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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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배수빈의 '광해', 영화의 색채를 지우다

기사입력 2013.03.09 02:33 / 기사수정 2013.11.18 18:05



▲ 광해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임금이라면, 백성들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갑작스레 왕이 된 하선(배수빈 김도현 분), 이 가짜 광해는 백성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진정한 군주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지 진짜 광해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백성들에게 있어 '진짜' 왕은 폭군 광해가 아닌 '백성이 우선이다'는 신념을 가진 광대 하선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비운의 군주였던 광해군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천민 하선이 대리 임금 역할을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9월 개봉해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한 동명의 영화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친숙하다.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은 영화와 꽤 흡사하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 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라'라는 한 줄의 글귀와 사라진 15일간의 승정원일기에 상상력을 더해 역사를 재창조했다. 영화 속 인물들도 대부분 그대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세세하게 다루지 못한 인물들의 심리와 내적 갈등을 깊게 묘사하고 하선의 꿈에 나타난 광해의 독백을 통해 왜 광해가 폭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영화와는 미묘한 차이를 갖는다. 무엇보다 영화와 결말을 달리 했다는 점은 영화와 차별화를 꾀하려한 성재준 연출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연극은 코믹함과 진중함 사이에서 무게 중심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조판서 박충식(황만익) 무리와의 대립 속에서 하선에게 차츰 마음을 열게 되는 도승지 허균(박호산 김대종), 조내관(손종학 김왕근), 도부장(강홍석)과 하선의 관계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반면, 하선이 궁궐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는 장면에서는 마치 시트콤을 감상하는 듯 코믹한 느낌을 준다.

풍자와 해학도 볼거리다. 극 초반과 후반에 등장하는 하선과 사물놀이패는 걸쭉한 만담을 통해 민생을 위한 정치보다 여자에만 관심 있는 왕의 위선과 이중성을 비꼬는데, 이때 이들은 관객을 극에 참여시키며 웃음을 유발한다. 

국악기를 치는 척하며 "그냥 가짜로 하세.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그럴싸할 때도 있다네"라고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내 몸처럼 백성을 생각하는 하선이 그렇지 않은 진짜 왕보다 훨씬 낫다'는 뜻의 정곡을 찌르는 유머러스한 풍자도 느낄 수 있다.



연극 '광해'는 비록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의 리더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천한 신분인 하선은 가장 높은 신분인 왕의 역할을 대신하며 '진정한 리더란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과 그에 따른 해답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영화처럼 화려한 편집 기법이 없는 연극의 특성상 배우들의 내면연기는 탄탄한 내러티브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1인 2역을 맡은 배수빈은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극과 극의 광해와 하선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몰입도를 높인다.

무대 세트에서는 연출가의 재치가 번뜩인다. 광해의 불안한 심정과 위태로운 시대상황, 등장인물들의 갈등 등은 기울어진 궁궐 세트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으로 표현됐다. 하선이 등장할 때마다 울리는 효과음을 비롯해 장면 사이에 이어지는 국악기 소리는 극적인 긴장감을 준다.

배수빈, 김도현, 박호산, 김대종, 손종학, 김왕근, 황만익, 김화영 등이 출연하는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는 4월 21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다. 100분. 공연문의 : 02-3014-2118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사진 = 광해 ⓒ 더프로]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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