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낸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2023년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는 공격, 주루, 수비 가릴 것 없이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2020시즌을 끝으로 빅리그 도전에 나선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와 4+1년 총액 3900만 달러(4년 보장 28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면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다만 빅리그 데뷔 첫 시즌이었던 2021년 117경기 267타수 54안타 타율 0.202 8홈런 34타점 6도루 OPS 0.622로 다소 부침을 겪었다.
그 흐름은 이듬해까지도 이어졌다. 김하성은 전년도보다 많은 경기에 나서면서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달성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50경기 517타수 130안타 타율 0.251 11홈런 51타점 12도루 OPS 0.708.
올해도 출발이 매끄럽진 않았다. 김하성은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고, 대회 이후 곧바로 소속팀으로 돌아가 새 시즌을 맞이했다. 4월 한 달간 1할대 타율에 머무르는 등 부진에 시달렸다.
그랬던 김하성이 5월 들어 타격감을 서서히 끌어올렸고,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7월 한 달 성적만 놓고 보면 89타수 30안타 타율 0.337 9타점으로, 홈런이 무려 5개에 달했다. 결국 김하성은 152경기 538타수 140안타 타율 0.260 17홈런 60타점 OPS 0.749를 기록,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및 도루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김하성은 수비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됐다. 김하성은 자신의 주포지션인 2루수(106경기 856⅔이닝) 부문에서도 활약했지만, 3루수(32경기 253⅓이닝)와 유격수(20경기 153⅓이닝)도 완벽하게 소화하며 쟁쟁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특히 넓은 수비 범위와 안정적인 포구 능력을 선보이며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김하성의 활약에 미국도 주목했다. 김하성은 지난 9월 미국 야구 전문 잡지 '베이스볼 아메리카(BA)'가 감독, 스카우트,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니코 호너(시카고 컵스), 아지 알비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최고의 2루수 수비 부문 1위에 올랐다. 메이저리그의 '전문가 집단'이 김하성의 잠재력과 능력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컸다.
올 시즌 후반 리그 내 최고의 2루수를 조명했던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김하성은 팀 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로, 견고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타율·출루율·장타율·OPS·홈런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고 김하성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또한 MLB.com의 샌디에이고 담당 기자 AJ 카사벨은 "김하성은 어디서 뛰든 항상 '엘리트' 수비수였다. 아시아 내야수 최초의 골드글러브라는 게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은 아니다. 유일한 질문은 '그가 어느 포지션에서 뛸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잰더 보가츠의 등장과 함께 김하성은 2루로 밀려났지만, 보가츠와 매니 마차도가 다쳤을 때 유격수, 3루수로도 뛰었다"고 치켜세웠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김하성은 새로운 역사까지 작성했다. 지난달 6일 발표된 2023 롤링스 골드글러브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내셔널리그 2루수, 유틸리티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김하성은 무키 베츠(LA 다저스),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을 수상했다. 아시아 지역 출신의 내야수가 골드글러브를 받은 건 김하성이 처음이다.
공격과 수비를 함께 평가하는 KBO리그의 골든글러브와 달리 미국의 골드글러브는 포지션별로 최고의 수비를 선보인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상이다. 각 구단 코칭스태프 투표와 미국야구연구협회(SABR)가 제공하는 수비 지표를 각각 75%, 25% 반영한다. 그만큼 현장의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2주 뒤 국내에서 골드글러브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하성은 "한국인 최초로 받게 돼 정말 영광이다.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많은 유소년 선수들과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하성은 2023년을 뒤로하고 국내에서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며 네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인 가운데, 이달 들어 트레이드설에 휩싸였다. 팀 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내야수가 트레이드 대상으로 거론되는 건 구단의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샌디에이고는 스토브리그에서 공격적인 영입을 선보였던 팀 중 하나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유격수 보가츠와 10년 2억 8000만 달러(약 3651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내야진을 보강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샌디에이고는 매니 마차도(11년 3억 5000만 달러), 다르빗슈 유(1억 800만 달러), 제이크 크로넨워스(7년 8000만 달러) 등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주축 선수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샌디에이고는 2020년대 들어 2020년과 지난해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시리즈 진출했지만, 지구 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여전히 '지구 라이벌' LA 다저스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 시즌의 경우 82승80패(0.506)으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으나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밀리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게다가 샌디에이고 구단이 지난 9월 선수단 연봉 지급을 위해 5000만 달러(약 652억원)를 대출받은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팀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올겨울 들어 샌디에이고의 재정난은 현실이 됐다. 주전 외야수 후안 소토까지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실제로 샌디에이고가 여러 팀들과 카드를 맞춘 끝에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소토와 함께 또 다른 주전급 외야수 트렌트 그리샴을 양키스로 떠나보냈다. 그 대가로 우완투수 마이클 킹, 자니 브리토, 유망주인 우완투수 드류 소프와 랜디 바스케스, 포수 카일 히가시오카를 받았으나 '몸집 줄이기'에 초점이 맞춰진 트레이드였다.
