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은 '마왕'이라 불리며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 KCA엔터테인먼트
[엑스포츠뉴스=한인구 기자] "가족과 그동안 살아온 것을 담아낸 음악이니 많이 지켜봐 달라. 이제 나이가 마흔 여섯인데, 더 젊거나 참신해 보이기보다는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 기왕이면 내가 차린 식탁에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한 의자에 앉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겠다."
고(故) 신해철은 지난 6월 정규 6집 part.1 'Reboot Myself(리부트 마이셀프)'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처럼 말했다.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과 날선 생각을 전했던 신해철은 6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드라마틱한 대답'보다는 '현실적인 답'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신해철은 음악으로 '자아 문제'를 다뤘던 것에서 벗어나 '가족과 다음 세대'를 걱정했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어느새 사회의 어른이 된 책임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자랑을 늘어놨다. 또 넥스트의 새 앨범과 넥스트 유나이티드 계획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계획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랜 시간 활동을 멈추고 있었던 '마왕'이 서서히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요계 복귀에 무대의상이 낯설다던 신해철은 10월 27일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같은 달 17일 S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은 뒤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잡은 마이크가 손에 익기 전 누구도 생각지 못한 죽음을 맞았다.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는 "이번 사건이 의료상의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로 남는다면 남편이 위로로 삼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다음 세대를 위한 숙제를 남겼다.
신해철의 유작이 된 '리부트 마이셀프'는 큰 관심을 받진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투철한 실험 정신은 빼곡히 담긴 앨범이었다. 선공개곡 '아따'는 모든 악기 파트를 신해철이 직접 아카펠라로 구성한 노래였다. 그는 악기 소리를 내기 위해 음에 따라 체중을 늘리거나 뺐다. 수록곡 '단 하나의 약속'은 신해철이 가장 애착을 드러낸 곡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작업을 시작해 15년이 걸렸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멜로디 속에 박혀있었다.
신해철은 대중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시선에서 곧잘 벗어났다. 많은 비난에 시달렸다. 때론 그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신해철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많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주장과 할 말은 거침없이 하는 가수였다. 남들이 껄끄러워하는 이야기들은 한데 모여 라디오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타고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그를 '마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해철과 6촌인 가수 서태지도 올해 새 앨범으로 팬들과 만났다. 신해철은 서태지의 이번 앨범 수록곡 '90S ICON(나인티스 아이콘)'에 김종서, 이승환과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해철의 목소리가 담긴 버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나인티스 아이콘'은 현재 한발 물러난 90년대 스타에 대한 노래다.
컴백 공연 '크리스말로윈'을 개최한 서태지는 이날 '나인티스 아이콘'을 부르기 전 "우리의 별이었던 스타와 여러분의 인생도 저물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노래에 대해 설명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서태지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서태지의 시대는 9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컴백을 했지만 대중적이기보단 마니아 음악이었다. 서태지와 이이들을 좋아하던 대중을 버린 셈이었다. 팬들에게 죄송했다"고 말했다.
또 "세월과 함께 잊혀 가는 건 '나인티스 아이콘'에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교류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전했다.
서태지는 대중 곁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 엑스포츠뉴스DB
이렇듯 서태지는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숨겨왔던 과거 연인에 대해 방송을 통해 이야기를 했고 그의 앞날을 응원했다. 딸의 태명이 '삑뽁이'였다는 것을 시작으로 침이 마르도록 딸 자랑을 했다. 집안의 문을 열어젖히고 카메라를 들여놓은 채 그 앞에 섰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에서 서태지는 조금씩 어깨를 가볍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구석에서 베이스 기타 연습과 곡 작업을 하거나 대중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던 서태지는 정현철, 본연의 모습을 조금씩 꺼내놓고 있는 것이다.
신해철의 첫 번째 발인식에는 가수 이승철이 참석했다. 그는 동료 가수들 속에서 "고인의 시신을 화장하지 않기로 했다. 동료들은 사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유족에게 부검 요청을 했고 유족 측에서도 심사숙고 끝에 화장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은 화장 3분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승철은 동료들과 신해철 추모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 5월께 최상위 수준의 가수들과 잠실주경기장에서 5,6시간 동안 진행하는 콘서트다. 이와 관련해 이승철은 "신해철의 추모 공연을 통해 지속해서 열리는 콘서트를 만들고 싶다"면서 "신해철이 있어 행복했다. 그를 떠나보며 신나는 음악도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승철은 11월 9일 일본 하네다 공항에 4시간 억류된 후 입국을 거부당했다. 공항 출입사무소 측은 이승철의 20여 년 전 대마초 흡연 사실만을 언급하며 입국을 막았다. 앞서 그는 8월 14일,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탈북청년합창단과 독도를 방문했고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그날에'를 발표했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한국의 대표 가수 중의 하나인 이승철에게 '독도 지킴이'라는 별명이 달리기 시작했다.
또 그는 여러 프로젝트를 꾸려나가는 중이다. 탈북청년합창단, 김천소년교소도합창단, 대안학교합창단과 노래를 부르고 음악적 멘토로서 그들의 삶을 다독이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Mnet '슈퍼스타K'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후배 가수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승철은 "임무가 주어졌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노래를 통해 사회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사회적인 활동보단 음악 자체에 집중했던 이승철은 이번 일들을 계기로 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들은 이제 시대의 숙제를 남겼거나, 세상과 마음을 나누거나 혹은 미래의 세대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가수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스러지는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순한 음원 성적이 아닌 수치화되지 않은 가치를 추구하는 그들의 찬란한 음악과 흔적들.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게 환호를 보낸다.
이승철은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 진앤원뮤직웍스
한인구 기자 in99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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