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PBBNews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살다보면 가끔씩 기적같은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리틀야구 대표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그런 기적같은 일 중 하나였다.
26일 밤 인천국제공항. 입국게이트 앞이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강동', '강남', '성남' 등 지역명이 새겨진 야구 유니폼을 색색별로 맞춰입은 소년들이 대다수였다. 다들 얼굴에 '어린이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인상이었다. 아이들을 인솔하기 위해 함께 공항을 찾은 리틀야구단 코치들과 학부모들도 입국게이트 앞에서 목이 빠져라 누군가를 기다렸다. 바로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결승에서 미국의 시카고 대표팀을 꺾고 세계 정상에 오른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을 마중하기 위해서다.
이날 인천공항은 추신수, 류현진이 입·출국 하는 날만큼 바쁘고 시끄러웠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번 대회에 나가서 1등한 우리 팀 OO형'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댔다. 생각보다 귀국이 늦어져 예상 시간이었던 밤 9시 15분보다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늦은 시각까지 그곳에 자리한 모두가 설레고 기쁜 표정으로 기꺼이 기다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사실 이번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을 순수한 '한국 대표팀'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면 이들은 '전국구'가 아닌 인천과 서울 지역의 리틀야구단 소속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진행된 국가대표 선발전은 크게 서울·인천/경기/그 외 지역 등 크게 3권역으로 나눠서 선발위원들의 주도 하에 평가전을 진행했다. 3권역 중 서울·인천지역 선수들이 평가전 우승을 차지해 지난달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리틀야구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대회에 출전했고,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덕분에 한국은 29년만에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본선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기적의 시작'이 된 셈이다.
리틀야구연맹 관계자는 "29년만의 출전이니까 지켜보면서도 조마조마했다. 본선 2차전에서는 질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역전승을 거둔게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특히 2012,13 우승팀인 일본은 강한데 우리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지난 2010년부터 LA나 샌디에이고 지역 리틀야구단과 국제 교류전도 하고, 일본 대만과도 정기적으로 시합을 하고 있다. 이번 대표팀에 나간 선수 중에서도 미국 교류전에 출전했던 선수가 4명이나 있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기다림 끝에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리틀야구 대표팀에게는 크나큰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경기를 치렀던 미국 현장에서 뜨거운 응원을 하지 못했던 것을 한풀이라도 하듯, 공항내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박수를 쳤다. 미국 달라스에서 시카고로, 시카고에서 다시 일본 도쿄로, 도쿄에서 인천까지 30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견디고 한국에 돌아온 박종욱 감독 및 스태프들과 선수들은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환영 인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리틀야구 연맹 관계자들은 선수들 도착에 앞서 취재진에게 "선수들이 오랜 비행 시간이 많이 지쳐있기 때문에 미디어데이는 나중에 따로 하겠다. 오늘은 간략하게 취재해주시길 바란다"며 정중하게 부탁했고, 이날 공식 인터뷰는 박종욱 감독과 주장 황재영 단 두 명을 상대로만 간략히 진행됐다.
특히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받은 황재영은 중학교 1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의젓하고 다부지게, 또 어른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그냥 야구가 좋다. 좋아서 많이 본다. 이번에 대회에 함께 나갔던 친구들이랑 나중에 어른이 되서 또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떤 대회였으면 좋겠냐고 취재진이 다시 묻자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라는 답이 돌아왔다.
ⓒ AFPBBNews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 158개팀 약 3000명의 선수들이 리틀야구에 소속돼 있다. 리틀야구연맹 관계자는 "리틀야구 선수들은 주말에만 시합을 하거나 1주일에 3일 정도 훈련을 한다. 엘리트야구가 아니니까 겨울이 되면 인원이 줄어들고, 따뜻해지면 많아진다. 모든 선수들은 반드시 학교 공부와 병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은 아시아태평양 예선에서 대만, 홍콩에 막혀 월드시리즈에 나가지 못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거둔 이번 우승을 바탕으로 우리 리틀야구가 도약할 수 있길 바란다"며 소망을 드러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중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프로선수가 될 수 있을지, 리틀야구가 아닌 엘리트야구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현재 전국 7개에 불과한 리틀야구 전용구장이 하루 아침에 수백개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더 다양한 진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할 몫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야구를 충분히 즐기면서 또 다른 장래희망을 꿈꿀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우리가 이번 리틀야구의 기적을 꼭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