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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커버스토리] '여기는 베이루트' 레바논서 무슨 일이 있었나

기사입력 2013.06.07 18:20 / 기사수정 2013.06.07 21:03

조용운 기자


[엑스포츠뉴스=베이루트(레바논) 조용운 기자] 한국에서 직항로도 없어 20시간 가까이 경유를 해야 도착하는 나라. 중동에 속하지만 이슬람 문화가 낯선, 그래서 중동과 유럽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있는 나라. 알려진 것이라곤 한국 축구의 치욕의 장소, ‘베이루트 참사’가 대부분인 나라가 바로 레바논이다.

막전(幕前) 1 - "박지성은 오는가"

한국이 레바논을 잘 모르는데 레바논이라고 한국을 잘 알 리 없다. 한국과 레바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을 취재하러 날아간 레바논은 한국 기자를 향해 난데없이 '양박'을 찾았다. 공항에 한국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자 레바논 축구 관계자들이 퉁명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레바논 관계자의 첫 물음은 "한국의 유럽파들이 이번에 출전하느냐"였고 대상은 뜻밖에도 박지성이었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은 박지성을, 그들은 아직도 찾고 있었다.

박지성의 은퇴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당황한 레바논 관계자는 "아스날에서 뛰던 공격수(박주영)는 오느냐"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박주영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지 못했지만 "아스날과 셀타 비고의 'Park'은 어떠냐"는 말로 미루어 박주영을 묻는 것이 확실했다. 레바논은 박지성과 박주영에게 당한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바논은 이들이 없는 한국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이름값과 명성만으로 일단 상대의 기를 꺾었던 한국은 더 이상 없다는 불안감을, 애석하게도 그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막전(幕前) 2 - 레바논의 두 얼굴

레바논 출국을 하루 앞두고 현지 긴장감이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외교통상부는 붉은악마에 원정 응원을 취소하길 요구했고 대한축구협회도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3국 개최를 제안했다. 불안함을 있는 대로 떠안고 레바논에 떨어졌다. 한국에 전해지던 불안함은 사실이었다. 공항부터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고 거리에는 내전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건물들이 도처에 가득했다. 경기가 열리기 나흘 전임에도 경기장 부근에는 장갑차와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레바논에 대한 첫인상은 분명 무서웠다.

그렇다고 레바논이 불안감만 가득한 나라는 아니다. 레바논은 중동으로 분류되지만 중동 같지 않은 희한한 나라다. 기자가 묵은 함라(Hamra) 지역은 한국의 명동 혹은 가로수길과 비슷했다. 해가 지면 거리가 젊은 남녀로 뒤덮이고 음악소리와 휘황찬란한 불빛이 밤늦게까지 밝힌다. 한낮에는 지중해 연안의 바닷가에 사람들이 몰리고 요트와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즐긴다. 이보다 아름다운 휴양지도 또 없다는 생각이다. 처음 레바논에 도착해 느꼈던 불안함은 번화가에 도착하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레바논을 경험했을 대표팀의 생각도 바뀌었다. 장갑차와 무장한 군인들이 맞아준 첫인상은 얼마 못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인터뷰로 바뀌었고 레바논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 상태였다.



막후(幕後) - "알라가 지켜줬다"

선수들 얼굴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총과 포로 대표팀을 억누를 수 있던 레바논의 유일한 홈 어드밴티지가 없어진 셈이다.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이 예상됐고 레바논은 당연히 이기는 상대로 치부됐다. 하지만 예상은 경기 시작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팀도 아니라던 레바논에 한국은 쩔쩔 맸다. 선제골을 내줬고 한국의 연이은 슈팅은 골대를 맞추기 일쑤였다. 한국이 골대를 때릴 때마다 한국 취재진 옆에 자리한 레바논인들은 보란 듯이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취재진은 말이 사라졌다. 운이 따라주지 않음에 실망한 침묵이었다. 바로 그 때 김치우의 동점골이 터졌고 한국 취재진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다”를 연발했다.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비긴 것은 문제였지만 골대를 3번이나 맞춘 것에 위안을 삼았다. A매치 원정에서 일단 패하지 않았다는 건 나쁜 결과로 볼 수 없다. 실제 한국과 레바논전이 열렸던 A매치 주간에는 독일이 미국 원정서 패했고 프랑스가 우루과이 원정서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다. 본부석에 자리한 레바논 관계자의 한마디. "알라(Allah)가 지켜줬다." 레바논에게 다행스런 결과였으며 승운이 한국을 외면했단 뜻이었다.

하지만 이역만리 한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대표팀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승부를 또 다른 레바논 참사로 정의했다. 골을 넣지 못한 이동국은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공공의 적이 돼 있었다. 한국발 성토를 자신의 휴대폰을 통해 알게 된 선수들은 얼굴이 굳어졌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내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침통한 표정의 선수들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곧장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로 이동했다. 브라질행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전은 11일 상암벌에서 열린다. 

조용운 기자 sports@xportsnews.com

[사진 = 이동국과 베이루트 현장 ⓒ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조용운 기자]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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