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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노리개' 자살 여배우의 절규, 사회 부조리 고발하다

기사입력 2013.04.15 04:45 / 기사수정 2013.04.15 04:45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연예계 성상납 풍토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사건이 있었다. 4년 전에 터진 '故 장자연 사건'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 장자연이 성상납을 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장자연 리스트'는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던졌다.

'故 장자연 사건'은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연예계의 풍토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모티브를 받은 영화가 마침내 완성됐다. 최승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노리개'는 '故 장자연 사건'에서 모티브를 받았다. 최승호 감독은 '故 장자연 사건'은 물론 연예계에 만연했던 각종 성상납의 사건들을 조합해 '노리개'를 완성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연예계 성상납 풍토'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고 충격적이었다. '노리개'는 '도가니'(2011), '돈 크라이 마미'(2012) 이후 사회적 문제에 돌직구를 던지는 영화다.

추악한 진실이 규명되면서 점점 드러나는 '노리개'

'노리개'는 '심심풀이로 가지고 노는 물건' 혹은 '장난삼아 데리고 노는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성상납 혹은 술시중을 받은 연예계 지망생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리개'가 되어야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있다.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 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연기자의 45.3%가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았고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신인 여배우 정지희(민지현 분)가 자신의 방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된다. 이 사건에는 거대 신문사 회장 현성봉(기주봉 분)과 연예소속사 대표 차정혁(황태광 분)이 피고인으로 기소된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사건의 실마리에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증인이 법원 출석을 기피하고 있다.

진실이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는 단 두 명뿐이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해고된 열혈기자 이장호(마동석 분)는 '맨땅뉴스'라는 온라인 뉴스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그는 이 사건의 열쇠가 될 '정지희의 다이어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여검사인 김미현(이승연 분)이다. 대법관의 딸인 그녀는 '정지희 자살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불리하게 전개된다. 거대 신문사 회장과 연예 기획사 대표의 뒤에는 비리에 연루된 변호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측에서는 "이 사건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쯤에서 손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김미현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도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노리개'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정지희의 다이어리를 추격하는 이장호, 법원에서 피고인들과 증인들을 심문하는 김미현, 그리고 성접대 사건의 희생양인 정지희, 이들 세 명의 이야기는 진실의 껍질을 하나 둘 씩 벗겨나간다.

이장호는 네티즌들의 성원을 받으면서 이 사건의 실마리를 추격하지만 새로운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지희에게 성상납을 받은 구체적인 물증인 '다이어리'가 남아있다. 또한 김미현은 가장 중요한 증인인 고다령(이도아 분)을 법원에 출석시키려고 노력한다. 고다령은 정지희가 신문사 회장인 현성봉(기주봉 분)에게 강제 성상납을 당하는 장면을 유일하게 목격했다.

정지희의 다이어리와 고다령의 증언은 마침내 만천하에 공개된다. 그러나 '정지희 자살 사건'을 일으킨 거대 권력 세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노리개'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결말을 보여주는 '휴머니즘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 한 여배우의 삶이 망가지는 과정을 통해 '성상납 강요'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풍토를 여과 없이 고발하고 있다.

실제 사건에 기초한 이 영화는 성상납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연예기획사의 간판으로 성장한 고다령은 '노리개'로 여기기엔 너무 커버린 존재다. 이와 비교해 아직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정지희는 쉽게 부려먹을 수 있다. 현성봉 앞에 불려나온 고다령과 정지희는 급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 줄곧 찬밥 신세를 당한 정지희는 "제가 언제까지 이런 역할만 해야 하나요! 제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두세요. 저는 정.지.희 예요. 저도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란 말을 내뱉는다.

이런 정지희는 현성봉과 연예소속사대표인 차정혁(황태광 분)의 '노리개'가 되고 만다. 부당한 계약서로 인해 정지희는 차정혁의 소속사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결국 연기 대신 회사를 위해 자신의 성을 파는 일을 주로 했던 정지희는 자살을 선택한다.



상업영화의 홍수 속에 등장한 사회 고발 영화


최승호 감독은 '노리개'에 대해 "이런 소재를 꼭 다루고 싶었다. 언젠가는 만들어져야할 영화"라고 말했다. 상업 영화가 끊임없이 제작되는 현 상황에서 '노리개'와 같은 사회 고발 영화의 등장은 매우 신선했다.

영화라는 문화는 관객들에게 '즐거움'만 제공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부조리한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영화도 필요하다. 특히 사회를 외면하고 환상만 심어주는 작품 만이 넘쳐난다면 영화의 힘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노리개'의 등장은 반가웠다.

'노리개'를 통해 새롭게 떠오른 민지현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적지 않은 여배우들은 성접대의 희생양이 되는 정지희 역을 거부했다. 최승호 감독은 "정지희 역을 맡을 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노출의 수위를 떠나 여배우가 안고 가야할 이미지가 거절의 중요한 이유였다. 만약 민지현 마저 이 배역을 거절할 경우 마지막 방법으로 오디션을 치를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용기가 필요했을 정지희 역을 소화한 느낌에 대해 민지현은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노출 등 힘든 것은 이미 각오한 상태였다. 모든 것을 당당하게 해낼 수 있는 당위성을 가져야 감정 전달은 물론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성상납의 희생양이 되는 쉽지 않은 배역을 민지현은 무난하게 소화했다. 수위가 높거나 폭력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민지현의 연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또한 '노리개'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마동석의 뛰어난 연기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물론 아쉬움도 존재한다. 성상납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은 훌륭했지만 지나치도록 관객의 분노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감춰졌던 성상납 사건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점과 출연 배우들의 호연은 '노리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노리개'는 성폭력이라는 지뢰밭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의 삶이 왜 보호받아야하는지를 설파하고 있다. 18일 개봉 예정.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노리개 영화 스틸컷 (C) 무비앤아이 제공]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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