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노수린 기자) '과몰입 인생사2' 패널들이 김우중 회장 삶에 과몰입했다.
18일 방송된 SBS '과몰입 인생사2'에서는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 김동환 대표가 텔러로 출연해 '단돈 500원으로 대한민국 3대 재벌이 된 사람' 대우의 초대 회장 김우중 이야기를 펼쳤다.
김우중은 인턴으로 입사했던 이십 대 시절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고. 비효율적인 일은 귀신같이 찾아내서 발견하는 족족 바꿔 놓았고, 바로 정사원으로 승격됐다.
포상 휴가를 떠난 김우중은 머나먼 타지에서 회사 상품과 똑같은 물건을 발견, 직업병이 발동해 바로 단가 파악에 나섰다.
해당 물건은 한국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김우중은 현지 공장의 거래처를 찾아가 반값에 물건을 제공하겠다고 제안, 계약을 체결해 서른 살 나이에 대우실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대우 창립 7년 만에 수출 1억 달러를 달성, 5년 후에는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창립 11년 만에 대한민국 수출 1위 기업이 됐다.
이 시점에서 김우중은 '새로운 산업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프리카 개척에 도전했다. 하필 이때 제비족의 출현으로 직원들이 장기 해외 출장을 꺼려하자 온 가족을 함께 가도록 했다.
김우중은 별명이 '킴기즈칸'일 정도로 전 세계에 무섭게 진출했다. 그 당시 해외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몰라도 대우는 알 정도로 대우의 발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고.
또한 김우중은 북한 사업을 두고 현대 정주영 회장과 경쟁을 펼쳤다.
이찬원은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둘 다 이 사업에 사활을 걸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우중은 김정일을 설득하기 위해 대우 중장비들을 동원해 "우리는 뭐든 만들 수 있는 기업"이라고 어필했다. 이에 김우중은 정주영보다 7년 앞서서 북한의 경제 협력 파트너가 되는 데 성공했다.
"나라마다 친한 친구는 반드시 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던 김우중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 토론에서 "정부 결탁형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나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부에서도 나라를 위해서 공헌하는 사람에게 더 정이 갈 것"이라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또한 김우중은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 티코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으로 남다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승승장구하던 대우는 IMF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당시 김우중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대우는 결국 해체의 길을 밟았다.
이후 김우중은 해외로 도피했고, 5년 8개월 만에 인터폴 적색 수배자 신분으로 귀국했다. 분식 회계 혐의로 구석 기소된 김우중은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았다.
사진=SBS 방송화면
노수린 기자 srnnoh@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