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잠실…"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홍구(25,KIA)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고 있어요.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지난주. 이홍구는 정말이지 다이나믹한 일주일을 보냈다. 23일 광주 롯데전에서 끝내기 몸에 맞는 볼로 '영웅'이 됐던 것도 잠시, 26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역적'이 됐다.
경기 후반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KIA가 역전에 성공하는듯 싶더니 김다원의 어설픈 수비 하나로 동점이 됐고, 승부가 연장으로 접어들도록 점수를 얻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공격 기회인 12회초를 '0'으로 날린 KIA는 12회말 마지막 수비를 맞았다. 가장 좋은 상황은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는 것이었다.
마운드 위에는 마무리 윤석민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쉬운 수비까지 겹치며 1사 주자 2,3루 위기가 찾아왔다. 2아웃이 아니라 1아웃이라 끝내기 패배를 당할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야수를 대부분 기용한 두산은 유민상을 대타로 내세웠다.
유민상은 윤석민의 3구째를 받아쳤다. 이 타구가 중견수 방면으로 날아갔지만 비거리가 짧았다. 3루주자가 태그업을 시도하기에는 무리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 KIA 중견수 김호령이 타구를 잡아 강한 어깨를 앞세워 빠르고 정확하게 홈으로 송구했다. 두산의 3루주자 정진호도 같은 시각 태그업을 했다. 김호령의 송구는 정확했지만, 포수 이홍구가 받아주지 못했다. 이홍구가 타구 방향을 잘못 판단해 공이 왼쪽으로 흘러나갔고, 정진호는 무리 없이 득점에 성공했다. 두산은 끝내기 승리에 환호했다.
사실 이날 패배가 100% 이홍구의 잘못 때문이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책임을 피하기도 힘들다. 때문에 누구보다 괴로운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홍구는 그때를 떠올리며 "솔직히 진짜 죽고싶었다"며 괴로웠던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이홍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9일 광주 한화전. KIA가 1점 앞선 아슬아슬한 상황에 만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6회말이라 여기서 장타 한 방이 나온다면 분위기를 완전히 휘잡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였다. 김기태 감독은 대타 이홍구를 지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홍구는 유창식을 상대로 완벽한 스윙의 만루홈런을 터트리며 벤치의 기대 그 이상을 충족시켰다. 이홍구의 홈런 이후 한화는 초반 날카로운 공격력을 잃었다. 사실상 KIA가 승리에 쐐기를 박는 귀중한 홈런이었다.
이홍구도 이 홈런으로 며칠간의 마음 고생을 덜었다. "홈런을 치고 나니 스스로 조금은 위안이 된다"는 그는 "홈런 치고 나서 팀 선배들이 '너 때문에 울고 웃는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고 하셨다"며 구박 아닌 구박에 미소지었다.
나카무라 KIA 배터리 코치의 조언도 이홍구에게 힘이 됐다. 이홍구는 "코치님께서 기술은 언제든지 기복이 찾아오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언제나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스스로 "칭찬을 받을 수록 잘하게 되는 것 같다"는 이홍구. KIA의 차세대 안방마님은 열심히 맞고, 깨지면서 자라고 있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광주, 김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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