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한국의 어린 태극전사들이 FIFA(국제축구연맹) U-20월드컵 8강에서 이라크를 맞아 아쉽게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어린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과 팀(Team)의 가치는 우승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광종호의 최종 성적은 8강으로 마무리됐다. U-20 월드컵이 어떤 대회인지를 통해 그 의미에 접근해봤다.
1977년 시작, 19회째 맞은 U-20 월드컵
지난 1977년 어린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고 스폰서 노출 확대를 위해 대회가 창설됐다. U-20 월드컵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선수들의 기량을 바탕으로 머지않은 미래의 세계축구 판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창기에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World Youth Championship)라는 명칭으로 막을 올렸다. 2007년 대회부터 의미를 격상해 월드컵으로 대회 명칭을 바꿨다. 월드컵과 올림픽이 없는 홀수해에 격년으로 개최된다. 그동안 18개국에서 열렸으며 최다 개최국은 두차례 대회를 개최한 호주다.
최다우승은 아르헨, 아시아 최고는 일본
아르헨티나는 1979년 대회를 시작으로 지난 2007년 대회까지 7번 결승에 진출해 6번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최다 우승팀이다. 1979년 디에고 마라도나, 1997년 파블로 아이마르, 2001년 하비에르 사비올라, 2005년 대회 때는 리오넬 메시가 에이스로 활약하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브라질이 5회 우승으로 뒤를 잇고 있다. 포르투갈이 2회 우승을 차지했고 스페인, 가나, 구소련, 서독, 유고슬라비아가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누노 고메스, 루이 코스타 등을 앞세워 1991 대회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는 수케르, 미하일로비치 등 유고연방 출신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챔피언에 올랐다. 아시아 최고 성적은 1999년 대회 일본의 준우승이다. 일본은 필립 트루시에 감독을 앞세워 다카하라 나오히로, 오노 신지 등 2002 한일월드컵 멤버들이 주축을 이뤘었다. 한국은 1983년 대회 4강에 진출하며 '붉은 악마'라는 애칭을 얻었다.
U-20 월드컵에서 두드러진 유럽 약세
U-20월드컵은 총 83개국이 본선무대를 밟았다. 특히 타히티, 기니,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등 성인 월드컵에서 본선 문턱조차 밟지 못한 나라들의 참가 경력이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남미, 북중미, 아프리카 등이 강세를 보였다. U-20 월드컵의 경우 유럽은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연령대 대표팀에 소홀하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유럽의 경우 20세 이하 선수들도 프로에서 뛰는 일이 흔하다. U-20 월드컵 본선에는 어린 스타플레이어를 배제한 나머지 선수들로 팀을 꾸린다. 자연스레 전력의 극대화를 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포포투 잉글랜드판은 “잉글랜드의 유망주들은 연령대 대표팀에서 활약해도 소속팀의 주전 확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때문에 U-20 월드컵 보다 소속팀 훈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적한 바 있다.
한국축구의 영광과 그늘
한국의 역대 최고 성적은 4강에 올랐던 1983년 멕시코 대회였다. 당시 공격축구 지론을 폈던 박종환 감독을 앞세워 승승장구 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준결승전에서 골대 불운에 시달리며 아쉽게 3,4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한국은 폴란드와 순위결정전에서 연장접전을 펼친 끝에 1-2로 석패했다. 그러나 세계축구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알린 첫 대회로 기억된다.
가장 치욕적인 대회는 1997년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한국은 브라질,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 조에 속했다. 남아공전 0-0 무승부를 시작으로 프랑스에 2-4로 패했고 브라질을 상대로 3-10으로 대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당시 프랑스는 니콜라 아넬카, 윌리암 갈라스, 티에리 앙리, 미카엘 실베스트레, 다비드 트레제게가 버티고 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이듬해 1998 프랑스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서영원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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