보다는 팀워크가 중시되는 아이스하키에서 과연 제 기량을 선보일지 의문이 제기됐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우려는 국가대표팀을 3개나 만들 수 있다란 평가 받던 캐나다 '드림팀' 과 NHL 종주국 미국의 탈락 그리고 러시아와 체코의 결승진출 좌절로 현실화되었다.
스웨덴과 핀란드 전력은 '용호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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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과 핀란드의 결승전은 27일 벌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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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HF(국제아이스하키연맹)이 2005년 밝힌 국가별 랭킹에서 스웨덴과 핀란드는 각각 2위와 7위로 링크됐다. 근간 개최된 주요 국제대회 성적도 스웨덴이 핀란드를 압도한다. NHL 선수들이 출전하기 시작한 1994년 릴리함메르 이후, 올림픽 성적도 스웨덴이 금메달 1개를 획득한 반면, 핀란드는 2개의 동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주요 선수 이름값만 따져도 스웨덴이 다소 앞서고 있다는 것이 중론. 하지만 이번 대회 예선부터 준결승까지의 객관적인 성적은 전승을 기록한 핀란드가 우세하며 개인기록 역시 핀란드 선수들이 모두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80년 이후 두 팀의 역대 전적은 1승 3무 1패. 용호상박(龍虎相搏)인 것이다.
'선딘'과 '포스버그'가 이끄는 공격력·경험은 스웨덴이 한수 위스웨덴의 최대 강점은 '포인터맨' 피트 포스버그와 '캡틴' 멧 선딘이 이끄는 공격진. 예선 포함 총 28득점을 기록해 핀란드가 기록한 27득점보다 1점 앞서 있다. 준결승 체코전과 4강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선 7득점과 6득점을 쏟아 부으며 막강 공격라인을 보여줬다. 공격부분 상위권에 고루 이름을 올려놓은 다니엘 알프레드손의 스틱은 아직 꺾일 줄 모르고 있다. 게다가 스웨덴은 풍부한 경험과 선수들간의 팀워크에서 핀란드를 다소 앞선다는 평가다.
현 스웨덴 대표팀은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뛰었던 선수 12명, 1994년 릴레함메르에 뛰었던 선수 역시 3명이나 포함되 있다. 작년 월드챔피언쉽에서 손발을 맞췄던 선수 14명이 그대로 대표팀에 합류한 것도 좋은 팀워크를 유지한 비결이다. 올림픽 결승과 같은 중요 경기에서 경험과 팀워크는 가장 효과적인 우승 노하우다. 이런 점에서 스웨덴의 승리를 예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수비진과 체력면에서 핀란드보다 한 수 아래그러나 장점에 비해 단점도 많다. 먼저, 막강한 공격라인에 비해 수비가 약한 것이 흠이다. 예선포함 준결승까지 스웨덴이 내준 실점은 총 17점. 핀란드의 총 실점 5점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편이다. 더욱이 스웨덴의 고질적 문제 가운데 하나인 유능한 골리 부재는 이번 대회에서도 그대로 노출되었다. 러시아와의 예선전에서 5골을 허용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무엇보다 주요선수들이 대부분 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체력면에선 핀란드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다. 실제 이번 대회 스웨덴은 3피리어드(period)로 갈수록 공격력은 무뎌지고 수비력은 약화되는 좋지 못한 증후를 여러 차례 보여줬다. 세대교체에 실패한 스웨덴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핀란드의 매서운 공격을 막을지 관전의 키포인트다.
핀란드 압박 수비와 골리는 스웨덴을 압도핀란드는 이번 대회 최고 영웅들이다. 복병이라곤 하지만, 그들이 결승에 진출하리라고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었다. 국제랭킹에서도 강호 7강 중 늘 하위권을 맴돌았고 근간에 벌어진 국제 대회에서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이번 대회, 신구 조화에 성공한 핀란드의 약진은 올림픽 출전 사상 두 번째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는 성과를 거두었다.
핀란드의 강점은 패기 넘치는 공격력과 '후디니'도 열지 못 할 자물쇠 수비에 있다. 특히나 루키시절 웨인 그레츠키를 뛰어 넘을 후계자로 지목받기도 했던 티무 셀리니의 노련한 경기진행과 '어메이징' 사쿠 코이부의 빠른 어시스트는 핀란드 공격진의 핵심. 여기다 6골로 득점수위를 달리고 있는 올리 오키넨의 스틱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핀란드 전력의 핵심은 자물쇠 수비에 있다. 수비 집중력과 수비수들의 포어체킹 그리고 압박수비가 매우 뛰어나다. 준결승까지 7경기를 치루며 총 5실점을 허용했는데 이는 스웨덴이 러시아에게 허용한 한 경기 실점과 같은 것이다. 게다가 7경기 중 5경기는 모두 상대에게 0패를 안겨준 것. 유일하게 실점을 허용팀은 카자흐스탄과 미국뿐이었다.
참가국 중 가장 공격력이 출중하다라 평가받은 캐나다와 러시아에겐 단 1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수비 전력의 핵심은 '신성' 골리 안테로 니키마키다. 백업 골리 정도로 평가받던 그는 현재 방어율 1.00을 기록하며 골리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골리 '니키마키'의 체력저하와 다양한 공격패턴 부재가 걸림돌핀란드의 단점도 없지 않다. 우선,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고 있는 골리 안테로 니키마키의 체력저하다. 미카 키프러소프 등 주전골리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이, 니키마키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경기마다 마스크를 써야했다. 현지 소식에 따르면 결승전을 앞둔 니키마키의 컨디션이 썩 좋지 못하다란 전언. 또한, 주로 압박 수비에 전념하다 기습공격과 파워플레이로 효과를 보았던 핀란드의 전략이 만약 스웨덴에게 사전봉쇄 당하면 마땅히 경기를 풀어갈 대안이 미지수란 점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지정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다. 게다가, 두 나라 모두 아이스하키가 종교로 인식될 만큼 인기가 높다. 따라서 이번 토리노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은 양국 모두 사활을 건 명승부가 될 것이다.
동계올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많은 주목과 사랑을 받는 아이스하키. 토리노 올림픽 16일간의 열전은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결승전은 대회 폐막일인 오는 27일 팔라스포트 올림피코에서 열린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