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이소룡을 흠모해 쿵푸를 배웠고 액션 배우를 꿈꿨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이 배우보다는 코미디 쪽에 가까운 것을 깨닫고 개그맨의 길을 걸었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여기에 끊임없는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20년이 넘도록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그 쪽에서 쏟아부은 이경규(53)의 열정은 영화로 이어졌다. 1988년 발표된 심형래 주연의 '슈퍼 홍길동'이 그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당시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심형래의 빛에 가린 그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우주전사 불의 사나이'에서는 비로소 주인공이 됐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영화를 향한 자신의 본심을 드러낸다.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닌 액션물을 만들겠다고 양 소매를 걷어올린 이경규는 자신이 제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복수혈전'을 발표한다.
당시 개그맨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그는 "내 꿈이 마침내 실현됐다"고 말했다. 영화를 향한 그의 로망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는 화제 속에 개봉됐다. 그러나 개그맨으로서 누리던 인기도 영화 흥행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뛰어든 '복수혈전'은 흥행에 실패하며 쓸쓸하게 간판을 내렸다.
'복수혈전'은 한국영화사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괴작'으로 남았다. 화려한 길을 걸었던 이경규에게 이 영화는 감추고 싶은 '오명'이었다. '복수혈전'의 실패 이후 영화계에서 그의 재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영화에 손을 댔다. 15년 뒤인 2007년에 개봉된 '복면달호'는 흥행 열풍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복수혈전'처럼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경규는 "복면달호에 한(恨)이 남아 전국노래자랑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무비 레시비 재료 : 복수혈전, 복면달호, 전국노래자랑
복수혈전(1992) 제작, 각본, 감독 이경규, 출연진 : 이경규, 김보성, 김혜선
1992년 최고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은 주병진과 이경규 투톱을 내세운 '일요일, 일요일 밤에'였다. 이 프로그램의 코너 중 하나였던 '몰래카메라'를 통해 이경규는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자신의 주가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시절, 그는 "준비해온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이 영화를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이 아니다. 모든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액션 영화다"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복수혈전'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결과는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진리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복수혈전'은 지금은 관람하기 매우 어려울 정도로 '희귀 작품'이 됐다. '괴작의 전설'로 남은 이 영화에서 이경규는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버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의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대중에게 비쳐진 이경규의 익살스러운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 때문에 극장을 찾던 관객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복면달호(2007) 제작 이경규, 감독 김현수 김상찬 출연진 : 차태현, 임채무, 이소연
'복수혈전'의 악몽을 털어내는데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복수혈전'의 실패는 그에게 좌절로 다가왔지만 교훈도 안겨줬다. 그는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또한, 하나의 작품을 온전하게 완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두 발로 뛰어다녔다. 이러한 노력은 2006년 1월 영화사 in&in 픽쳐스를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 작업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
영화 작업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만 맡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을 기용했다. '복면달호'는 엄청난 흥행작이 되지 못했지만 전국 161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통계)을 끌어 모았다.
전국노래자랑(2013) 제작 이경규 감독 이종필 출연진 : 김인권, 류현경, 김수미
이경규가 '복면달호'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작품. 이 영화도 그는 제작에만 참여했을 뿐 나머지 작업은 전문가들에게 맡겼다. 출연도 카메오로만 등장할 뿐이다. '복수혈전'이 공개된지 20년이 지난 뒤 이경규는 마침내 경쟁력을 갖춘 상업 영화인 '전국노래자랑'을 탄생시켰다.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은 코미디 영화가 아닌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과도한 코미디를 배제하고 서민들의 다양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인들의 정서를 맞추기 위해 '감동'이라는 코드도 사용했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감동은 억지로 눈물샘을 짜내는 것이 아닌,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여서 인상적이다.
주인공인 봉남(김인권 분)은 이경규의 분신처럼 보이는 캐릭터다. 젊은 시절, 가수의 꿈을 꾸었던 봉남은 중년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인물이다. 아내 미애(류현경 분)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미용실의 셔터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이런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가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다. 결국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자신의 노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러한 점은 끝까지 영화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경규와 많이 닮았다.
'전국노래자랑'은 영화를 향해 변치 않은 이경규의 마음을 그린 '단심가(丹心歌)' 같은 영화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의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150만 관객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본전을 넘어 흥행 성공을 꿈꾸는 그의 희망이 세 번째 영화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1일 개봉.
* 단심가(丹心歌) : 고려 말기, 정몽주가 이방원의 '하여가'에 답하여 고려에 대한 변하지 않는 충성심을 노래한 시조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이경규 (C) 엑스포츠뉴스DB, 복수혈전, 복면달호, 전국노래자랑 영화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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