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진봐라]는 진짜 진짜 꼭 (들어) 봤으면 좋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추천하는 ‘개인의 취향’ 100% 반영 코너입니다. 핫한 가수들의 앨범 혹은 숨겨진 명곡, 추억의 노래부터 국내외 드라마, 예능, 웹 콘텐츠 등 한때 누군가의 마음 한 편을 두드린 선물 같은 콘텐츠가 지닌 특별한 ‘무언가’를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조혜진 기자)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투표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등급에 따라 차별이 정당화되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합법적 왕따'인 F등급은 "나만 아니면 돼"를 마음에 새긴 이들이 다수인 반에서, 이 고등학교 2학년생들은 "괴물도 옮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1일 최종 10회까지 공개를 마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게임'(극본 최수이, 연출 박소연)에는 비밀리에 이런 미친 게임을 진행 중인 백연여고 2학년 5반 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긴다. 미친 게임에 미쳐버린 이 반에, '폭풍의 전학생' 성수지(김지연 분)의 등장은 곧장 "재밌어지겠는데"를 실현시키며 흥미를 유발한다.
직업 군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새 학교에서의 적응은 문제도 아닌 전학의 신 성수지는 금방 반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는 눈치가 빠르고 발을 빼는 것도 빨라, '나만 F가 아니면 돼'를 금세 자신에게 적용하기도 한다. 초반엔 약아 보이기까지 하던 성수지는 재벌가 손녀 백하린(장다아)의 놀음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선 게임을 끝내야만 함을 깨닫고 미련할 정도로 착한 '고정 F' 명자은(류다인)과 손을 잡는다.
게임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친구들은 높은 등급이 F를 괴롭혀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F가 자리를 비워 D등급이 당하게 되면, F에게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F의 자리가 언젠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고정 F'가 있다는 것에 내심 안도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나만 왕따가 아니면 되는 싸움에, 힘을 가진 백하린의 눈밖에 나길 꺼려하는 만큼, 그 누구도 쉽게 성수지, 명자은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이 일(1)도 되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 성수지는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영리한 심리전으로, 힘 있는 악과 맞서는 서사에서 오는 답답함을 한 스푼 덜어준다. 믿음직스러운 성수지의 영민함과 게임이 끝났으면 하는 명자은의 진심은 점차 반 아이들을 움직인다. 게임의 진행자인 반장 서도아(신슬기), 반 아이들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는 인싸 임예림(강나언) 등이 점차 선을 넘어 게임을 없애는 데 동참하고, '우리'가 된 이들은 '나'만 아니면 되는 개인을 결국 무너뜨린다.
명자은을 지독하게 괴롭히면서도 집착하는 백하린은 "왜 저래" 소리를 절로 부르며 다음편을 누르게 했다. 그렇게 최종회가 되어서야 명자은의 어린시절 실수로 백하린이 학폭의 피해자가 됐던 과거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젠 가해자가 돼 '피라미드 게임'을 진행 중인 백하린의 '자기연민'은 통하지 않는다. 성수지는 '극혐' 표정의 권위자다운 모습으로 "역겹다"는 말을 쏟아내고, 변명하는 악인에게 서사 따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통쾌한 말들로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피라미드 게임'은 가해자와 방관자, 그리고 피해자의 경계를 허물고 말 그대로 '모두의 게임'이라는 걸 보여준다. 점차 폭력에 빠져드는 아이들은 방관자가 되고, 잘못된 걸 알아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성수지와 친구들은 선 밖을 나서길 독려하고, 결국은 과반 이상의 친구들이 직접 용기를 내 이 지독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성공하며 쾌감을 안긴다.
작품에는 '나만 아니면 돼'의 마음으로 모른 척 살다 간 언젠간 타깃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 친구들이 직접 학교 폭력을 뿌리 뽑아버리는 통쾌함, 예민한 시기 고등학생들의 심리까지 섬세하게 담기며 긴장감과 공감을 동시에 안겼다. 또한 틈 없는 인과응보의 결말로 선명히 메시지를 전달했다.
피 터지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뇌 싸움이 주가 되지만, 학원물답게 귀여운 2학년 5반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다. 무려 25명의 반 친구들이 나오는 만큼, 각양각색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이들이 가진 다양한 관계성과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는 모습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점점 마음을 연 이들이 또래 친구들처럼 장난을 치고 웃는 모습은 절로 미소를 안기기도. 또한 이 게임을 부수는 과정에서 25명 친구들 개개인이 보여주는 용기 있는 행동 하나하나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2학년 5반 친구들을 보내며, 없어져야 할 '피라미드 게임'이 사라진 속 시원한 자리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사진=티빙
조혜진 기자 jinhyej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