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드윅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남자와 여자, 동양과 서양, 흑과 백, 보수와 진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이분법 투성이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양 갈래에 서서 사람들은 서로 편을 나누고 갈등을 빚는다.
사람들은 다수가 정해놓은 틀에 갇혀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 외모를 지닌 이들을 경멸하곤 한다.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행동인지 알면서도 자신과 다른 개인 또는 집단을 소수라 구분 짓고 멀리한다.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 헤드윅(조승우 송창의 손승원 분)은 '보통' 사람들이 정의하는 '소수'에 속한다. 헤드윅, 본명 한셀은 자신의 야속한 운명과 세상의 비아냥에 좌절하고 굴복한다.
1961년,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동독 출신의 트랜스젠더 가수 헤드윅은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다. 평범함과는 조금, 아니 많이 거리가 있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바로 그 베를린 장벽!"이라는 그의 외침에서 보듯 헤드윅은 남과 여를 나누는 성(性)의 경계지점에 서 있다. 헤드윅은 싸구려 성전환 수술을 받지만 수술에 실패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인생을 살아간다.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가지만 수술실패의 흔적인 '앵그리 인치(Angry Inch)'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기까지 한다.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헤드윅은 숙명처럼 자신의 반쪽을 찾아다닌다.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다니던 그는 결국 스스로를 치유하고 새 인생을 시작한다. 헤드윅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츠학(구민진, 조진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비로소 그는 완전한 존재가 된다.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가 깔려있는 '헤드윅'에는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드랙퀸, 동독 출신 미국 이민자, 인종청소, 세르비아 등 범상치 않은 소재가 포함돼있다. 분명 어두운 이야기들이지만 헤드윅의 모놀로그에 담긴 진심과 유머 덕에 거부감이 들진 않는다.
'헤드윅'은 복잡한 내러티브와 현란한 무대 세트, 화려한 효과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드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금세 그의 희로애락에 울고 웃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 헤드윅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평범한 우리네 인생 여정과 다를 바 없어 공감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2006년, 2009년에 이어 '헤드윅'에 세 번째 도전한 송창의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그 자체인 듯 외로움, 고통, 환희 등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관객석에 달려가 감정을 분출할 때는 헤드윅과 혼연 일체된 듯 자연스럽다. 구민진 역시 터프하고 냉소적인 이츠학의 면모를 잘 살려낸다.
'오리진 오브 러브'(Origin of Love), '앵그리 인치(Angry Inch)',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 '티어 미 다운(Tear Me Down)' 등 로큰롤 장르의 뮤지컬 넘버들은 헤드윅의 다양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밴드 앵그리인치 멤버들의 어색한 표정 연기도 또 다른 관전포인트다.
뮤지컬 '헤드윅'은 9월 8일까지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열린다. 110분. 만 15세 이상. 공연문의: 02-3485-8700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사진 = 헤드윅 ⓒ 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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