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교차로에 서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23)가 은퇴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역 무대를 떠난 뒤 한국 피겨에 대한 관심은 크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열악한 선수층과 선수전용링크 하나 없는 환경에서 김연아가 등장한 것은 '기적'이었다. 김연아의 영향력은 피겨 지망생들을 아이스링크로 불러 모았다. 많은 기대주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지만 '김연아가 없는 한국 피겨'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소연(16, 신목고)과 김해진(16, 과천고)이 선전하고 있다. 이들은 노비스(만 13세 이하)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두 선수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각종 국내 대회를 나눠가졌다.
넘어가야할 장애물 앞에서 고전할 때도 있었다. 한동안 부상에 시달렸던 김해진은 올 시즌 두 번 출전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10위(3차)와 8위(6차)에 그쳤다. 박소연은 8월에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들은 좌절을 딛고 2014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회장배 랭킹대회에 임했다. 두 선수 모두 스케이트 끈을 단단히 묶고 이번 대회에 임한 흔적이 보였다. 특히 박소연은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김연아 이후의 한국 피겨'에 한줄기 햇살을 비추었다.
박소연은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껍질을 깨고 도약했다. 점프 비거리와 스피드가 뛰어난 점이 그의 장점이었다. 점프의 퀄리티는 뛰어나지만 실전에서 자주 실수하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쇼트프로그램 1위에 올랐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무너졌다. 박소연은 선발전에서 겪은 좌절을 랭킹 대회서 극복했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하지 못한 그는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집중했다.
박소연은 "점프 실수를 줄이는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23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는 트리플 러츠에서 실수가 나왔다. 그러나 다음날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박소연은 단 한 번도 빙판에 넘어지지 않았다. 두 번의 트리플 러츠(단독 트리플 러츠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 더블 루프)를 모두 성공시켰고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도 무난하게 수행했다.
특히 더블 악셀+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는 1.32점의 높은 가산점(GOE)을 받았다.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 중 첫 점프가 회전수 부족(언더로테) 판정을 받은 것과 프로그램 막판 스핀이 흔들린 점이 '옥의 티'였다. 박소연은 "후반부에 힘이 빠져서 스핀이 흔들린 점이 아쉬웠다. 앞으로 이 부분도 보완해야할 것 같다"고 밝혔다.
박소연이 이번 랭킹 대회에서 기록한 점수는 169.48점(쇼트프로그램 55.29점 프리스케이팅 114.19점)이다. 공인 개인 최고 점수 144.77점(2012 터키 주니어 그랑프리)과 비공인 개인 최고 점수인 161.88점(2013 전국종합선수권)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태어난 그는 피겨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박소연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때 만난 스승이 지현정 코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 코치와 동행하고 있다.
박소연은 "지현정 선생님은 날 강하게 이끌어주셨다. 내가 좀 더 강해진 것도 선생님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는데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스승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일찍부터 3회전 점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김해진은 국내 대회를 휩쓸었다. 3년(2010~2012) 동안 최고 권위의 전국종합선수권대회를 정복했다. 김연아 이후 최초로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에 성공했고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거머줬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성적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지만 다시 일어섰다. 김해진은 이번 랭킹대회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표현력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점프 성공률은 여전히 높았다.
특히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블랙 스완'의 안무와 구성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보여준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탈피해 강렬한 연기에 도전한 점은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시도한 7개의 점프 중 4개가 언더로테 판정을 받았다. 점프의 질을 높이는 것이 그의 과제다.
이로써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여자 싱글 3명의 선수가 결정됐다. 김연아와 박소연 김해진은 여자 싱글에 출전한다.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3명이 출전하는 것은 역대 최다 인원이다.
이러한 성과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대세다. 한국 피겨는 특정 선수의 업적으로 부각됐지만 탄탄한 시스템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는 기본적으로 훈련과 경기에 충실해야 한다. 그 뒤를 받쳐주는 시스템은 탄탄해야 한다. 체계적인 계획 속에서 자라는 선수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 박소연과 김해진은 어느덧 주니어 무대를 넘어서 시니어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소연과 김해진의 소치동계올림픽 목표는 '프리 컷 통과'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얻은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들이 큰 부상없이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유망주들이 꾸준히 등장한다면 '김연아 이후의 한국 피겨'는 결코 암울하지 않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박소연 김해진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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