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금의환향이다.
파리 생제르맹(PSG) 공격수 이강인이 약속을 지켰다. 전 소속팀 마요르카를 응원하고, 뒤늦은 이적 인사를 하기 위해 친정팀을 방문했다.
이강인은 30일 스페인 마요르카의 팔마 이베로스타 에스타디오에서 열린 마요르카와 카디스의 2023/2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4라운드를 관전했다.
안경을 쓰고 경기장에 들어선 이강인은 부상 중인 마요르카 공격수 베다트 무리키(마요르카)와 함께 경기를 지켜봤다. 이강인은 지난 시즌 팀 내 최다 득점자였던 무리키(15골)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이강인은 안경을 끼고 따뜻한 갈색 카디건을 입고 환한 미소를 띄었다. 무리키도 폴로셔츠와 차콜 카디건 차림으로 이강인과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바라봤다.
이강인과 무리키는 영혼의 콤비였다. 토트넘에서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 보여줬던 파트너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강인과 무리키의 인연은 특별하다. 무리키는 지난 5월 이강인 친정팀인 발렌시아전에서 그의 크로스로 득점을 올린 뒤 자신의 SNS에 "마이 리틀 부라더!"라고 적었다. 무엇보다 '브라더'를 직접 한글로 적어 이강인을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스페인에서는 이강인의 친정팀 방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르카는 경기 전날 "마요르카 홈 관중석에 특별한 관중 이강인이 방문할 것"이라며 "이어 "2200만 유로(약 312억원)의 이적료를 주고 떠난 이강인은 전날 뉴캐슬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한 뒤 친정팀을 첫 방문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이강인은 마요르카 역사상 가장 많은 유니폼이 팔린 선수다. 이제는 PSG에서도 마찬가지다"라며 "마요르카에서 이강인의 존재는 엄청났다. 매 경기 수천 명의 한국 팬들이 가득 찼고 그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VIP 구역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이강인은 PSG에서 킬리안 음바페를 제치고 가장 많은 유니폼을 판매한 선수로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강인이 오자 마요르카 구단은 SNS를 통해 환영했다.
구단이 게재한 영상에는 이강인과 무리키가 포옹을 나눈 뒤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에 팬들은 SNS에 "LEE가 돌아가지 못하게 가두자", "당장 납치하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누구나 환영할 만한 친정팀 방문이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유스 출신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꽃피운 곳이 바로 마요르카다. 거기서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PSG 이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강인은 10살이던 지난 2011년, 발렌시아 아카데미에 입단해서 쑥쑥 컸다. 2018년 10월 CD 에브로와의 2018/19시즌 코파 델 레이 1차전에 출전해 유럽 무대에서 최연소로 데뷔한 한국 선수가 됐다.
이어 2019년 1월 12일 레알 바야돌리드전을 통해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 시즌인 2019/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첼시전에 교체로 출전했다. 챔피언스리그에 역대 최연소 나이로 데뷔한 한국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강인과 발렌시아의 10년 동행은 파국을 맞게 된다.
이강인은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해 18살임에도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면서 대회 준우승을 일궈냈고, MVP와 같은 골든볼을 획득했다.
그러나 정작 발렌시아에선 이강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푸대접을 했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1군에서 점점 입지를 다지지 못했다. 공격에 많은 재능을 갖고 있었던 그는 특히 중앙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였지만, 측면 미드필더로 주로 기용돼 자신의 재능을 뽐내지 못했다.
싱가포르 국적 피터 림 구단주의 독단적인 구단 운영으로 이강인은 물론 선수단도 감독 교체가 연달아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강인은 그러는 사이 감독들이 실험하는 대상으로 전락했고 급기야 2021년 여름엔 발렌시아가 마르코스 안드레(브라질) 영입을 위해 논EU(유럽연합) 쿼터 확보가 필요하자 이강인을 아예 자유계약(FA)으로 방출하는 충격적인 일을 저질렀다.
