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의 진정한 한 수는 김인권이란 배우였다. 김한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정희서 기자] 온몸을 내던져 관객들을 웃긴다. 코믹 연기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무게 잡는 캐릭터 속 홀로 코믹 매력을 발산하지만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초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김인권이라 가능한 이야기다. 영화 '퀵' 이후 조범구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김인권은 '신의 한 수' 꽁수라는 캐릭터를 만나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지난 2일 전야 개봉한 영화 '신의 한 수'가 개봉 17일 만에 300만을 돌파했다. 이는 올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최고의 기록이다. 동시기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대작 '트랜스포머'와 견주어 손색없는 성적과 관객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기자와 만난 김인권은 영화의 흥행 성적에 "정우성이 로봇보다 낫네요"라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미 김인권은 조범구 감독의 전작 '퀵'에도 출연하며 호흡을 맞췄다. 당시 '퀵'은'트랜스포머3'와 개봉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300만이라는 다소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얻어야 했다. 김인권은 "이번에는 감독님이 작정하고 보여주신 것 같아요. 복수의 정서가 영화에 스며들었어요. '신의 한 수'로 복수한 느낌이랄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인권은 단독 주연작부터 '광해, 왕이 된 남자', '해운대' 등 천만영화의 흥행 일등 공신이라 불리고 있다. 이미 충무로에서는 '김인권 효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신의 한 수'가 흥행몰이를 하는 데 물론 로봇보다 멋진 정우성도 있지만, 단언컨대 김인권이 맡은 꽁수라는 캐릭터도 한몫을 했다. 꽁수는 실력보다 입과 깡으로 버텨온 내기 바둑꾼이다. 시종일관 진지한 캐릭터들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며 극의 긴장감을 조절하고, 관객들에게 쉬어갈 수 있는 웃음을 선사한다.
"생계형 바둑고수로 나와요. 저도 일종의 생계형 배우인 것 같아요. 10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관객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매번 연기할 때마다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까', '어떻게 마음을 열까' 관객의 집중을 돕지 못한다면 제가 출연할 이유가 없죠. 제가 경박한 역할로 많이 깔아드리니 주연분들이 마음껏 멋있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김인권에게 꽁수 캐릭터를 연기할 때 가장 신경 쓴 점을 물으니 "최대한 자존심과 캐릭터로서 존재감을 버리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답했다. "예전 같으면 너무 까불기만 하고, 수다만 떠는 거 아니냐고 망설였을 거게요. 하지만 이제 장점을 보고자 했어요. 까부는 이미지로 고착되는 각오는 했어요. 어설프게 까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리죠. 지질하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끈적하게 윤활유, 꽁수야 말로 감초의 정석이죠."
'방가방가', '강철대오', '전국노래자랑'등 주연으로 하나의 영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온 김인권이 조연으로 '신의 한 수'를 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인권은 정우성, 안성기, 안길강, 이범수 등 화려한 배우들과 함께 하며 비로소 영화계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았다고 밝혔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아름다운지를 아는 영리한 배우였다.
"태석(정우성 분)의 간지(?)는 죽었다 깨어날 때까지 나올 수 없죠. 아직은 안성기 선배님처럼 내공 있는 연기도 불가능하고요. 까불고 웃기고 하수의 모습으로 리액션을 할 때 영화가 하모니를 이루는 것 같아요"
김인권의 첫 출발은 코믹배우가 아니었다. 데뷔작 '송어'를 비롯해, '숙명'에서 레게 머리에 면도칼 솜씨를 선보이며 강렬함을 선보였고, '마이웨이'에서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을 얼마나 극한으로 몰아가는지 보여주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180도 다른 캐릭터들을 제 것으로 소화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코믹연기들 역시 쉴 새 없이 깐족거리지만 '방가방가', '강철대호', '해운대', '퀵' 캐릭터들 속에서는 슬픔과 어둠이 있다. 배우 김인권의 인간적인 면이 묻어난다.
"제가 어둡게 연기하면 정말 진지하게 보시더라고요. 끝과 끝으로 가는 것 같아요. '숙명'이 개봉되고 식당을 갔더니 사람들이 다 나가버렸어요. '해운대' 할 때는 윤종현 감독님은 제 연기를 보고 너무 비호감이라고 톤도 잡아주시고 호감가는 날라리 연기를 가르쳐주셨어요. 그동안, 배우라는 존재는 관객들에게 각인되야 하고, '따먹는 신'이 있어야하고,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있었어요. 극과극의 감성을 지닌 제가 지나치게 연기하면 보는 관객들이 힘들어 할 수 있겠다고 반성했죠. '해운대' 이후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김인권은 이번에 안성기, 이범수와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미래를 내다봤다고 전했다. "안성기 선배님도 '고래사냥', '투캅스', '개그맨' 헤어드레서 등 가벼운 영화를 많이 하시다가 중후한 멋을 선보이고 계세요. 관객들도 훗날 김인권의 무거운 연기를 원하시지 않을까요? 아직 어리다는 게 다행인 것 같아요.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근사한 배우가 돼서 신뢰감을 쌓고 싶어요"
"감독님도 그렇고 주변에서 '앞으로 이범수 같은 배우가 되라'고 하세요. 코믹한 이미지로 많은 역할을 하시다가 어느 순간 진중한 모습으로, 이번에는 근사한 악역까지 하셨잖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앞으로의 행보가 그려질 만한 선배님과 작업한 것이 가장 좋았어요. 물론 정우성 선배님의 길은 불가능하죠. 그쪽으로는 눈도 안 돌릴 거예요(웃음)."
정희서 기자 hee10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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