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신명철 칼럼니스트]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을, 손연재가 리듬체조를 관심 종목으로 끌어올렸듯이 여배우 이시영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복싱에 한 가닥 부활의 가능성을 던지고 있다. 긴 팔을 이용한 스트레이트 하나로 복싱 여자 48kg급 국가대표가 된 이 젊고 예쁜 여배우는 최근 MBC 인기 토크쇼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감량의 어려움을 고통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얘기했다.
이시영은 경기 전 체중 감량을 위해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한 뒤 “음식을 안 먹는 것은 물론이고 손톱과 발톱도 깎는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무리 해도 몸무게가 더 이상 빠지지 않아서 마지막 순간에는 때를 밀러 목욕탕에 갔다”면서 “그렇게 하니 400g이 빠졌다. 사우나를 했기 때문에 수분이 빠졌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성공했다”고 말해 글쓴이를 웃음 짓게 했다. ‘손톱도 깎고 때까지 밀다니’ 스포츠를 썩 좋아하지 않는 여성 시청자들은 아마도 처음 듣는 내용들이었을 터이다.
이시영의 얘기를 들으면서 글쓴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25년여 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남녀부가 통합돼 처음으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1987년 11월 서독 에센에서 열렸다. 서울 올림픽을 10개월여 앞두고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여서 대회 결과에 스포츠 팬들의 관심이 컸다. 대회 기간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는 차범근이 아내 오은미 씨와 함께 먼 길을 달려와 대표 선수들을 응원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안병근(71kg급)과 하형주(95kg급)가 금메달, 김재엽(60kg급)과 황정오(65kg급)가 은메달, 조용철(95kg이상급)이 동메달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던 한국 유도는 대회 3일째까지 하형주와 이쾌화(78kg급)가 동메달을 건졌을 뿐 기대했던 금메달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남은 희망은 김재엽 뿐이었다. 1983년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푸에르토리코) 금메달,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는 김재엽이었지만 그 역시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김재엽을 누르기 한판으로 꺾은 강적 호소가와 신지(일본)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60kg급 경기가 예정된 대회 마지막 날 하루 전 한국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에 갔다. 선수들이 보이지 않아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호텔 체육관에 갔더니 사우나가 있었다. 전날 마신 맥주를 뺄 겸 들어간 사우나에서 한국 선수를 우연히 만났다. 김재엽이었다.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모두 외출하고 자신만 숙소에 있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호소가와에게 눌렸을 때 심정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글쓴이의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김재엽의 몸에서는 땀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왜 그러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김재엽은 “더 이상 뺄 땀이 없다”고 했다. 김재엽의 대답에는 감량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재엽은 경량급치곤 키가 컸다. 평소 몸무게가 68kg 정도였다. 이튿날 김재엽은 결승에서 벼락 같은 허벅다리걸기 한판으로 호소가와를 매트에 내리꽂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겪은 패배를 되갚으며 세계선수권자가 됐다.
복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70, 80년대 라이트 플라이급, 주니어 플라이급 등 프로 복싱 경량급 선수들은 10kg에 가까운 살인적인 감량을 했다. 같은 체격의 외국 선수와 경쟁이 쉽지 않으니 몸무게를 줄여 자기보다 적은 선수와 경기를 해야 했다. 아무리 키가 작아도 정상적인 신체 조건을 가진 성인 남자가 50kg 이하로 체중을 줄이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감량은 체급 종목 선수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고 이런저런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이뇨제 등 약물로 몸무게를 빼기도 했다.
여자 선수들은 특히 무리한 체중 감량을 해선 안 된다. 생리 현상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몸집이 커지면 그에 맞게 체급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체격이 커지는데 따라 체급을 올리면서 성공적으로 선수 생활을 한 체급 종목 선수로는 유도의 조민선을 들 수 있다. 에센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한국은 7명의 여자 선수가 출전했지만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1980년대 초반 도입된 여자 유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때였다. 한국 선수 가운데 조민선이 3회전 진출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때 서울체육중학교 3학년인 조민선은 48kg급이었다. 이 꼬마 선수가 이후 52kg급, 56kg급, 61kg급으로 계속 체급을 올리면서 국내 1위를 놓치지 않았고 1993년 해밀턴(캐나다) 대회와 1995년 지바(일본) 대회에서 2연속 세계선수권자가 됐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때 체급은 66kg급이었다.
이시영도 자연스럽게 51kg급으로 체급을 올리게 된다. 자신의 꿈인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감량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할 것이다. 2010년 광저우 대회 때 처음으로 아시아경기대회 정식 세부 종목이 된 여자 복싱은 51kg급, 60kg급, 75kg급 등 3개 체급만 열린다.
체급 상향 조정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당연히 실패 사례도 있다. 이시영은 48kg급에서는 긴 팔 길이가 장점이었지만 51kg급으로 올라가면 상대 선수들도 키가 그리 작지 않기 때문에 팔 길이가 큰 무기가 될 수 없다. 펀치의 다양성 등 기술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광저우 대회 때 여자 복싱 3개 체급에 모두 출전했지만 75kg급의 성수연만 동메달을 땄다. 경기력이 좋아서 메달을 차지한 게 아니다. 출전 선수가 7명이었는데 운 좋게도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했고 준결승에서 몽골 선수에게 3-14로 지고도 메달리스트가 됐다. 중국이 3개의 금메달을 모두 차지했고 여자 복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동메달 1개에 그쳤다.
여자 복싱은 지난해 런던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영국(51kg급)과 아일랜드(60kg급), 미국(75kg급)이 여자 복싱 올림픽 초대 챔피언을 배출한 가운데 중국이 은메달(51kg급)과 동메달(75kg급)을 하나씩 차지했고 인도의 매리 콤이 51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대회였다.
한국 여자 복싱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그러나 누가 아랴. 1940년대 후반 도입됐으나 “시아버지 밥상을 걷어찰 일이 있냐”는 핀잔만 듣고 사라졌던 여자 축구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이후 20년 만인 2010년에 20세 이하 월드컵(독일) 3위, 17세 이하 월드컵(트리니다드토바고) 우승에 이어 2013년 7월 현재 중국(17위)과 대만(39위)을 따돌리고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6위에 오를 만큼 성장하게 될지.
여자 축구를 정식 종목으로 만들기 위한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의 출전 요청을 받고 부랴부랴 대표팀을 꾸린 한국은 홍콩에만 1-0으로 이겼을 뿐 대만에 0-7, 일본에 1-8, 중국에 0-8, 북한에 0-7로 크게 졌다. 여자 축구 관계자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됐지만.
신명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이시영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