샌디에이고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 영입전에서도 별다른 소득 없이 물러났다. 주전급 외야수를 두 명이나 보낸 상황에서 이정후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여러 팀들과 함께 '이정후 영입 후보'로 언급된 바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 11일 "샌디에이고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좌타자는 제이크 크로넨워스, 맷 카펜터, 브렛 설리번, 투쿠피타 마르카노"라며 "샌디에이고는 1억 달러 이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코디 벨린저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입 가능한 외야수들 중에서 이정후가 파드리스에 가장 적합한 선수일 수 있다. 머지않아 샌디에이고가 이정후의 요구 가격을 충족시킬 생각이 있는지 밝히겠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잠재적으로 부수적인 부분이 무엇인지를 따져봤다"고 전했다.
그러나 영입전의 최종 승자는 같은 지구에 속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이정후의 샌디에이고행 가능성을 제기했던 디애슬레틱은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를 소개하자 샌디에이고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샌디에이고는 이정후를 노렸으나 금액에서 지구 라이벌 팀에 밀렸다"고 설명했다.
또 매체는 "샌디에이고의 제안은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몇몇 소식통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게 제안한 것에 미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머니싸움'에서 샌디에이고가 샌프란시스코에 완패했다는 것이다.
샌디에이고는 여전히 페이롤을 낮추려고 한다. 선발진의 한 축을 책임졌던 마이클 와카와 세스 루고가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떠나는 걸 지켜보기만 했고, 두 선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추가적인 트레이드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상황이다.
디애슬레틱은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동일한 조건으로 샌디에이고와 계약했다면, 또 다른 좌타자를 보내거나 최소 한 명의 선발투수 또는 여러 명의 불펜투수를 다른 팀으로 떠나보냈을 것"이라며 "크로넨워스와 김하성이 트레이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하성의 트레이드설이 또 제기된 건 지난 25일이었다. 샌디에이고 구단 소식을 다루는 매체인 '프라이어스 온 베이스'는 "김하성은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크게 성장해 수준급 수비력을 발휘했다. 내년엔 비교적 저렴한 연봉 700만 달러를 받는다. 올해 보여준 퍼포먼스를 고려하면 트레이드로 영입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매체는 "베테랑 유격수 브랜든 크로포드가 은퇴를 앞둔 가운데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유격수를 찾고 있다. 김하성에게 가장 적합한 팀으로 보인다"고 구체적으로 팀까지 언급했다.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보스턴 레드삭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메츠 등도 잠재적인 영입 후보로 거론됐다.
김하성의 트레이드설이 현실이 된다면 내년 3월 20일부터 이틀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개최되는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이하 서울시리즈)는 한국인 선수 없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소속팀인 샌디에이고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서울시리즈 홍보에 있어서 김하성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인 만큼 김하성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다.
지난 10월 귀국 기자회견 당시 서울시리즈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던 김하성은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하는 게 처음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많이 기대하고 있고, 정말 큰 영광"이라며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줄 생각이다. 너무 많아서 여기까지만 말하겠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은 김하성은 "후배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이 와서 경기를 봤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꿈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는가"라며 "팬분들도 정말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흐름이라면 한국 팬들은 김하성이 뛰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이상 다저스), 다르빗슈 유, 마쓰이 유키(이상 샌디에이고)까지 일본인 선수가 양 팀에 네 명이나 포진돼 있다는 점,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에서 일본 야구 팬들의 기대감은 한껏 올라간 상황이다.
연말에도 끊이지 않는 트레이드설에 고민이 깊어지는 샌디에이고가 김하성과 1년 더 동행할 수 있을까.
사진=엑스포츠뉴스 DB, 메이저리그 공식 SNS, 쿠팡플레이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