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4(3) 가진건 그것뿐서울현…
남포 소년원(少年院).
절도, 폭력, 강도 등등…죄를 지은 소년들을 격리수감,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덜컹.
석실(石室)의 철문이 열리며 두 명의 사내에게 양팔을 붙들린 십 여세 가량의 소년하나가 복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 좀 놔요. 내 발로 걸어 들어 갈테니.”
심드렁한 얼굴로 두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며 소년이 말했다.
“아니! 이 자식이, 뭘 잘했다고, 여기까지 와서도 이리 당당해.”
“도망가지 않을 테니 걱정 붙들어 놓으라고요. 사호실(四號室)이라고 했죠?”
어이없어하는 사내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소년이 씩 웃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네 번째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못 말리겠군.”
“그러게 말이야. 도대체가 열살 난 어린아이라고는 보이지가 않으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이던 사내들은 이내 등을 돌려 밖으로 걸어나갔다.
“하하하핫…잘 들 있었는가?”
사호실로 들어서기 무섭게 호탕하게 소년이 웃어 제꼈다.
“……!”
깜짝 놀란 얼굴로 십 여명의 소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아…그렇게 과민반응들 보이지 말라고, 저번에는 내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랬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안한 관계로 소란 피울 생각 없으니까 말이야.”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소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소년의 이름은 최정열이었다.
남포현 출신으로 어린 나이답지 않게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또래 중에서는 소문난 싸움꾼이었다.
“그 동안 건강히 잘 계셨소? 형님.”
구석에서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는 소년을 향해 최정열이 슬쩍 웃음 지었다.
사호실의 실장인 권기영이라는 소년으로 나이는 실내에서 제일 많은 열 여섯이었다.
“끄응…”
권기영은 못마땅한 듯 최정열을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어라? 사람이 인사를 했으면 받아줘야지. 혹시 저번에 나한테 맞아서 이빨 깨진 것 때문에 이러는 것이오? 이것 좀생이같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뭐…뭐야? 좀생이!”
최정열의 이죽거림에 권기영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눈을 부릅떴다.
“됐수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몸인데 이곳까지 와서 또 싸움 벌이기는 싫소. 난 한숨 잘테니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하시오.”
말을 마친 최정열은 구석자리로 걸어가더니 이내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
권기영과 소년들은 무척이나 불만이 많은 표정들이었지만 아무도 최정열을 향해 다가서는 이는 없었다.
“지겨워 죽겠군. 또 왔냐?”
소년원장 김건호의 얼굴 가득 황당한 표정이 그려지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요. 낸들 오고싶어서 왔겠습니까? 잡아오니까 할 수 없이 왔지. 나도 지금 미치겠습니다. 밖에 나가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김건호 앞에 비딱하게 선 모습으로 최정열이 대꾸했다.
“할일? 무슨 할일? 너 같은 어린 녀석이 무슨 할 일이 그리도 많다고…?”
“참나, 알면서 그러시네. 지금 우리 복호살수파(伏虎煞手派)는 저를 무척이나 필요로 하고 있다고요.”
“복호살수파? 웃기고 자빠졌네. 저잣거리 주먹패들 주제에 무슨 거창한 이름씩이나…그리고 거기에 너 같은 어린 녀석이 뭔데 들어 붙어있는 것이야? 넌 임마, 학문을 익히던지 무예나 농구를 익힐 나이라고.”
“자꾸, 나이 나이하지 마십시오. 저도 알만한 것은 다 아는 나이라고요.”
“알기는 개뿔을 알아. 거기에 계속 있다가는 너는 평생 저잣거리의 똘마니 신세밖에 안돼.”
“똘마니라니오? 전 두령(頭領)이 될 거라고요. 복호살수파의 두령이요. 그래가지고 근처의 불혼패엽파(佛魂貝葉派), 번천육합파(飜天六合派), 십방매화파(十方梅花派)등등…모든 저잣거리 일파들을 통일할 것이라고요.”
“꿈도 야무지다. 도대체가 네놈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군.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없으니…”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김건호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무리 얘기를 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 보십시오. 저랑 아무리 떠들어봤자 입만 아프다니까요. 어서 상담 끝내시고 절 다시 사호실로 돌려 보내주세요.”
(아! 그렇지.)
문득 뭔가가 생각 났다는 표정으로 김건호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너 하나만 물어보자. 넌 왜 주먹패에 끼어서 그러는 것이냐?”
“말했잖아요. 두령이 되기 위해서라고.”
“그런 추상적인 것 말고, 근본적인 것을 말해봐. 왜 주먹패의 대가리가 되려고 그러는 것인데…?”
“재미있으니까요.”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다.
(좋아.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라니까…)
김건호의 눈이 이채(異彩)를 뜨고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럼 다른 재미있는 것 하나 알려 줄테니 이곳에서 그것을 해봐라.”
“다른 것요?”
“그래. 다른 것.”
“뭔데요. 그게?”
“농구.”
“푸하하핫…”
김건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정열이 웃음을 터트려 댔다.
“하하핫…난 또 뭐라고, 기껏 농구 얘기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던 것입니까? 하하하…아이고, 복창이야.”
“얘기를 끝까지 들어. 이 자식아!”
붉어진 얼굴로 김건호가 탁자를 ‘탕’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네 녀석이 이곳에서 있어야할 시간은 삼 년이다. 하지만 농구를 하겠다면 딱 절반으로 줄여주겠다.”
“저…정말입니까?”
그제 서야 최정열이 웃음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그후의 선택은 네 녀석의 자유다. 하지만 이후에도 농구에 재미를 붙여 계속하겠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
“절반으로 줄여준다니 농구인지 뭔지 해보기는 하겠습니다만 재미를 붙일 일은 없을 거니까 애당초 이상한 기대 같은 것은 가지지 마십시오.”
“시끄러워. 일단 해보고 나서 그 딴소리 지껄여!”
저잣거리 어린 주먹패의 농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김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