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토트넘 간보기하다가 어쩔 수 없이 왔다?
마티스 텔을 절반만 알고 하는 애기다. 그가 토트넘 입단을 결심했을 때 첼시에서 전화가 왔다. 미국 자본을 등에 업고 8~9년 초장기 계약으로 유혹하는 구단이 토트넘과 약속이 다 된 선수를 가로채기하기 위헤 나선 것이다.
텔은 매너남이었다. 그는 "너무 늦었다"며 단칼 거절했다.
20세 프랑스 올림픽대표팀 공격수 마티스 텔의 토트넘 입성기를 드라마 하나를 찍어도 부족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초신성인 그가 출전 시간 부족으로 시장에 나오자 '세계 축구의 엘도라도'라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승자는 결국 토트넘이었다.
토트넘은 지난 4일(한국시간) 텔과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한 뒤 그의 데뷔전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텔은 오는 7일 오전 5시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리는 2024-2025 카라바오컵(리그컵) 준결승 2차전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출격할 가능성이 높다.
불과 일주일 전 원소속팀 뮌헨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마치고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하던 행선지 불명의 공격수가 이젠 토트넘 17년 만의 공식대회 우승의 거대 변수로 떠올랐다.
등번호도 핵심 선수임을 뜻하는 11번을 달았다.
사실 텔은 토트넘에 절대 가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토트넘 CEO인 다니엘 회장의 간곡한 부탁에도 'NO'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8시간 뒤 그의 결론은 토트넘이었다. 지난 3일 메디컬 테스트를 마친 뒤 순식간에 입단 공식 발표까지 마쳤고 이제 데뷔전까지 앞뒀다.
이로써 텔은 손흥민 이끄는 토트넘 공격진에 합류했다.
텔의 토트넘 입단은 극적이었다.
앞서 이적시장 전문가인 파브리치오 로마노가 한국시간으로 3일 늦은 밤 자신의 SNS를 통해 "텔이 토트넘에 임대로 떠난다"며 특정 선수 혹은 감독이 확실히 이동할 때 쓰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문구 '히어 위 고'를 붙이면서 그의 토트넘행 거부 의사가 180도 바뀌었음이 드러났다.
텔은 토트넘이 그의 영입을 위해 '출전시간 보장'까지 약속했음에도 믿지 않고 이적 제안을 거부한 상태였으나 자신이 염두에 뒀던 구단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자 마지막까지 자신을 기다리던 토트넘의 손을 잡았다.
토트넘은 당초 텔에게 이적료 6000만 유로(903억원)를 제안했다. 지난 두 시즌 맹활약했지만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 14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친 공격수에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파격 제안을 제시했다.
이에 20살 텔을 임대로 보낸 뒤 돌려받으려고 했던 뮌헨도 마음을 바꿔 완전이적을 허용했다. 독일 언론은 당시 토트넘의 이적료 소식을 듣고 "뮌헨의 돈의 비를 맞게 됐다"며 경악했다.
뮌헨이 OK 사인을 내리면서 텔의 토트넘행을 유력해 보였다. 아니었다. 텔이 협상을 뒤엎었다.
토트넘은 다른 구단의 하이재킹을 우려해 속전속결 영입을 추진했다. 프랑스 유력지 '레퀴프'는 지난달 31일 "뮌헨과 토트넘은 공격수 마티스 텔의 이적에 대해 6000만 유로를 건네기로 했다"며 "텔은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른 클럽들은 제안서를 빨리 보내야 한다"며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력 갖고 있는 팀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렸다.
결국 토트넘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1일 '스카이스포츠 독일'의 플로리안 플레텐베르크는 "텔이 토트넘을 거부했다"며 "바이에른 뮌헨에 남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바이에른 뮌헨은 이제 텔이 팀에 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뮌헨 잔류는 토트넘의 파격적인 제안을 거절하기 위한 핑계였다.
텔은 토트넘을 원하지 않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등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력이 있는 다른 구단을 원했다.
토트넘이 텔의 맨유행 이적 움직임으로 두 번 망신을 당한 이유다.
