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09.14 09:48 / 기사수정 2013.09.14 09:48
시대와 처연함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고 차분하게 내뱉는 한 감독의 얼굴에서 연출자의 깊은 번뇌가 슬쩍 스쳐 지나갔다. 사극이 처음이었을테니 무엇보다 감독 본인이 즐거웠는지 궁금해졌다.
"재미 있었어요. 물론 힘든 점도 많았고요(웃음). 사극이라는 환경이 힘들잖아요. 준비할 것도 많고, 눈도 많이 왔고, 더군다나 예산도 얼마 없고요. 그렇지만 모든 것들을 재창조 해도 되는 부분들은 즐거웠어요."
'관상'은 지난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원작자의 시나리오와 한 감독의 시나리오가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었을까.
"처음 '관상'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읽고나니, '관상'이 중요한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고수같지 않아요? 한 인물이 광풍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이 핵심이었던거예요. 그런데 너무 소설 같았어요. 지금처럼 주인공이 유머러스한 점은 전혀 없고, 내적인 갈등이 많이 있는 데다 김종서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었어요"
원작자가 쓴 뼈대에 한 감독의 살점이 추가된 셈이다. 사실 배우 김혜수가 연기한 한양 최고의 기생 '연홍' 역할도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연홍' 뿐 아니라 조정석이 연기한 '팽헌'도 없었어요. 전체적인 주제도 다르고, 엔딩도 약간 다르고요. 현장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낸 대사도 너무 많아요. 육조거리에서 '내경'이 절 하면서 하는 이야기들도 다 그곳에서 만든거고, '수양대군'이 '내경'에게 뱉는 마지막 대사도 하루 전날 만든 대사예요"
'수양대군'의 마지막 대사까지 미리 생각해둔게 아니었다니. 조금 놀라서 다시 물었다.
"원래는 그 부분에서 '수양대군'의 대사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정재 선배님이 '한마디 정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고요. 그래서 대사를 짜서 보여드렸더니 이정재 선배님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이 밖에도 배우들이 만들어낸 상황이 많아요"
사실 '관상'이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송강호, 백윤식,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등 그야말로 사극계의 '어벤저스'같은 캐스팅이 단단히 한 몫 했다. 한 감독이 느끼는 부담감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관상'은 정말 소박하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너무 매혹적이라 배우들이 한 명씩 모이게 된거예요. 배우들의 이름값이 어마어마 해가지고 부담이 많이 되죠. 그냥 관객분들이 편안하게,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마시고 스토리를 즐기면 더욱 재미있게 보시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우아한 세계'에 이어 '관상'에서 또 한 번 '찰떡궁합'을 발휘하게 된 송강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송강호는 "한재림 감독이 진화했다"고 한 감독의 변화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과찬이에요.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찍어서 그런지 제가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사실 '연애의 목적'이나 '우아한 세계'는 좋은 평을 들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거든요.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죠. 나는 관객들을 재미있게 해주고 싶어서 자꾸 노크를 한건데,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더 크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한재림 감독은 송강호와 다시 한 번 새로운 작품으로 조우하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는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하고 싶다"고 단박에 대답했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 선배 정말 멋있더라고요. '관상'에서는 소시민적이고, 소박한 인물이지만 '설국열차'에서는 중요한 키를 지닌 '히어로'처럼 나오잖아요? 그래서 멋있고 섹시하더라고요. 섹시하지 않아요?"
자신의 영화 인생을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눈다면 '관상'이 전기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는 한 감독은 마지막으로 '다작(多作)'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아직 다음 작품을 구상하진 않았어요. 정말 '관상'을 다 못 떠나 보냈거든요. 앞으로는 더 빠른 주기에 작품을 하고 싶어요. 현실이 가능하다면 분명히 더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11일 개봉한 '관상'은 개봉 이틀만에 70만 관객을 돌파하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한재림 감독의 바람대로 '관상'이 관객과의 의사소통에 성공한다면, 세심하지만 위트있는 그의 작품을 더 빨리,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 한재림 감독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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