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로스앤젤레스(미국) 문상열 칼럼니스트] 메이저리그 연착륙에 성공한 LA 다저스 류현진이 지난 11일(한국시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 등판으로 사실상 2013시즌 전반기를 마쳤다. 경기 후 한국 기자들이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에게 전반기 평가를 물어보자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직 끝난 게 아니다”면서도 전반기 결산을 후하게 했다. 아무튼 한국 기자들이 성급함은 알아줘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점이다.
전반기 평가를 해달라는 뜻은 다소 월권이다. 아직 전반기를 마치려면 4경기가 더 남아 있는 상황이다. 경기가 한창 진행중인 상태다. 류현진이 구원으로도 등판할 수도 있다. 애리조나전이 전반기 마지막이라는 것은 기자들이 상식에 토대한 판단일 뿐이다. 야구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데 전번기 마지막 경기라고 했으니 매팅리로서는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다. 그 질문에 톤이 다소 올라갔다. 이 질문은 콜로라도 로키스전 때 하는 게 오히려 맞다.
더구나 다저스는 이날 승리로 2개월10일 만에 승률 5할로 복귀하면서 1위 탈환이 더 중요한 판에 포커스도 맞지 않는 질문을 던졌으니 좋아할 리가 없다. 미국 기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리도 없고, 설령 그랬다면 매팅리가 버락 화를 냈을 것이다. 영어도 짧은 외국 기자이니까 뜻을 헤아려서 간단히 한국 기자의 요구에 맞는 답을 해줬을 뿐이다.
류현진이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다저스타디움의 한국 기자들의 취재 풍경은 구단 직원들과 항상 출입하는 미국 기자들의 눈에 거슬리는 게 한 두 건이 아니다. 일본 기자들은 떼거리로 다니지만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가 깊은 탓에 매너를 갖추고 있다. 대만 기자들은 수준이 더 낮다. 경기 후 인터뷰장에서는 수준 이하의 질문이 난무한다. 류현진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알멩이 없는 답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한국 기자들은 류현진외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저스 구단이 한국 기자들에게 ‘시즌출입증’을 주지않고 ‘데일리 크레덴셜’을 발급하는 이유도 류현진 등판 때만 경기장에 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줄곧 다저스를 출입했던 LA 지역 로컬 신문사와 방송사 몇군데만 시즌출입증을 발급해줬다. 구단이나 미국 미디어 입장에서는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의 한 선수에 불과하다. 사실 류현진은 자신에 대한 집중 취재를 무척 부담스러워 한다. 경기 후 외에는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쿠바 망명객 야시엘 푸이그는 최근 미디어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경기 후 인터뷰를 회피하면서 집중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들은 ‘미디어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시청자, 독자들의 알 권리를 무시한 것이다. 급기야 푸이그는 12일 스포츠 전문채널 ESPN과 ‘원 앤드 원’ 인터뷰를 했다. 지난달 4일 메이저리그에 입문한 뒤 ‘원 앤드 원’ 인터뷰는 처음이다.
매팅리 감독은 기자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애리조나에서 어린 22세의 푸이그가 메이저리그 실정을 잘 모른다면서 옹호했다. 하지만 LA 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이날 자 칼럼에 푸이그의 플레이는 상대 선수뿐 아니라 팬들에게 오만하게 비친다면서 ‘악한(villain)’이라고 표현했다. 잘나가던 푸이그도 메이저리그 데뷔 35경기 만에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류현진이 데뷔 전반기에 남긴 것은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저스 구단이 예상을 깨는 2500만달러가 넘는 포스팅 피를 적어냈을 때는 성공의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류현진은 그 기대를 몸으로 실천했다.
류현진의 전반기 성공의 비결은 두 가지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7년 동안 겪은 에이스로서의 역할이다. 또 하나는 ‘볼만 빠르다고 투수가 아니다’는 평범한 진리를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여줬다. 류현진이 5월까지 메이저리그 출입기자들과 한국 현지 기자들에게 되풀이해서 받은 질문이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차이, 즉 타자의 차이점’이었다. 류현진은 서두에 “항상 얘기했지만”으로 시작하면서 “힘의 차이가 있을 뿐 야구는 같다”라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힘의 차이를 알면서 절묘한 코너워크 피칭을 구사해 10차례의 만루위기를 대량실점없이 넘겼던 것이다. 사실 류현진과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나이는 어리지만 프로생활이 7년이다) 투수 입장에서는 거포보다는 국내 프로야구의 컨택트 히터들이 더 괴롭다. 컨택트 히터들을 7년 겪었으니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은 메이저리그라고 다를 바가 없다.
류현진은 국내에서 정상급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속구투수 대열에 포함될 수는 없다. 직구 구속이 평균 150km(94마일)을 유지돼야 파워피처로 구분할 수 있다. 초반 2개월과 6월 이후 전반기 피칭을 사실상 마친 애리조나전까지의 삼진아웃 변화를 봐도 알 수 있다. 파워피처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교파라고 할 수 있는 ‘피네스(Finesse) 피처’도 아니다. 중간쯤에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에게 커브를 전수했던 ‘황금의 왼팔’ 샌디 쿠팩스는 “자신이 의도하는대로 던지는 것을-좋은 투수라고 정의한다. (A guy who throws what he intend to throw-that’s the definition of a good pitcher)”는 명언을 남겼다. 류현진은 이에 부합되는 투수다. 매팅리 감독도 경기 때마다 “류현진은 자신이 원하는 곳, 원하는 구질을 볼카운트에 상관없이 던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데뷔 첫 해 18경기에 등판해 16차례나 6이닝 이상을 투구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수가 없다. 그 해 사이영상을 수상할 정도의 쾌투를 하지 않는 이상 에이스급도 한 시즌을 통해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 문제는 후반기다. 애리조나전에서 5이닝 5실점으로 다소 부진하자 체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야구는 그런 날도 있는 것 뿐이다. 투구밸런스가 안맞아도 부진한 투구가 나올 수 있다. 이날 중계한 빈 스컬리는 “피칭을 너무 서두른다(rush to pitch)”고 했다. 일과성 부진이다.
다만 후반기 걱정은 상대의 대비다. 야구를 흔히 ‘조정하는 게임(adjust game)’이라고 한다. 경기를 치르면서 맞춰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같은 지구의 팀들은 류현진을 철저히 파악하고 대비하고 후반기를 맞게 된다. 선수들이 전반기와 후반기 성적에 차이가 있는 것도 ‘어드저스트’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철저한 로케이션 피칭과 완급조절을 유지할 경우 전반기 성적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문상열 스포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류현진 ⓒ 게티이미지 코리아]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