이강인이 마요르카에서 처음부터 잘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강인은 마요르카에서도 실패하면 유럽 롱런 자체에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21년 여름에 열른 도쿄 올림픽에서도 그는 후보로 전락하면서 큰 고비를 맞았다.
마요르카 첫 시즌에 이강인은 많은 경기를 소화했지만, 출전 시간은 발렌시아 시절과 비슷했다.
2021/22시즌 라리가 30경기를 뛴 그는 출전 시간은 1406분에 그쳤다. 선발 출전이 15경기에 불과했고 풀타임 소화는 딱 2경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격 포인트토 1골 2도움에 그쳤다. 그야말로 불안한 선수였다. 이강인은 공격은 잘 하지만, 수비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거친 플레이도 나오면서 세르히오 라모스(당시 레알 마드리드)를 가격해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마요르카가 강등권에서 허덕이자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새로 선임, 잔류 도전에 나서면서 이강인의 축구 인생도 바뀌었다. 과거 일본 대표팀에서 감독을 했던 아기레는 이강인 재능을 바로 알아봤다. 마요르카는 시즌 마지막 3경기에서 2승 1무를 기록, 16위로 극적 잔류에 성공했다. 이어지는 새 시즌 준비 과정이서 이강인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22/23시즌 이강인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허벅지 등에 근육이 많이 붙었다. 근육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운동 능력이 올라왔고 스피드와 지구력, 수비가 전부 업그레이드를 이뤘다. 아기레 감독이 팀의 기본적인 플랜을 5-4-1 전형으로 맞추고 선수비 후역습 패턴을 구상하면서 만든 전술에도 이강인은 안성맞춤이었다.
이강인 역시 수비 가담이 필요했고 오른쪽 미드필더로 포진하면서 적극적으로 상대 측면 수비수를 무너트린 것은 물론 상대 공격수까지 맡았다.
공격에선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 돌파와 왼발 킥 능력을 극대화했다. 특히 이번에 같이 사진 촬영한 무리키와의 호흡은 아주 좋았다. 이강인의 택배 크로스는 190cm가 넘는 장신 무리키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이강인은 6골 6도움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라리가 공격포인트 10개 이상을 이뤘다. 둘은 마요르카의 팀득점 37골 중 35골에 관여한 팀 공격의 원투펀치였다.
마요르카에서 강한 인상은 남긴 이강인은 지난 여름 PSG에 새 둥지를 텄다. 마요르카에 이적할 때만 해도 이적료 없이 갔지만 2년 만에 300억원을 뛰어넘는 가치의 스타플레이어로 변신했다. 이강인은 올 시즌 공식전 10경기 2골 1도움으로 활약 중이다.
이강인은 마요르카에서 끌어올린 기량을 PSG에서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즌 아시안게임으로 자리를 비운 가운데서도 총 10경기에 나와 2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이어진 클린스만호 친선 경기 2연전에서 3골을 기록한 뒤부터 자신감이 붙어 맹활약하는 중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홈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AC밀란전에서 PSG 데뷔골이자 챔피언스리그 데뷔골을 터트렸다.
사흘 뒤 29일 리그1 브레스트전에선 킬리안 음바페의 골을 도왔다.
이어 지난 4일 몽펠리에전에선 시즌 2호골이자 리그1 데뷔골을 폭발했다. 전반 10분 모로코 수비수 아슈라프 하키미가 오른쪽 측면을 파고 들어 올린 낮은 크로스를 음바페가 이강인에 볼을 흘렸고 이강인이 강력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번엔 이강인이 득점, 음바페가 어시스트를 했다.
마요르카 팬들 입장에선 이강인을 납치하고 싶을만 하다.
이강인이 관전한 이날 카디스전에서도 1-1 무승부를 거둔 마요르카는 9경기 연속 무승(5무 4패)에 그치고 있다. 1승 7무 6패 승점 10으로 17위다. 20개팀 중 18~20위 3팀이 다음 시즌 2부로 강등된다. 강등권 바로 위에 있는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마요르카 SNS, PSG SNS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