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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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극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 '번트'

기사입력 2011.08.21 09:32 / 기사수정 2011.08.21 09:32

김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준영 기자] 20일 대구구장. 0-2로 뒤진 LG의 3회초 공격. 2사 3루 상황서 타석에 들어선 박용택은 윤성환의 초구에 3루 방향으로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타구는 느리게 흘렀고, 포수 현재윤이 마스크를 벗고 허겁지겁 달려와 잡아내 원바운드 송구를 했으나 1루수 채태인이 이를 포구하다가 놓치며 박용택은 세이프됐다. 1점을 만회한 LG는 이후 정성훈과 오지환의 2타점 2루타와 김태완의 유격수 방면 내야안타 때 상대 실책까지 겹쳐 3회 2사 이후에만 6안타 3볼넷을 집중해 7점을 뽑아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번트가 때로는 경기 흐름을 바꾼다.

▲ 왜 기습번트인가

박용택은 다양한 타순에 들어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타자다. 최근 몇 년간 도루 숫자는 줄었지만 사실 발도 꽤 빠르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타격이 침체했고 이날 박종훈 감독은 그를 톱타자로 배치했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박용택은 이날 누상에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더욱이 2사 3루 상황서 3루수 박석민은 박용택의 번트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박용택이 박석민뿐 아니라 삼성 벤치를 농락한 순간이었다. 설령 박석민이 번트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벤치가 알았더라면 포수를 통해 수비 위치 사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는 투수 윤성환에게 기분 나쁜 실점이었다. 반면 LG 타자들은 더욱 집중력이 높아졌다. 일거에 흔들린 윤성환은 이후 안타 5개와 볼넷 3개를 허용하며 단숨에 7점을 내줬다.  

▲ 소극적이지만 강력한 무기

알고 보면 기습번트는 가장 소극적인 공격으로 비치기 쉽지만 실상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의외성'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타자들은 득점권 상황서 기습번트를 잘 시도하지 않는다. 기습번트를 대서 내야로 타구를 보낼 바에는 풀스윙으로 외야로 공을 보내는 게 안타의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의식적으로 수비수의 동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번트를 대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최근에는 몸쪽 볼을 번트 대는 연습을 많이 하지만, 이럴 경우 몸이 뒤로 젖혀진 다음 1루로 스타트해야 하기 때문에 타이밍을 잡더라도 번트 대기가 쉬운 게 아니고 1루 진루 스타트가 늦어져 그만큼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타자 입장에서 번트가 안타로 연결됐을 경우 상대 투수와 수비진이 일거에 긴장해 흐름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자체가 허를 찔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윤성환이 연이어 난타를 당한 것도, 수비가 좋은 김상수가 실책을 범한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유사한 상황에서 1루수와 3루수가 미리 몇 발자국 뛰쳐나오기 마련이다. 발 빠른 박용택이 번트를 잘 대지 않더라도 최근 타격감이 좋지 않다는 걸 감안했다면 삼성 수비진이 박용택의 번트를 어느 정도는 대비하고 있었어야 했다. 더욱이 번트 타구를 박석민이 아닌 현재윤이 잡으면서 박용택이 이득을 봤다. 박석민이 몇 발자국 앞에 나와있었더라면 타자가 자신의 방향으로 번트를 대는 걸 보는 동시에 재빨리 뛰어오는 탄성으로 공을 잡아서 송구를 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아웃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포수 현재윤이 처리할 경우는 다르다. 포수는 일단 미트에 공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확인한 다음, 타구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번트는 멀리 나가지 않기 때문에 포수가 타자의 시야에 가려 번트 방향을 놓치는 경우가 잦다. 물론 박용택이 왼손타자라 타구를 찾는 데 있어 현재윤의 시야에 가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야수의 느린 대응 때문에 포수가 타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포수가 쪼그려 앉아있던 하체를 갑자기 일으켜 세우고, 마스크를 벗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래저래 3루수나 1루수가 처리하는 것보다 포수가 처리하는 게 번거롭다.

또한, 박용택의 3루 번트가 영리했던 건 윤성환이 오른손 투수이기 때문이다. 오른손 투수는 투구한 후 아무래도 몸의 중심이 1루로 향하기 쉽다. 최근에는 수비 시프트와 분석이 발달돼 왼손 투수가 마운드에 있다면 투구 후 3루 방향으로 몸의 중심이 향하는 걸 알고 타자가 일부러 1루방면으로 번트를 댄다. 그러나 우완 윤성환의 투구 후 몸의 중심은 1루 쪽으로 향했고 박석민의 대응이 느렸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박용택이 유리했다. 또한, 윤성환의 초구가 몸쪽으로 형성됐다면 박용택이 상체를 뒤로 젖혀야 했기 때문에 달려나가는 데 손해를 볼 수 있었지만, 윤성환의 초구는 바깥쪽으로 형성돼 박용택이 센스 있게 기습 번트를 댈 수 있었다. 박용택의 센스가 LG를 살렸다. 이처럼 번트가 때로는 안타와 홈런보다도 강력한 공격 무기가 될 수 있다. 

[사진=박용택 ⓒ 엑스포츠뉴스 DB]



김준영 기자 kjy@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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