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쇼트트랙 여자대표팀 김길리가 9일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하얼빈, 최원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하얼빈, 최원영 기자) 한 뼘 더 성장하고 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신흥 에이스이자 '미래'임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번의 좌절이 마음에 걸렸다. 팀 동료들에게 미안해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을 끝마친 김길리(성남시청)는 감정을 추스른 뒤 "더 강해져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2004년생인 김길리는 이번 하얼빈 대회서 첫 아시안게임 출전에 나섰다. 물오른 경기력을 뽐냈다.
지난 8일 쇼트트랙의 첫 금메달이 걸린 혼성 2000m 계주에 출격했다. 최민정~김길리~김태성~박지원 순으로 레이스에 임했다. 2분41초534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우승이었다.
김길리는 기세를 몰아 여자 1500m서도 2분23초781로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번엔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여자 500m서는 최민정, 김길리, 이소연이 각각 1~3위를 차지하며 메달을 싹쓸이했다. 김길리는 43초105로 은메달을 수확했다.
9일에도 메달 사냥은 계속됐다. 김길리는 여자 1000m서 최민정에 이어 1분29초739로 은메달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여자 3000m 계주서 메달을 추가하려 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열매를 놓쳤다.
여자계주 결승서 중국, 한국, 카자흐스탄, 일본이 경쟁했다. 한국은 최민정~김길리~이소연~김건희를 앞세웠다. 김길리가 2번에 배치되며 가장 중요한 마지막 주자 역할을 맡았다.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여자 1,000m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김길리가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김길리(오른쪽)가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후반 한국과 중국이 선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다. 2바퀴 반가량 남은 시점서 최민정이 김길리를 밀어주며 인코스로 재역전을 이뤘다. 선두로 달리던 김길리에게 변수가 생겼다. 마지막 반바퀴가 남은 시점서 중국이 인코스를 활용해 선두로 올라섰고, 그 사이 김길리가 중국 궁리와 충돌하며 넘어졌다.
결국 중국이 금메달, 카자흐스탄이 은메달, 일본이 동메달을 기록했다. 한국은 4분16초683으로 4위에 그쳤다. 김길리는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모든 경기 종료 후 여자 1000m 시상식에 임한 김길리의 표정은 어두웠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위해 믹스트존으로 나온 그는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참아내려 라커룸에 들어갔다가 다시 등장했다. "언니들에게 미안해서…"라며 고개를 떨군 뒤 또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차례 슬픔을 삼킨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던 김길리는 믹스트존에 설치된 TV에서 여자계주 시상식이 나오자 다시 울컥했다. 그는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언니들과 다 같이 시상대에 올라가 세리머니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내가 넘어지는 바람에 못 하게 됐다. 너무 아쉬웠다"며 "이제 큰 대회만 남았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계주 도중 넘어지던 상황을 돌아봤다. 김길리는 "경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가 앞설 때와 뒤처져 있을 때의 경우를 다 생각해 뒀다. 하지만 1대1 상황이다 보니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며 "마지막에 실수하면서 중국 선수와 살짝 부딪혀 넘어졌다. 많이 속상했다"고 밝혔다.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최민정(왼쪽)과 은메달을 차지한 김길리가 태극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돌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혼성 2,000m 계주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길리(왼쪽), 최민정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대표팀의 원조 에이스이자 소속팀 선배이기도 한 최민정이 김길리를 다독였다. 김길리는 최근 여자 3000m 계주에서 2번 주자를 맡고 있다. 쇼트트랙에선 2번 주자가 결승선을 앞두고 순위를 다투는 마지막 주자를 맡는다. 에이스란 뜻이다.
최민정은 "나도 계주 2번 주자의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안다. 나 역시 안타깝고 속상했다"며 "(김)길리는 어린 선수고 앞으로 계속 쇼트트랙을 이끌어 나갈 선수다. 발전 가능성도 크다. 멀리 보면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경험을 했으니 더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길리가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데, 계주는 선수 한 명의 잘못이 아니다. 단체전이기 때문에 잘하면 다 함께 잘한 것이고 못하면 모두 못한 것이다.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길리는 "언니가 2번 주자를 많이 해봐서 안다고 괜찮다고 해주셨다. 언니들 모두 날 위로해 주셨다"며 "(최)민정 언니와 같이 레이스를 하면 더 든든하다. 마음 편히 경기에 임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를 통해 느낀 점도 있다. 김길리는 "모든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앞으로 큰 무대에서는 실수하지 않게끔 하겠다. 더 단단해진 김길리로 돌아오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여자계주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서 활약했다. 김길리는 "계주 전까지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계주에서 실수가 나와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답했다.
1년 뒤 개최되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한다. 김길리는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무대에 서게 된다면 꼭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팬들을 떠올렸다. 김길리는 "대회 내내 진짜 많은 분들께서 열심히 응원해 주셨다. 힘들 때마다 그 응원 글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고 말한 뒤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를 남겼다.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여자 1500m 시상식에서 김길리가 금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하얼빈, 최원영 기자 / 연합뉴스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