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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고교야구 사라진 팀들을 위하여

기사입력 2013.08.07 13:43 / 기사수정 2013.08.07 16:27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제68회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 결승전이 열린 목동 야구장. 70-80년대 고교야구를 추억하며 상념에 잠긴다. 빈자리가 많은 관중석에 눈물이 괸다. 그 때, 박대통령 컵 국제 축구대회와 고교야구는 한국 단체경기 스포츠의 양대 산맥이었다. 동남아 팀을 불러 조촐하게 만든 잔칫상이 대한민국이 차릴 수 있는 ‘국제화’의 최대치였고, 고교동문회와 소도시의 애향심이 어우러진 고교야구는 로컬리즘의 꽃이었다. 군산상고는 군산시민의 팀이지 군산상고 동문회의 팀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경기가 만원관중이요 축제판이었다.

대통령배(중앙일보), 청룡기(조선일보), 봉황기(한국일보), 황금사자기(동아일보)와 우수고교 초청대회, 전국체전 그리고 부산의 화랑대기. 지역예선 없이 모든 팀이 참가할 수 있었던, 그래서 늘 여름방학 때 열렸던 봉황기 야구대회의 흥행성적을 보자. 1979년 8월 동대문 야구장에서 16일간 열린 이 대회의 입장객은 무려 49만 1,200명, 하루 평균 30,700명이 야구장을 찾았다는 얘기다. 이렇게 저렇게 무료로 들어온 관중까지 헤아린다면, 이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나리라.

덕수고와 분당 야탑고의 결승전. 청소년 대표 코치인 야탑의 김성룡 감독은 소생의 고교 후배다. 이번 여름 대만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감독이 바로 덕수의 정윤진 감독. 두 사람은 며칠 후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배를 저어가야 하는 사이다. 류제국, 민병헌(덕수고 졸업)과 윤석민, 오재원(야탑고 졸업)을 떠올린 대결...을 보며 소생, 다시금 옛 생각 한 자락을 펼쳐 놓는다.

지금은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팀들이 있다. 어쩌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 쓸쓸할 이름들. 경기도 남양주 마석에 심석종고라는 팀이 있었다. 79년 공주고, 청주고를 연파하고 봉황기 8강에 오른 것이 최고의 성적. 84년에 해체했으니, 10여 년 이상을 꿋꿋하게 버텨줬던 팀이다. 그 당시, 경기 동부 유일의 고교야구팀. 경기 인천지역 예선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던 좌완 이하룡(李夏龍)이 에이스였다. 삼미 수퍼스타즈의 창단 멤버였던 이하룡의 프로기록은 없다. 개막전 전날 밤 유니폼을 분실하는 황당사고에 이어 집합시간에 지각한 데 격분한 박현식(朴賢植) 감독이 ‘시범케이스’로 ‘잘라버렸다’는 뒷얘기가 전한다. 본인은 ‘팬이 나도 모르게 집어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래서 늦은 것이라고 용서를 구했지만, 아무튼 박현식 감독은 그에게 더 이상의 출전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하룡은 그렇게 ‘유등록 무출전’으로 야구인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남은 삼미 유일의 좌완투수가 원년성적 1승14패를 기록한, 아직까지는 사회인 야구출신 1호이자 유일한 프로선수인 감사용이다.

지금은 부천으로 옮겨갔지만, 동작구 대방동에 있었던 유한공고 야구부. 1975년 서울시 추계리그에서 성동고를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했던 황기선(黃奇善)이 여기 출신이다. ‘한대화를 해태로, 양승호와 황기선을 OB로 트레이드할 때’의 그 황기선 말이다. 그러고보니 성동고도 야구판에서 잊혀진 이름이다. 소생이 'MBC초대석 장원재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2003년, 성동 야구부 출신 하일성 해설위원을 게스트로 모시고 성동고 야구부 재창단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적이 있는데. 하기야 <스포츠서울> 창간호 톱기사였던 ‘차범근 한국 온다’, <스포츠 투데이>의 ‘선동렬 일본간다’가 몇 년 후 ‘사실’로 밝혀졌듯이, <스포츠조선>의 ‘마이클 조던 한국온다’도 언젠가는 사실로 밝혀지리라. 그리고 성동고의 재창단 소식도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을 반갑게 적셔주리라.

70년대 후반의 한 조각 전설로 남았으되 이제는 사라진 이름으로 전남고도 있다. 78년 봉황대기 1회전에서 전국최강 신일고를 9회말 끝내기 안타로 1-0으로 물리쳐 대한민국을 경악케 한 일전. 이 경기는 지금 기준으로는 사회인 야구단이 프로팀을 이긴 것만큼이나 충격을 던진 경기다. 매 라운드 추첨을 통해 대진을 정하던 봉황기에서나 가능했던 매치 업. 박종훈, 양승호, 김정수, 김남수, 김경표, 최홍석, 김운영, 노수진 등이 활약하던 신일은 질래야 질 수 없는 팀이었다. 이 막강 군단을 잡은 무명의 반란을 선두에서 이끌며 완투 완봉에 결승타까지 쳐낸,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선수가 김태업(金太業)이다. 물론 2회전에서는 힘이 잔뜩 들어가 ‘던질줄도 모르는’ 커브까지 구사하다 경기에 지고 짐을 싸야 했지만. 당시 서울운동장의 좌우 팬스 거리는 89미터였다. 소생은 투수에서 좌익수로 보직이동한 김태업이 팬스 앞에서 공을 잡아 그대로 노바운드 홈송구를 보여주던 바로 그 현장에서 관중석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남고의 신일고 격파는 80년 대통령배 본선 1회전에서 광주 진흥고가 박노준, 김건우, 나성국 등이 건재하던 극성기의 선린상고를 2-0으로 격파했던(당시 진흥고의 투수가 가을까치 김정수다)사건과 더불어 지금도 올드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 가운데 하나다. 왜 팀이 해체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전남고 3인방 중 김태업과 이순철은 광주상고로 전학갔고 차동철은 1년 재수를 거쳐 광주일고로 옮겨갔다.

논어에 나온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살펴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가히 남의 스승이 될만 하리라.

사라진 팀들을 추억하는 일은, 어쩌면 고교야구의 부흥을 이끌고 한국야구의 뿌리를 튼튼히 하며 그 결과 프로야구의 흥성을 도모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묘방일 수 있는 일은 혹시 아닐지.

김재박, 유지훤, 윤덕규, 박건을 배출한 대광고와 권영호, 허규옥, 박찬, 박승호, 장태수를 배출한 대구 대건고, 해체 직전 12명의 부원으로 80년 봉황기 8강을 찍은 눈물의 팀 대구 성광고, 군(郡) 단위 팀으로 유삼했던 충북의 영동상고(다른 두 팀이 당시 남양주군의 심석종고와 공주군의 공주고다), 단 한 해로 사그러진 여수상고, 72년 대통령배 4강 철도고, MBC 청룡의 창단멤버 김용운을 배출한 천호상고. 원고 매수가 넘쳐 이 그리운 이름들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80년 신일고 최홍석의 홈런 한 방에 무너졌던, 대광고 우완 사이드암 박건의 통곡도 다뤄보고 싶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고교야구 ⓒ 엑스포츠뉴스DB, 장원재 교수 제공]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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