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프랑스 베르사유, 김지수 기자) 하루 8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은 아시아 여자 선수 최초의 근대5종 메달리스트라는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성승민이 생애 처음으로 밟은 올림픽 무대에서 당당히 포디움에 올라 동메달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근대5종 여자부 세계 1위 성승민은 11일(한국시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근대5종 특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하계올림픽 근대5종 여자부 결승전에서 총점 1441점을 기록, 출전 선수 18명 중 3위에 오르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헝가리의 미셸 구예스가 됐다. 구예스는 레이저런에서 역전에 성공한 뒤 1461점의 세계신기록까지 작성했다. 프랑스의 엘로디 클로벨이 1452점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근대5종은 2020 도쿄 대회(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1년 개최) 전웅태가 동메달을 따내며 이 종목 최초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성승민은 3년 후 파리에서 전웅태의 뒤를 이어 한국 근대5종 역사상 두 번째, 아시아 여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포디움을 밟은 주인공이 됐다.
성승민은 "동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 너무 영광이다. 이번 대회를 앞으로도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성승민은 전날 준결승 A조에서 1400점으로 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402점의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한 조 1위 영국의 케렌자 브리슨과 격차가 2점에 불과했다. 결승에서도 충분히 메달 경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큰 수확이었다.
성승민은 결승 첫 종목이자 최대 고비로 꼽혔던 승마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승마는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무작위로 배정하는 말을 타고 경기에 나선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에 불과해 말과 빠른 교감이 중요하다.
이날도 스페인의 라우라 에레디아가 배정받은 말이 3차례나 장애물 넘기를 거부, 이 종목 0점을 받는 아픔을 겪어 최종 17위에 그쳤다. 선수의 실력이 아닌 어떤 말을 배정받느냐에 따라 메달 색깔이 바뀌는 '복불복' 논란이 거세지자 2028 LA 대회에서는 근대5종에서 승마는 빠진다.
성승민은 승마에서 말 '패스트 두 프레'를 차고 주어진 시간 내 장애물을 모두 넘어 300점을 모두 획득했다. 지난 8일 펜싱 랭킹라운드에서 얻은 225점을 합쳐 중간 점수 525점을 기록, 중국의 장밍위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이어진 펜싱 보너스 라운드에선 이 종목이 강한 이탈리아의 엘레나 미켈리에 패해 추가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수영에서 만회했다.
올림픽 근대5종 수영은 25m 코스를 4번 오가는 자유형 200m 경기로 열린다. 2분30초00으로 들어오면 250점, 0.5초씩 당길 때마다 1점씩 추가 획득, 0.5초씩 늦어질 때마다 1점씩 감점한다.
성승민은 3조 4레인에서 출발, 처음부터 앞서 나간 끝에 2분11초47로 가장 먼저 터치 패드를 찍었다. 수영에서 288점을 추가하면서 수영까지 마친 전체 점수는 813점을 기록해 단독 3위가 됐다.
성승민은 마지막 종목 레이저런에서도 클로벨보다 31초 늦게 출발해 추격에 나섰다. 성승민은 총 4차례 사격 중 두 번째 사격에서 5발을 실수 없이 빠른 속도도 모두 맞히며 선두권과의 간격을 좁히고 나섰다. 한 때 클로벨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서기도 했으나 3번째 사격에서 다소 부진해 기록이 지체됐고 3위로 순위가 돌아갔다. 4위로 골인한 헝가리의 블랑카 구지(1433점)를 제치고 3위를 확실하게 지켰다.
성승민은 "내가 항상 기술 종목이 부족했다. 승마와 펜싱 부분이 약하다는 걸 나 스스로도 얘기했었는데 오늘부로 승마는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다"며 "앞으로 올림픽 근대5종에서 승마는 없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성승민을 가장 괴롭혔던 건 승마보다 육상이었다. 하나를 하기도 어려운 펜싱, 수영, 승마, 사격, 육상을 모두 해야 하는 근대5종은 저변을 넓히기 쉽지 않아 늘 선수 부족에 시달리는 종목이다.
하지만 근대5종에서 마지막 순간 메달 색깔이 갈리는 것 또한 육상이었기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뛰는 게 너무 싫었지만 훈련 강도를 낮추거나 피하지 않은 노력이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성승민은 "평소 훈련 때 육상이 가장 하기 싫었다. 그런데 안 할 수가 없는 종목이다. 매일매일 육상 훈련이 제일 힘들었다"며 "하루하루 얼마나 뛰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숨이 차도록 뛰고 또 뛰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레이저런 때 잠시 2위가 됐을 때는 나도 욕심이 생겨서 1등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3~4바퀴쯤 되니까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며 "일단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3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웃었다.
2003년생인 성승민은 4년 후 미국 LA에서 열리는 제34회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창 전성기에 접어들 만 25세다. 이번 파리 대회보다 한층 원숙해진 기량을 뽐낼 가능성이 높다.
성승민은 "승마는 다음 올림픽부터 근대5종에서 빠지지만 LA 올림픽에서도 도전하고 싶다"며 "이번에는 동메달을 땄으니까 LA에서는 은메달, 금메달이 더 좋을 것 같다. 금메달을 따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