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우승자 못지않은 기백이 깊은 가을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박세리(35, KDB금융그룹)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한국(계) 골퍼들 중 가장 좋은 타수를 기록했다. 한국 골퍼가 유독 강한 이유에 대해 "작지만 강하다"라고 요약한 그는 여전히 생동감이 넘쳤다.
유일한 LPGA 1세대가 된 박세리(35, KDB금융그룹)가 또 하나의 '가을의 전설'을 남겼다.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바다코스(파72·6천364야드)에서 열린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단독 4위에 올랐다.
20일 열린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몰아친 박세리는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막판 역전 우승을 노렸지만 최종 3라운드에서는 2타를 줄이는데 그쳤다. 버디 6개를 몰아치며 분전했지만 보기 4개를 범한 점이 아쉬웠다. 이 대회 초대챔피언이었던 그는 2002년 우승 이후 10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렸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후회 없는 샷을 날렸다.
경기를 마친 박세리는 "팔 근육통 때문에 서울에서 치료를 받았다. 회복 속도가 빨라서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컸다. 최종 라운드 초반에 흔들린 점이 아쉽지만 즐겁게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대회는 여러모로 박세리에게 특별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머나먼 타국에서 함께 뛰었던 김미현(35, KT)이 고별 무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IMF 위기가 닥쳐오던 시절에 박세리는 LPGA 무대를 휩쓸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LPGA 무대를 주름잡던 1세대는 박세리와 김미현 그리고 박지은(33, 미국명 그레이스 박)이었다. 이들은 한국 골퍼의 'LPGA 침공'의 물꼬를 튼 주역들이다.
많은 후배들은 이들이 다져놓은 길을 뒤따랐다. 한국 여자골프가 LPGA를 점령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된 인물은 단연 박세리였다. 1998년 본격적으로 LPGA 투어에 도전한 그는 첫 해에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오픈 등 두 개의 메이저대회를 휩쓸었다.
지금까지 LPGA 개인통산 25승이라는 위업을 남긴 그는 통산 상금도 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7년 6월에는 꿈에 그리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한국 골프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누구도 걷지 못한 길을 걸었지만 위기의 순간도 찾아왔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승 횟수는 점점 줄었고 스폰서 없이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도 몰렸다.
순탄치 못한 협곡에 도달할 때도 그는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결국 2010년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지난 9월에는 자신의 후원사가 주최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KDB대우증권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국내 투어에서 9년 만에 정상을 탈환한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였다. 한국 골퍼가 LPGA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올리는 점에 대해 박세리는 "타고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작지만 강하다.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강한 정신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는 부담감이 가장 힘든 것 중 하나인데 한국 선수들은 이 점에서 강하다. 빠른 적응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필드를 걸어온 그는 '마지막 LPGA 1세대'가 됐다. 마지막 대회를 마친 김미현은 "(박)세리가 맏언니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세리 이후 한국 낭자들은 LPGA에서 100승을 돌파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한국 골프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주인공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사진 = 박세리, 김미현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