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태국과 2연전 중요한 경기인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월드컵 2차예선이다. 태극전사들이 제 기량만 발휘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란 얘기다.
이런 태국전을 빌미로 국가대표팀 정식 감독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뽑으려는 것 아닌지 여기저기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는 지난 21일 첫 회의 끝에 새로운 감독 선임 기준을 세웠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전술 역량 ▲육성 ▲명분 ▲경력 ▲소통 ▲능력 ▲리더십 등을 기준으로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런 기준은 꼭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아니어도 필요한 이상적인 조건들이다. 다른 축구팀, 아니 어느 스포츠팀에서도 감독을 뽑는데 원칙적으로 훌륭한 조건들이다.
그러더니 정 위원장은 3월 A매치를 위해 정식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며 정식 감독을 선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휴식 중인 감독들과 현직 감독들을 모두 포함해 상의하기로 했다. 시기적으로 촉박하기 때문에 (후보 감독들이) 일하고 있는 구단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어떤 감독이 결정되더라도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라며 K리그 현직 감독들을 후보에서 배제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또한 "3월 월드컵 예선 두 경기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선수 파악 등 기간적인 이유로 국내 감독 쪽으로 비중을 둬야 하지 않나라는 의견이 있었다"라며 외국인 감독보다 국내 감독들을 둘러보는 쪽으로 의견이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3월 A매치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K리그 현직 감독들도 후보군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울산HD의 홍명보 감독과 FC서울의 김기동 감독, 제주 유나이티드의 김학범 감독 등이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다만 전력강화위의 이런 움직임에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3월 말 열리는 태국과의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3~4차전 홈앤드어웨이 2연전이 중요하지만 이를 국내파 정식 감독, 특히 K리그 현직 감독의 선발을 위한 핑계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한국은 아시아 3차(최종) 예선, 그리고 더 나아가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을 내는데 초점을 두고 세밀한 선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정 회장이 큰 비중을 실어 선임했다가 참혹한 실패작으로 끝난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표팀 감독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의 한국엔 3월 지휘봉을 맡길 감독이 아닌 장기적으로 팀을 이끌 플랜이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정 위원장의 말대로 대한축구협회가 3월 월드컵 예선 두 경기가 급한 것도 맞지만 태국과 2연전이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정식 감독이 아닌 임시 감독 체제를 계획해 3월 일정을 소화한 뒤 6월 2차예선 5~6차전, 그리고 9월부터 열리는 최종예선에 포커스를 두고 대표팀 사령탑을 신중히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속출하는 이유다.
태국전 중요하고 방심해선 안되지만 제 실력만 발휘하면 낙승할 수 있는 상대다.
당연히 3월 2연전에서 승리한다면 기쁠 것이고, 빠르게 새로운 감독을 데려온 판단이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시간을 두고 여러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임된 감독이 장기적인 플랜이나 모델을 갖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 감독으로 선을 그을 이유도 전혀 없다. 이미 이석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통해 대한축구협회가 내홍을 수습할 수 있고 선수들과 말이 잘 통하는 국내 감독을 선임하길 원하고 있다는 게 알려졌고, 정 위원장은 선수들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내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 위원장이 착각하는 게 있다. 내홍을 수습하는 건 국적이 아닌 감독 개인의 능력 문제다. 당장 클린스만에 앞서 대표팀을 지휘한 벤투 감독 시절에 '원 팀'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선수 파악 역시 국내외 감독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국내 감독을 선임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국 축구는 확실한 프로세스 없이 감독을 선임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지난 1년간 확인했다. 정몽규 회장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선임할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으나, 클린스만의 인터뷰로 인해 정몽규 회장의 말은 진위를 가리기 힘든 주장에 불과한 말이 됐다.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클린스만과 동행한 11개월은 한국 축구의 암흑기였다.
지금 한국 축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 결정에 따라 클린스만과의 1년을 또다시 반복할 것인지, 뚜렷한 프로세스를 거쳐 제대로 된 지도자를 데려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할 것인지 갈릴 수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세밀하고, 꼼꼼하고, 깐깐한 과정을 통해 감독 선임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사진=엑스포츠뉴스 DB, 연합뉴스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