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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안현수, '애국심 호소' 韓스포츠에 경종 울렸다

기사입력 2014.02.16 07:16 / 기사수정 2014.02.16 07:44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빅토르 최(1962~1990).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적인 이름이다. 한국계 러시아인은 그는 록그룹 키노의 리더였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그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암울한 현실을 노래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 무렵 그는 러시아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한국인의 피가 흘렀던 그는 향후 러시아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 빅토르 최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24년 후 러시아는 또 한 명의 '빅토르'에 열광하고 있다.

안현수(29, 러시아명 빅토리 안)는 15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전에서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는 러시아 쇼트트랙에 첫 올림픽 메달(1500m 동메달)을 안겼다. 또한 1000m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쇼트트랙의 첫 번째 올림픽 챔피언인 안현수에게 축하 전문을 보냈다. 그는 더 이상 한국인 안현수보다 러시아인 빅토르 안에 가까웠다. 러시아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을 등에 업고 '분노의 질주'를 펼쳤다.

반면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신다운은 실격처리 되면서 메달을 따내는데 실패했다. 한국 스포츠는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 중국 일본과 비교해 선수 인프라가 열악하다.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스포츠는 강한 애국심에 호소해왔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스포츠 선수에게 최고의 영광이었고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해 뛰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안현수는 한국 스포츠의 내셔널리즘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 선수다. 2006년 토리동계올림픽 3관왕에 등극하면서 '쇼트트랙 황제'란 칭호를 얻었다. 김기훈-김동성의 뒤를 잇는 재목으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비상은 추락으로 이어졌다.

안현수는 과거 부상을 당한 뒤 복귀하는 과정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과 갈등을 겪었다. 또한 쇼트트랙 파발 싸움에 휘말려 궁지에 몰렸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그는 한물 간 노장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안현수는 스케이트를 벗고 싶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픈 마음이 컸지만 소속팀인 성남시청까지 해체하며 졸지에 갈 곳 없는 미아로 전락했다.



국적을 옮기는 방법 외에 안현수가 선택할 길은 없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문을 두드렸지만 러시아 쪽으로 선회했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에서 열리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동계 종목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유능한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고 선수 귀화에 나섰다.

갈 곳 없는 안현수를 받아준 곳은 한국이 아닌 러시아였다. 결국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소식이 전해졌지만 국내 팬 대부분은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과거 강한 내셔널리즘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인들의 정서를 생각할 때 선선한 충격이었다.

안현수는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태극기가 아닌 러시아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개인'대신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했던 한국 스포츠의 '내셔널리즘'이 새로운 전화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안현수 ⓒ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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