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빠른 시간에 만들어서 손쉽게 먹는 인스턴트 음식. 자극적이고 톡 쏘는 맛이 있지만 여운은 길지 못하다. 반면 오랜 시간동안 푹 끓은 청국장의 맛은 오래 남는다.
KBS2TV 주말극 '내 딸 서영이'는 모처럼 등장한 '청국장 드라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이토록 밀도 있게 그려낸 드라마가 얼마나 있었을까. 부녀간의 갈등이 왜 생겼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화해하고 부둥켜안았는지를 호소력 있게 다루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시청자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와 자극적인 소재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캐릭터들도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시청자들의 지탄을 받는 '극단적인 악인’은 대부분의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과 시청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강렬한 대사도 드라마의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딸 서영이'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진정성'이 녹아든 대사로 무장했다. 또한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주인공인 이서영(이보영 분)과 이삼재(천호진) 부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자신 만의 고뇌를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고뇌는 타인과의 갈등 구조로 이어진다. 타인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하는 이야기가 '내 딸 서영이'의 50회 분량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부모와 자식의 소통은 각박한 현대에서 점점 단절되고 있고 있다.
'내 딸 서영이'의 중심 스토리는 아버지와 딸 사이에 벌어지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다. 최종회인 50회에서 의식을 잃었던 삼재는 극적으로 깨어난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이는 딸인 서영이었다.
서영은 깨어난 아버지에게 "아들, 딸, 며느리 중에서는 원래 딸이 제일 편안하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제가 불편하시죠? 이게 다 아버지 탓이에요."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들인 상우(박해진 분)보다 딸인 서영을 아꼈던 삼재는 두터운 부녀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도박의 늪에 빠져들면서 부녀의 관계는 뒤틀어진다. 방탕했던 삶에서 개과천선한 삼재는 딸과 화해를 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갈등을 푼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의 손을 잡았다. 서영은 도박으로 가족을 버렸던 과거의 아버지를 용서했고 삼재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결혼식을 올린 딸을 품에 안았다.
서영과 삼재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는 단순한 부녀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상대가 잘못했을 때 원망보다 '이해'를 앞세워야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강한 자존심이 때로는 타인에게 다가서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자존심이 강했던 서영은 쉽게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확인한 딸은 굳게 잠긴 마음의 자물쇠를 풀었다. 삼재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만 자녀들을 생각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한다. 서영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고 하염없이 기다렸던 아버지는 딸과 화해에 성공했다.
'내 딸 서영이'는 한 번 보고 뒤돌아서는 가벼운 드라마가 아니다. 깊은 여운의 맛이 짙게 느껴지는 '청국장'같은 드라마다. 각박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네에게 참다운 소통과 화해가 무엇인지를 들려준 뒤 막을 내렸다.
[사진 = 이보영, 천호진 (C) KBSTV 방송화면 캡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