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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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to Beijing - Korea Volleyball Team 1. (하)

기사입력 2007.10.04 19:32 / 기사수정 2007.10.04 19:32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생각하는 배구의 시작, 이것이 창의적인 플레이의 첫 걸음이 된다.

한국배구에 대한 전반적인 창의성에 대해 설명하려면 국가대표팀을 비롯한 국내 프로리그와 학생배구까지 광범위하게 넓혀서 생각해 봐야한다. 
  
감독의 지시를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만의 플레이로 승화시키는 플레이, 그리고 실전에 임해도 경기의 흐름을 읽고 파악하며 즉흥적인 센스와 기질을 발휘하는 것은 단기간의 학습효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이른바 코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노장들이 발휘하는 이러한 플레이는 바로 가르쳐서 습득한 것이 아닌 스스로 코트에 몸을 던지고 수십 번 실패해가면서 저절로 터득한 값진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수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이러한 학습효과는 그만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며 선수 스스로가 깨달아야하는 과정이 실로 버겁기만 하다.
  
이제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이지만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국제배구의 흐름을 살펴본다면 창의적인 플레이가 세계의 강호들은 물론 치고 올라오는 변방의 다크호스들에게서도 직접 볼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9월 9일에 막을 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나타난 태국팀을 보면 이러한 경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력 분석관까지 갖춘 체계적인 코칭스태프 체제에 작전시간도 유용하게 활용하며 그때마다 적절한 지시상황을 내리고 경기흐름을 살려가는 즉흥적인 플레이를 알차게 할 수 있었던 점은 코칭스태프의 활약도 컸지만 이러한 작전을 적절하게 풀어갈 수 있었던 선수들의 창의성도 단단히 한몫을 했었다.
  
특히 처음에 두 세트를 먼저 빼앗는 등 유리한 경기를 이끌어가던 한국의 여자대표팀이 태국팀에게 내리 3세트를 헌납하며 허무하게 무너졌던 것은 팽팽한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생각하는 플레이의 부재와 코칭스태프의 적절한 지시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김연경과 황연주(이상 흥국생명 핑크 스파이더스)과 빠진 상태라고 해도 한층 성장한 한수지 세터(현대건설 그린폭스)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전력도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3세트 이후부터 한국팀의 단순한 공격루트가 태국팀의 눈에 확연히 들어오기 시작했고 전력분석관을 통해 간파된 한국의 공격루트와 세터의 볼 배급에 서서히 눈떠가던 태국은 마침내 단조롭던 한국의 공격을 차단하며 그들의 특기인 중앙속공과 막강한 서브를 앞세워 경기의 흐름을 뒤집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점을 초과한후, 결정적으로 포인트를 내야할 시점에서 항상 승리한 것은 한국이 아닌 태국이었다. 한국보다 빠르고 파워 있는 공격력이 태국의 강점이었지만 그보다 치고 올라가야할 상황에서 얼마나 조직력을 발휘하여 즉흥적인 플레이를 해내느냐는 이미 한국보다 태국이 앞서나가고 있었다.  

양 팀 사이로 볼이 계속 릴레이 될 때 포인트를 따내려면, 긴박한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야할 생각하는 플레이가 팀원들끼리 공유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유대감이 되며 탄탄한 조직력으로 승화된다.

태국팀이 주니어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으며 국가의 지속적인 투자에 힘을 받아 이처럼 성장한 배경에도 원인이 있지만 단지 장기간 손발을 맞춘 것 이외에 상황을 파악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하며 움직일 수 있는 플레이를 서로 연마한 것이 태국팀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는 큰 요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전력분석관을 갖춘 실시간 전력 파악도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이 됐다. 그날 경기에서 2-3으로 아깝게 역전패했지만 양 팀의 창의적인 시스템 구조를 생각했다면 어쩌면 이런 결과는 당연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창의적인 플레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김호철 감독(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구사한 선진 배구 방식을 현대 팀에 적절하게 적용하고 그것을 국가대표팀으로도 확장해 2006년 도하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부터이다.

또한, 최근 프로선수들이 타 팀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꼼꼼히 메모를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광경이 나타난 것은 그만큼 감독이 지시해서 알아듣는 것이 아닌 선수 스스로가 분석하고 깨닫는 면이 실전에서 중요하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에 한국남녀배구가 아시아정상에서 중국, 일본 등과 함께 자웅을 가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중요한 지도방식과 선수본인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등한시 해온 것은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화를 추구해야할 시점에서 항상 뒤쳐지며 구태적인 관습을 반복해온 결과, 여자팀 같은 경우는 태국에게 2연패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또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과도 경쟁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남자팀 역시 기존의 강호는 물론 호주와 중동국가들의 거센 견제를 받아야하는 상황에 몰려있다.

