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프랑스 파리, 김지수 기자) '스마일 점퍼' 우상혁(28·용인시청)이 파리에서 대한민국 남자 육상의 새 역사 창조에 도전한다. 3년 전 도쿄에서의 아픔을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서 씻어내겠다는 멋진 출사표를 던졌다.
우상혁은 11일(한국시간) 오전 2시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리는 2024 파리 하계 올림픽 남자 육상 높이뛰기 결승에 출전한다.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올림픽 메달 사냥을 목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상혁은 앞서 지난 7일 열린 예선을 가뿐하게 통과했다. 2m27을 넘고 전체 출전 선수 28명 중 공동 3위에 올랐다. 12위까지 주어지는 결승 티켓을 쉽게 획득했다.
우상혁은 예선을 마친 뒤 "예선도 결승을 뛴다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뛰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 파리 올림픽을 준비했는데 예선을 잘 마쳐서 너무 감격스럽다"며 "아직 파이널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쁜 감정은) 오늘까지만 즐기겠다. 파이널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볼 생각이다"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우상혁은 올림픽 무대 데뷔전을 치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남자 높이뛰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m26을 넘었지만 메달권에 진입하는 '월드 클래스'들과는 기량 차이가 있는 걸 확인했다.
리우 대회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한 계단씩 자신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2020 도쿄 대회(코로나19 펜데믹 여파로 1년 지연 개최)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예선에서 2m29를 넘고 당당히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육상 트랙 앤드 필드 종목에서 하계 올림픽 결승 진출자가 나온 건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이진택이 8위를 기록한 이후 25년 만이었다. 우상혁은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2012 런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누구도 넘지 못했던 벽을 넘어서는 쾌거를 이뤄냈다.
우상혁은 도쿄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m35를 넘고 당시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한국 육상 트랙 앤드 필드 선수로는 하계 올림픽 역대 최고인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메달 못 딴 게 아쉬울 정도였다.
역대 하계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2m35 이상을 넘은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경우는 우상혁이 유일했다. 우상혁은 '불운'에 낙담하기보다는 자신의 기량을 한껏 더 끌어올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우상혁은 2022년 세계실내선수권 우승, 같은 해 미국 유진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실외)에서도 은메달을 수확했다. 지난해에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 항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남자 높이뛰기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월드 클래스'로 발돋움했다.
파리 올림픽 준비 과정도 순조로웠다. 우상혁은 대한체육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70km가량 떨어진 퐁텐블로에 차린 사전 훈련 캠프에서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3일까지 3주 동안 현지 적응 훈련을 마쳤다. 평소보다 이른 시기에 결전지에 입성해 최상의 컨디션으로 점프할 수 있는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다.
우상혁은 "퐁텐플로 캠프에 빨리 왔던 게 너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훈련하는 내내 감독님과 '오길 잘했다'는 얘기를 했다"며 "퐁텐플로는 훈련 환경이 좋았다. 조용하기도 해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집중력을 끝없이 올릴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파리 올림픽 남자 육상 트랙 앤드 필드 종목이 열리는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의 환경과 여건도 우상혁을 설레게 한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반면 이번 대회는 예선부터 8만명에 육박하는 구름관중의 함성 속에 점프를 뛸 수 있었다.
스타드 드 프랑스는 1998 프랑스 월드컵 개막식과 결승전,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 경기장으로 사용된 곳이다. 프랑스 월드컵에선 프랑스와 브라질이 맞붙은 결승전에서 프랑스 축구의 영원한 'No.1 G.O.A.T' 지네딘 지단이 선제골과 추가골을 터뜨리고 3-0 승리를 견인했던 장소로도 한국 팬들에게 친숙하다.
우상혁은 "이런 대형 스타디움에서 많은 관중들이 들어찬 가운데 경기를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고 영광이다"라며 "대한민국 육상 선수로서 너무 자랑스러운 날이다. 결승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더 자랑스럽게 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경기장 분위기뿐 아니라 트랙 환경도 우상혁의 마음에 쏙 든다. 우상혁은 지난 7일 예선에서 트랙을 처음 밟는 순간부터 '느낌'이 왔다는 입장이다.
우상혁은 "예선 당일에야 경기장 트랙을 처음 밟았다. 보라색 트랙을 처음 밟자마자 감독님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서로 첫 마디가 "무조건 좋을 것 같다'고 했다"며 "감독님께서 내게 '너와 잘 맞는 트랙이다. 지금까지 준비한 걸 의심하지 말고 후회 없이 뛰면 잘될 것 같다'고 계속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또 "도쿄 올림픽 이후 수많은 트랙에서 뛰어봤지만 파리 트랙이 도쿄보다 더 좋다고 들었다. 그래서 기대감이 더 있었다"며 "실제로 뛰어보니까 정말 느낌이 좋은 점프였다. 10만명 가까이 들어오는 스타디움에서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파이널에서 대한민국 선수로 더 자랑스럽게 뛸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우상혁은 평소 신중한 화법을 구사했지만 파리 올림픽 결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는 달라졌다. 그만큼 이번 대회 준비를 철저하게, 또 완벽하게 했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
우상혁은 "도쿄 올림픽 결선에서 4위는 불운인 동시에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내 기록 이상을 뛰어왔고 이번에는 포디움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다. 애국가 한 번 울려보고 싶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은 1945년 광복 후 출전한 역대 하계 올림픽에서 육상 종목 메달은 마라톤에서만 나왔다. 1992 바르셀로나 대회 황영조의 금메달, 1996 애틀랜타 대회 이봉주의 은메달이 유이하다.
우상혁이 파리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메달을 목에 건다면 한국 육상 트랙 앤드 필드 종목 최초로 메달리스트를 배출하게 된다.
한편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엔 우상혁을 비롯해 체코의 얀 스테펠라, 카타르의 바르심,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소틸레, 자메이카의 로메인 백퍼드, 불가리아의 티호미르 이바노프, 일본의 아카마쓰 료이치, 이탈리아의 탬베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브라이언 래츠, 미국의 매큐언 셸비, 우크라이나의 올레흐 도로슈크, 뉴질랜드의 해미시 커 등 12명이 출전한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