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인천공항, 유준상 기자) 비공개 경쟁입찰(포스팅 시스템) 이후 8일 만에 계약 소식이 들려왔다. 큰 계약 규모만큼이나 빠른 결정도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쾌속 협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을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은 지난 13일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약 1480억원) 계약에 합의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정후는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리그로 향한 한국인 선수 중에서 역대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됐다. 2027시즌 종료 후 옵트 아웃 조항이 포함됐다는 내용도 전해졌다.
이정후의 입단과 함께 연봉 및 계약금 등에 대한 세부 계약 내용이 공개됐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의 발표에 따르면, 이정후는 2024년 700만 달러, 2025년 1600만 달러, 2026년과 2027년에 2200만 달러, 2028년과 2029년에 205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계약금은 500만 달러다.
자선 기부와 관련한 부분도 계약에 포함됐다. 이정후는 '자이언츠 커뮤니티 펀드'를 통해 2024년 6만 달러, 2025년 8만 달러, 2026년과 2027년에 11만 달러, 2028년과 2029년에 10만 2500달러를 기부할 예정이다.
이정후는 일찌감치 빅리그 진출을 도전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 키움 구단에 2023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내부 논의를 거친 키움은 올해 1월 초 선수의 의지와 뜻을 존중하고 응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구단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정후의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5일 "오전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이정후에 대한 포스팅 의사를 MLB 30개 구단에 4일(미국 동부시간 기준)자로 공시했음을 통보받았다"고 알렸다.
한·미 선수계약협정에 의거해 MLB 30개 구단은 5일 오전 8시부터 2024년 1월 3일 오후 5시(이하 미국 동부시간 기준)까지 이정후와 협상할 수 있었다. 이정후에게 30일이 주어졌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도장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는 포스팅 시작 이후 8일 만에 계약 합의에 이르렀고, 지난 15일 이정후의 계약이 공식 발표됐다.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이정후의 행선지가 결정된 것이었다.
입단 기자회견까지 마친 이정후는 1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그는 "기자회견보다 지금이 더 떨리는 것 같다"며 "1차적인 목표를 이룬 것 같고, 이제 그걸 이뤘으니까 잘하는 게 두 번째 목표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첫 제안부터 1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듣게 된 이정후는 "그게 첫 오퍼였다. 자세한 협상 내용은 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어서 밝힐 수 없지만, 샌프란시스코라는 좋은 명문구단에 가게 돼 영광이다. 구단에서 내게 이렇게 투자해주신 만큼 거기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선배님들에 비해 일찍 (포스팅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행을 택하게 된 이유는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게 보여준 '진심' 때문이었다. 올해 초부터 구단 관계자들이 키움 스프링캠프 훈련 현장을 방문해 이정후를 관찰하는가 하면, 지난 10월에는 피트 푸틸라 샌프란시스코 단장이 직접 한국으로 와서 이정후의 마지막 홈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FA(자유계약) 시장 개장 이후에도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에 대해 관심을 보냈다. 1년 내내 팀 전체가 이정후의 영입을 위해 힘을 쏟은 셈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특급 대우에 마음이 움직인 이정후는 "구단에서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아직 처음이기 때문에 잘 준비해서 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반려견 까오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구단의 관심에 대해) 구단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반려견의 날 같은 게 있다고 하더라. 나도 반려견이 있다고 말하니까 (까오를) 소개해준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이정후는 "많은 구단들이 있었지만, 단장님이 한국에 와주시고 협상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나를 원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리지 못해도 이렇게 역사가 깊은 팀에서 뛰게 돼 너무 영광이라고 생각해서 빨리 결정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스 워리어스의 홈구장인 체이스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던 이정후는 농구 경기를 보고 싶다고 구단에 얘기하니까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볼 수 있었고, 입단식 전날에는 운동하고 싶다고 하니까 운동을 시켜줘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이정후는 "아직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해서 우승을 가장 하고 싶다. 사실 신인 때 생각해보면 내가 신인왕을 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로 시즌을 치렀는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다. 처음부터 목표를 잡진 않을 것 같고 팀이 이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다짐했다.
사진=인천공항, 김한준 기자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