창의적인 플레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을 응용할 수 있는 플레이를 완성하는 것. 이것을 팀원들과 코칭스태프와 함께 공유하며 탄탄한 조직력으로 만들고 가는 것. 또한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10가지의 전술을 가져왔다면 경기 중에 구사할 수 있는 현장시스템의 전술이 10가지 이상은 돼야 어느 팀과 맞붙어도 무너지지 않는 강팀으로 승화된다는 것등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저 낡아빠진 훈련 시스템으로 일관한다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내려가는 계단과 낭떠러지 밖에 없다. 이른바 변화가 없으면 도태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한국남녀배구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현명하게 대처해갈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제 대표팀이건 프로팀이건 간에 전력분석관은 코칭스태프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배구부터 창의적인 플레이를 습득시킬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배구사를 본다면 개인적으로 신진식이 나왔을 때가 첫 번째 축복이었고 김연경이 출연했을 때가 두 번째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신진식과 김연경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공수에 모두 능통하다는 것이고 타고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배구센스가 탁월한 점이 또 하나의 이유이다. 너무나 영리하고 경기의 흐름을 꿰고 있으며 어느 상황에서든 기지를 발휘했던 천재 장윤희(전 호남정유 선수)는 애석하게도 신장이 단신이었다. 그리고 공수의 조화는 물론 빼어난 탄력과 역시나 배구센스에 능했던 마낙길(전 현대자동차 서비스)도 반복되는 허리 부상으로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내리는 재능과 질투는 공평한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여기에 비하면 신진식과 김연경은 배구선수로서 가져야할 모든 미덕을 갖춘 가장 이상적인 선수였었다. 비록 단신이었지만 그것을 커버하는 엄청난 스피드와 순발력에 강인한 파워까지 두루 갖춘 신진식은 중국과 일본에서 김세진보다 더 두려워하는 선수로 군림했었다. 

또한, 현재 한국여자배구의 축복이라 일컬어지는 김연경의 경우, 높이와 공수의 테크닉,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뛰어난 배구 센스까지 갖췄다. 그리고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플레이어라는 것이 그녀의 진가를 한층 높이고 있다. 

 타고나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이런 선수들이 생겨나는 요인 중에 배경적인 측면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분명히 최근 자라나는 유망주들은 신체적인 조건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이런 선수들에게 어떤 훈련을 시키고, 자신이 지닌 장점과 단점에 눈뜨게 해서 스스로가 터득해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인 훈련방식을 완성하느냐가 이들을 빼어난 선수로 키우는 중요한 열쇠라고 본다.

배구에서 가장 중요한 서브리시브가 하루아침에 발전할 수 없듯이 창의적인 플레이도 자라나는 꿈나무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기틀을 잡아야 이것이 후에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일방통행적인 주입식 훈련은 멈춰야 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학습효과를 유소년 때부터 터득시켜야 선수의 앞날에도 빛이 비칠 것이다.

똑같은 기본 훈련에서도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는 주입식과 감독과 선수가 함께 공유하며 터득해 가는 창의적인 방식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김호철 감독도 언급했듯이 선수들이 자신과 팀의 플레이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적은 메모를 서로 공유하며 문제점을 해결해 가는 방법은 무엇보다 선수 스스로가 생각하는 배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며 이러한 학습효과의 반복은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선수가 아닌 같은 팀에선 칭찬할 수밖에 없는 영리한 선수이자 타 팀의 입장에서 얄미울 정도로 잘하는 여우같은 선수가 되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고 박빙의 상황이나 중요한 시점에서는 더 이상 코트 안에 있는 눈만이 아닌 전체의 경기를 와이드 화면으로 보고 있는 제3의 눈이 필요한 시대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바로 전력분석관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6월 달에 있었던 남자배구 월드리그에서 가진 대 핀란드전은 전력분석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4연전에서 한국은 핀란드에게 전패를 당했지만 순간적인 전술과 경기의 흐름을 읽고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지도력이 뒷받침됐다면 적어도 그 박빙의 상황에서 한국이 2경기, 혹은 그 이상도 가져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우리의 공격패턴과 토스의 흐름이 쉽게 간파되고 이것을 약점으로 여기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핀란드에게 전력분석의 다양한 시선이 부족했던 한국은 그 고비마다 패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자금력에서 힘든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한배구협회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앞으로 국제배구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국내 프로팀들처럼 경기장 내에서 다양한 전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프로화만으로는 한국배구가 환골탈태할 수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들의 전환이며 이것들은 참신한 변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세계배구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제 한국배구도 그 변화의 갈림길에서 적절한 자세를 갖추지 않는다면 퇴보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있다.

발전해가기 위해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 한국배구에 있어서 필요사항은 바로 의식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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