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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류현진의 편안함과 적응력

기사입력 2013.09.30 11:45 / 기사수정 2013.09.30 11:45

장원재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마침내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첫 시즌 정규리그가 끝났다. 14승 8패 방어율 3.00. 이 정도면 누가 뭐래도 메이저리그 정상급 성적이다. 시즌 개막 전, 소생은 이 칼럼을 통해 류현진의 2013년 성적을 예상했다. ‘최소 12승.’ 야구 비전문가인 소생이 그렇게 예상했던 근거는 두 갈래다. 먼저 야구실력. 실력에 관해서는 허구연 해설위원, 김인식, 윤동균 두 분 감독님의 분석을 참고했다. 세 분 모두 류현진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에 깐다면 12-15승도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 사실은 이것이 핵심이다. 운동선수들에게 ‘해외진출’은 그저 운동만 잘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이 달라지고 음식이 바뀌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야말로, 생활의 아주 사소한 조건이 다 달라진다. 식당에서 줄 서는 법, 주유소 기름넣기, 수퍼마켓에서 계산하기, 운전관습, 길 가다 다른 사람과 부딪혔을 때의 에티켓까지 전부 낯설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것은 ‘승리의 징표’를 만드는 것이지만, 영국에서 V사인을 뒤집어 손등 쪽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외설적이고 심각한 욕설이다. 영미권에서 멀리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손을 들어 손등을 하늘 쪽으로 향한 채 손짓을 해선 안된다. 이건 반려동물을 부르는 동작이다. 손바닥을 하늘 쪽으로 향하고 손짓을 해야 한다. 이런 식의 사소한 ‘낯설음’은 사람에게 미세한 피로를 쌓아 놓는다. 튀지 않고 초보적인 실수를 피하려면, 매사 매순간 긴장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익숙하고 편하게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을 하나하나 일일이 물어가며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수행해야 한다는 현실. 일상생활이 이럴진데, 프로 선수로서 훈련과 경기에 나서는 직업적 관습은 또 얼마나 다르겠는가.

해외로 나가 자기 실력을 그대로 발휘하는 선수가 있고, 잠재력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고 쓸쓸하게 U턴하는 선수도 있다. 이 능력을 총칭하는 단어가 바로 ‘적응력’이다. 그렇다. 해외진출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운동능력+적응력’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스타들은 모두 자기 방식대로의 적응법을 개발해 생존에 성공한 사람이다.

차범근과 허정무의 전략은 ‘겸손함’이었다. 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이면, 대한민국 자체가 유럽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있던 시절이다. 그들은 선진국이고, 우리는 개발도상국이었다. 유럽의 모든 면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차범근도, 허정무도 출국 인터뷰에서 ‘유럽의 선진축구를 열심히 배우고 돌아와 한국축구의 수준을 끌어 올리겠다’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설령 부당한 일을 당했더라도, 이 둘은 ‘후진국 국민이 의례 감내해야 하는 당연한 차별’ 정도로 생각하고 울분을 삭였을 터이다.

이영표의 전략은 ‘영리함’으로 보인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겉으로 표를 내거나 드러내지 않고, 부드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회사든 집단이든 프로구단이든, 각기 다른 성장배경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다 보면 어떤 경우든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영표의 해결책은 우회전략(迂回戰略)이었다. 나중에 상대방이 미안해하도록, 넌지시 일러주고 한참을 기다리는 방식. 박지성의 적응법은 ‘성실함’과 ‘순박함’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시키는 사람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선수. 일본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영국에서도 박지성은 늘 한결같았다. 그래서 해외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 ‘무명의 영웅(un-sung hero)’과 ‘가장 이타적(利他的)인 선수(the most un-selfish player)’다.

박찬호의 전략과 추신수의 전략이 어떤 것인지는, 야구 전문가 여러분께 도움을 청해 다음 기회에 분석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류현진은?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瘦哉 人焉瘦哉(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하는지 보며, 그 일을 왜 하는지를 살피고, 무엇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지를 관찰하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느냐?”

-위정(爲政)편 2/10

류현진에게는 야구가 편안해 보인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하는 것이 편안해서 야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 편안함은 덕아웃에서는 천진함으로, 타석에서는 호기심으로, 마운드에서는 결연함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플레이 중인 선수가 편안해 보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경기 중에 과도하게 긴장할 일이 없다. 동료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염려도 줄어든다. 나태함과 구별되는, ‘어떤 경지에 오른 류현진의 편안함’이 다른 선수들을 전염시키고 ‘여름 다저스 기적의 진격’을 이끌어낸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 것은 혹시 아닐까. 그 편안함을 배우고 싶다. 자, 이제 포스트 시즌이다. 류현진은 큰 경기에서도 편안하게 자신의 공을 던질 것이다. 월드시리즈라고 예외는 아니리라. 류뚱의 금년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진격은 현재진행형이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류현진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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