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근래 들어 원작의 동화 내용을 뒤집은 '변종 동화'가 유행하고 있다. 토미 위르콜라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도 이러한 영화 중 하나다.
대중들에게 알려진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간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를 둔 남매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의 학대에 시달린다. 계모는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리도록 그들의 아버지에게 종용한다.
계모의 강요에 못이긴 아버지는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리는 짓을 반복한다. 하지만 영민했던 남매는 숲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표식을 남긴다. 아버지가 숲으로 데리고 갈 때 하얀 조각돌을 지속적으로 떨어트린다. 남매는 이 표식을 보고 늘 집으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표식으로 남길 물건이 없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하얀 조각돌 대신 빵조각을 떨어트리며 표식을 남긴다. 그러나 숲 속에 사는 동물이 빵 조각을 먹어치우면서 이들은 길을 잃어버린다. 어두운 숲 속을 헤매던 두 남매는 빵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집을 발견한다. 허기에 가득 찬 남매는 빵으로 만들어진 집을 먹던 중 그곳에 살고 있던 노파를 만난다.
하지만 이 노파는 악명 높은 마녀였다. 마녀의 의도는 빵과 설탕을 아이들에게 먹여서 살을 찌우게 한 뒤 잡아먹는 것이다. 마녀는 헨젤을 우리 안에 가두고 그레텔을 하녀로 삼는다. 헨젤이 어느 정도 살이 찌자 마녀는 오븐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레텔은 꾀를 내어 마녀를 오븐 속에 가두고 헨젤을 구출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마녀의 집에 있던 보석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 때 계모는 죽은 상태였고 세 가족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잔혹 동화'가 아닌 '오락용 고어 무비'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은 성인이 된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를 새롭게 꾸며냈다. 어린 두 남매가 마녀를 오븐 속에 집어넣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을 치른 이들은 '마녀 사냥꾼'으로 성장한다. 헨젤(제레미 레너 분)과 그레텔(젬마 아터튼 분)은 아이들을 잡아가는 마녀들을 상대로 ‘무패행진’을 펼치며 명성을 쌓는다. 그들이 새롭게 대적해야할 상대는 ‘대마녀’ 뮤리엘(팜케 얀센 분)이다.
'마녀들의 우두머리'인 뮤리엘은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 마법의 힘이 다른 마녀들과 비교해 월등한 것은 물론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뮤리엘은 어린 아이 12명을 납치한다. 붉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이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다. '마녀 사냥꾼' 헨젤과 그레텔은 잡혀간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뮤리엘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이처럼 지극히 단순하다.
단순한 스토리 전개를 극복하는 것은 '최첨단 3D 액션'이다. 마녀들이 막대기(빗자루가 아니다)를 타고 숲을 날아다니는 장면과 가상의 건물(빵으로 만든 집, 마녀의 성)은 그럴듯하게 보인다. 몸을 아끼지 않고 거친 액션을 구사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이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붉은 피가 이리저리 튀는 '잔인한 장면'이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을 지배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들 중 온전하게 저승으로 간 이는 얼마 안 된다. 헨젤과 그레텔이 쏜 총을 맞은 마녀들의 시체는 성한 것이 없다. 또한 마녀의 주문에 걸린 사냥꾼은 몸이 산산조각으로 분해된다. 마녀의 하수인인 트롤(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설에 나오는 거인족)은 거대한 발로 사람의 머리를 무참하게 짓밟는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은 고어 무비(gore란 '흘린 피' '피범벅'이란 뜻을 가졌다. 잔인한 장면을 통해 잔혹한 주제를 강조하는 영화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실제로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은 북미에서 R등급(Restricted의 약자로 17세 이하는 부모나 성인보호자 동반 시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을 받았다. 제작사인 북미 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쳐스는 "자극적인 노출 장면과 강렬한 판타지 호러 그리고 핏빛 비주얼 액션 등으로 인해 R등급으로 조정됐다"고 밝혔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의 배급사는 동화를 다룬 영화들 중 최초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점과 '성인을 위한 잔혹 동화'라는 문구를 내세워 홍보했다.
그렇다면 '잔혹 동화'란 무엇일까? 동화의 순수함을 벗어던지고 잔인한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것만으로는 '잔혹 동화'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동화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주제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다시 읽어보면 인간의 사악한 마음과 음란한 욕망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잔혹 동화'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동화의 내용을 뒤집어보고 그곳에서 인간의 감춰진 사악한 면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헨젤과 그레텔'의 원작자인 그림형제는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을 함부로 버렸던 중세 시대의 악습에 경종을 울렸다. 보호가 필요한 어린이들이 학대당하면 안 된다는 주제를 지닌 후속 작품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은 남매 마녀사냥꾼과 최강 마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에만 집중하고 있다. '마녀를 처단해야하는 책임감'에 몰두해 있는 두 주인공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또한 원작에서 볼 수 있었던 헨젤의 용기와 그레텔의 재치도 느낄 수 없었다.
87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영화를 가득 채우는 것은 현란한 3D액션과 '피 튀기는 장면'뿐이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의 정체성은 '잔혹 동화'가 아닌 '오락 고어영화'에 가깝다.
[사진 =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 스틸컷]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