토트넘은 텔이 끝내 이적을 거부하자 방향타를 돌려 맨유 20세 아르헨티나 공격수 알레한드로 가르나초, 첼시에서 백업으로 밀린 '제2의 호날두' 주앙 펠릭스 등의 영입도 타진했다.
그러나 둘의 영입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가르나초의 경우 선수가 맨유가 그를 보낼지 말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주앙 펠릭스는 이미 이탈리아 구단 AC밀란과 얘기가 다 된 상태였다.
마침 텔도 갈 곳이 없는 상황을 맞으면서 결국 토트넘과 텔이 다시 대화 창구를 열어 입단에 합의했다.
이적 대신 임대 형식을 취했지만 임대료가 무려 1000만 유로(15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영국 대중지 '더 선'은 6일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텔에 대해 '6개월 쓰려고 여기 데려온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며 "그는 토트넘과 텔이 6년 계약에 합의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텔의 마음을 돌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전화를 오래 붙잡고 있으면 지쳐버릴 것 같았다. 끝날 무렵엔 잠이 들었다"며 "텔과 전화하면서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텔이 원하는 출전시간 보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음을 시사했다.
드라마 같은 텔의 토트넘 입단이 결구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런데 여기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텔이 토트넘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첼시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주앙 펠릭스를 AC밀란으로 보내면서 텔을 데려오기 위해 막판 하이재킹에 나섰다.
레퀴프는 6일 "첼시는 주앙 펠릭스 AC밀란 임대건을 승인한 뒤 텔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며 "이 땐 텔이 토트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었다. 텔 측은 첼시에 '너무 늦었다'고 받아쳤다"고 보도했다.
첼시는 지난 2013년 브라질 테크니션 윌리안이 토트넘으로 가기 직전 가로채 핵심 공격 자원으로 쓴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뻔 했으나 텔은 마지막 의리를 지켰다.
토트넘 데뷔전을 기다리는 2005년생 프랑스 공격수 텔은 자국리그 렌에서 2022년 불과 17세 나이에 뮌헨으로 이적했다. 지금까지 1군에서 83경기 출전해 16골 7도움을 올렸다.
뮌헨은 텔을 영입하기 위해 2000만 유로(약 300억원) 거액을 렌에 지불하기로 결정해 화제가 됐다.
텔은 뮌헨 데뷔 시즌인 2022-2023시즌에 28경기 출전해 6골을 터트렸다. 주로 교체로 기용되면서 600분만 소화했지만 짧은 출전시간임에도 6골이나 넣었기에 장래가 기대됐다.
2023-24시즌엔 출전시간이 늘어나 41경기에서 10골 6도움을 기록했다. 어린 나이에 중앙 공격수, 윙어를 가리지 않고 뛰면서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토마스 투헬 감독과의 궁합도 좋았다. 여세를 몰아 텔은 지난해 3월 뮌헨과 2029년까지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뮌헨은 해리 케인의 후계자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포지션이 정통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텔의 잠재력은 케인의 공백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벨기에 국적의 월드클래스 센터백 뱅상 콤파니 감독이 오면서 텔은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됐다. 콤파니 감독 밑에서 그는 2024-2025시즌 현재까지 14경기에 나와 458분을 뛰는데 그쳤다. 공격포인트도 도움 1개만 기록했다.
텔이 콤파니 감독 밑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자 뮌헨은 이번 겨울 이적시장 때 텔의 임대 이적을 고려했고 결국 2년 전 해리 케인 이적의 두 당사자인 뮌헨과 토트넘이 이번엔 매수와 매도 주체를 바꿔 다시 한 번 딜을 성사시켰다.
텔은 왼쪽 측면에서 가운데로 파고드는 동선이 손흥민과 똑같다. 그의 분데스리가 이동 경로를 표시하는 히트맵을 보면 왼쪽 측면에서 가운데로 파고드는 동선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스트라이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윙어로 보기도 어렵다. 손흥민과 꼭 닮은 공격수란 뜻이다.
다만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과 텔의 경쟁보다는 텔을 스트라이커나 오른쪽 공격수로 쓸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리버풀전 예상 베스트11에도 텔이 오른쪽 공격수로 나왔다. 손흥민은 주포지션인 왼쪽 날개로 출격할 전망이다.
사진=토트넘 / 연합뉴스 / 빌트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