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이쯤되면 불운이다. '빙속 황제' 스벤 크라머(27·네덜란드)가 또 10,000m 금메달 획득의 기회를 놓쳤다.
19일(이하 한국시각)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부 10,000m가 펼쳐진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 경기전 대다수의 전문가가 꼽은 예상 금메달은 크라머의 몫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라머는 10,000m 랭킹 1위인데다가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12분41초69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세계신기록을 세운 '장거리 황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크라머는 이번 대회 10,000m 금메달을 어느 때 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5000m에서 올림픽기록을 세우며 2연패에 성공했지만, 출전이 예상됐던 1500m 레이스까지 포기하면서 10,000m에 집중했다. 크라머의 계산에 은메달은 없었다. 크라머는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목표는 세계신기록"이라고 밝힐 만큼 우승 그 이상을 내심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소치올림픽 10,000m의 주인공은 크라머가 아닌 요리트 베르그스마(28·네덜란드)였다. 베르그스마는 눈을 의심케 하는 체력과 막판 스퍼트를 과시하면서 크라머보다 5초 이상 빠른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가 기록한 12분44초45는 크라머의 세계신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이승훈(25·대한항공)이 밴쿠버에서 세운 종전 올림픽기록(12분58초55)을 14초 가량 단축시키는 놀라운 성과였다.
이로써 크라머의 세번째 10,000m 금메달 도전도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 2006 토리노에서 동계올림픽 데뷔전을 치른 크라머는 당시 10,000m 7위에 올랐다.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는 코치의 잘못으로 인코스를 두 번 타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러 기록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실격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마저 은메달에 그치자 크라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19일 미국 'ESPN' 보도에 따르면 크라머는 플라워 세리머니를 펼치는 포디움에서 그다지 밝게 웃지 않았고, 베르그스마 밥데용과 함께 퍼레이드를 길게 하지도 않았다. 기록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대표팀 코치인 히어트 카이퍼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크라머가 두 번이나 금메달을 놓쳤다"며 2위에 그친 이유로 '막판 스퍼트'를 꼽았다. 카이퍼는 "보통때 같으면 크라머가 뒤로 갈 수록 자신의 페이스를 끌어올렸을 텐데 베르그스마의 랩타임 기록과 비교하면서 레이스를 펼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에 크라머가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했다.
1986년생인 크라머는 올해 스물일곱살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평균 선수 생활이 30대 초반까지 이어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기회는 남아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크라머가 10,000m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스벤 크라머 ⓒ 스벤 크라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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