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목동, 최원영 기자)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맏형 이정수(35·서울시청)가 후배들을 격려했다.
이정수는 지난 12일 종료된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최종 5위를 기록했다.
쇼트트랙 차기 시즌 국가대표는 1, 2차 선발전 랭킹 포인트를 합산해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남자부의 경우 1~3위가 차기 시즌 국제대회 개인전 우선 출전 자격을 얻는다. 4~5위는 단체전 우선 출전 자격을 획득하고 6~8위는 국가대표 후보가 된다.
이번 선발전 1위는 랭킹 포인트 총점 92점을 이룬 박지원(서울시청)이었다. 장성우(84점·고려대), 김건우(73점·스포츠토토), 김태성(73점·서울시청)이 각각 2~4위에 자리했다. 김태성은 김건우와 랭킹 포인트 73점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종목별 성적 계산(CDR)에 따라 4위가 됐다. 이정수는 47점으로 5위다. 소속팀 동료 박지원, 김태성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다.
박지원은 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에이스로 꼽힌다. 출중한 기량을 갖췄다. 이정수도 같은 생각이다. 이정수는 지난달 2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엑스포츠뉴스와 만난 뒤 "(박)지원이가 (2015년) 처음 성인대표팀에 들어왔을 때 내가 첫 룸메이트였다. 이만큼 성장했다는 게 신기하고, 선배로서 존경스럽다"며 "스케이팅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수라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 그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잘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지원이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스타일이다. 마인드가 무척 좋다. 쇼트트랙에 적합하다"며 "이젠 오히려 내가 지원이에게 배우고 의지해야 한다"고 미소 지었다.
박지원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남자 1500m 결승에서 역주하고 있다. 엑스포츠뉴스 DB
박지원은 이번 시즌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쇼트트랙 대표팀 동료 황대헌(강원도청)과의 '팀킬(Team kill) 논란'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 결승서 황대헌은 앞서 달리던 박지원을 뒤에서 밀치는 심한 반칙을 저질렀다. 당시 황대헌은 그냥 실격이 아닌 '옐로카드(YC)'를 부여받고 모든 포인트를 몰수당했다.
박지원은 지난 3월 16일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500m 결승에서도 선두로 질주하다 황대헌에게 당했다. 결승선을 세 바퀴 남긴 곡선 주로에서 황대헌이 무리하게 인코스를 파고들어 박지원을 몸으로 밀어냈다. 균형을 잃은 박지원은 최하위로 처졌다. 황대헌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세리머니를 펼쳤다. 심판은 황대헌의 반칙을 선언해 페널티를 줬고, 황대헌은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이튿날인 17일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00m 결승에서도 박지원은 황대헌의 반칙으로 넘어졌다. 결승선 세 바퀴를 남긴 시점. 황대헌에 이어 2위로 달리던 박지원은 세 번째 곡선 주로에서 속도를 올리며 인코스를 공략했다. 선두 자리를 내준 황대헌은 갑자기 손을 이용해 박지원을 밀쳤다. 중심을 잃은 박지원은 휘청이며 넘어졌고, 대열에서 이탈했다. 결국 경기를 포기했다. 심판은 황대헌에게 페널티를 부여했다.
지난 시즌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던 박지원은 올 시즌 남자 계주 은메달 1개에 그쳤다. 타격이 컸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규정에 따르면 차기 시즌 국가대표는 세계선수권 국내 남녀 선수 중 종합 순위 1명이 자동 선발되지만, 해당 선수는 개인전 1개 이상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야 한다. 2023-2024 ISU 월드컵 시리즈 세계랭킹 1위에 빛났던 박지원은 억울하게 국가대표 자동 선발 기회를 놓쳤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세계선수권 종료 후 "박지원과 황대헌의 충돌에 대해 조사를 펼쳤다. 고의성은 전혀 없었고, '팀 킬'을 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우리 선수 간의 충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이 아닌 순위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쇼트트랙의 특성상 선수 간의 충돌은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요소다. 이번 충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황대헌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남자 500m 결승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엑스포츠뉴스 DB
박지원은 국내 선발전을 노려야 했다. 만약 차기 시즌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할 경우 잃는 게 많을 것으로 보였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 태극마크를 놓치면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설 수 없으며, 병역 의무로 인해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도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차 선발전 남자 500m 준결승 2조에서 다시 황대헌과 충돌했다. 첫 바퀴 세 번째 곡선 주로에서 황대헌은 인코스를 비집고 들어가 박지원을 추월했고, 이 과정에서 박지원이 휘청이며 뒤로 밀려났다. 결국 펜스에 부딪혔다. 박지원은 다시 일어나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좁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심판은 황대헌에게 페널티를 부여하지 않았고 박지원은 조 최하위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박지원은 1차 선발전 남자 1000m 1위, 1500m 2위, 2차 선발전 1500m 1위로 종합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황대헌은 종합 순위 8위 안에 들지 못해 태극마크를 잃었다.
박지원과 황대헌은 선발전을 모두 마친 뒤 지난 22일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박지원의 소속사 넥스트크리에이티브는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상황들에 대해 황대헌이 박지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며 "두 선수는 쇼트트랙 팬과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고 쇼트트랙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 응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표팀의 맏형인 이정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봤을까. 이정수는 "당연히 화해해야 한다. 아마 선발전까지는 둘 다 엄청 예민했을 것이다. 나도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긴장한다"며 "선발전 도중 사과했다면 진짜 대화가 아닌, 흐지부지 이야기가 끝났을 것이라 본다. 선발전을 후회 없이 치르고 나서 화해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을 듯하다"고 말했다.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이정수는 "쇼트트랙은 개인 종목이기도 하지만 계주 때는 팀으로 나서야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다음 선발전 때 황대헌이 다시 대표팀에 발탁돼 2026년 올림픽에 박지원과 함께 나설 수도 있다"며 "오히려 이번에 이런 실수가 나온 게 다행이다. 만약 내년 하얼빈 아시안게임 때나 내후년 동계올림픽 때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두 사람에게 더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가 남았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일을 통해 황대헌은 더 발전하고, 박지원은 보다 튼튼하고 강인한 선수가 됐을 것이라 믿는다. 두 사람에게 좋은 계기가 됐길 바란다"며 "평화롭게 화해했으니 이제 서로 각자 갈 길을 열심히 가면 좋을 듯하다. 그러다 대표팀에서 다시 만나면 더 단단한 팀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우선 2024-2025시즌 대표팀이 다 함께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이정수는 "박지원은 물론 장성우도 정말 착하고 훈련을 열심히 한다. 성장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김태성은 500m 단거리나 1000m에서 세계 1, 2위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잘하는 선수다. 실패는 해도 되지만 실수하지 않게 잘 보완했으면 한다. 예전부터 크게 될 선수라 생각했다"고 힘을 실었다.
김건우에 관해서는 "재능은 최고다. 올림픽 때까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모두 단합해 팀을 이끌어 나간다면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계주 같은 팀 종목이 잘 풀리면 개인 종목도 잘 된다. 팀 사기가 높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 야외 정원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사진=박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DB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