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토트넘 홋스퍼의 중앙 수비수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짐승'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모욕이 아니라 극찬의 의미다.
22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유서 깊은 축구장 마라카낭에서 열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2026년 월드컵 남미 예선 맞대결 때문이다. 로메로는 남미 최대 라이벌인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월등한 활약을 펼치며 브라질 공격수들을 '꽁꽁' 묶고 무실점 승리 1등 공신이 됐다.
이에 아르헨티나의 언론 매체 '타이씨(TyC) 스포츠'가 극찬을 보냈다. 매체는 로메로에게 10점 만점에 10점 평점을 부여한 후 "쿠티(로메로의 애칭)는 짐승이다. 그의 성격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멈추지 않고 뛴다. 또한 골이나 다름 없었던 슛을 막아내는 모습도 보여줬다"며 호평을 내렸다.
축구 통계 전문 플랫폼 '풋몹' 또한 로메로에게 8.2점의 평점을 부여하며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했다. 결승골을 넣은 센터백 콤비 니콜라스 오타멘디(8.1점)보다도 높았다.
토트넘에서 주장 손흥민을 받치는 부주장으로 뛰고 있는 로메로는 프리미어리그 수준급 기량을 적지에서 펼치며 브라질의 날카로운 공격을 무릎꿇렸다. 특히 전반 44분 플레이가 압권이었다. 브라질의 코너킥 때 아르헨티나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가 골문에서 약간 멀어진 틈을 보이자 브라질 공격수 가브리엘 마르티넬리가 회심의 중거리 슛으로 골대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마르티네스가 문전에서 멀어진 것을 미리 확인한 로메로가 영리하게 골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중거리 슛을 무릎으로 완벽히 쳐내며 조국을 실점 위기에서 구해냈다.
마르티넬리는 슛을 시도하자마자 골을 직감한 표정이었으나 로메로가 무릎으로 쳐내는 것을 보면서 머리를 감싸쥐며 '털썩' 주저 앉았다.
게다가 토트넘 팬들의 마음도 설레게 했다.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내 최대 라이벌로 '북런던 더비'를 펼치는 아스널 소속 공격수 가브리에우 제주스와 마르티넬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풋몹'에 따르면 로메로는 경기서 가장 많은 태클(4회)를 기록하며 제주스와 마르티넬리를 비롯한 브라질 파상 공세를 여러차례 끊어냈다.
또한 토트넘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지도를 통해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추구하는 수비진부터의 짧고 빠른 빌드업 전술은 특성상 수비수들에게 좋은 발밑과 패스 능력을 요구한다. 로메로는 브라질과의 경기서 시도한 모든 패스를 성공해 성공률 100%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안정적인 빌드업 자원임을 알렸고 동시에 토트넘에서 필수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축구 전문 매체 'TBR 풋볼'은 "로메로는 올 시즌 한층 더 성장했다"며 "포스테코글루 체제 하에서 완전히 탈바꿈했다. 특히 미키 판더펜과의 조합은 굉장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로메로는 A매치 기간이 끝나고 소속팀으로 복귀해도 당장은 토트넘 팬들 앞에 설 수 없다.
지난 7일 열린 2023/2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의 리그 11라운드 맞대결 홈 경기에서 대표팀 동료이자 첼시 간판 미드필더인 엔소 페르난데스를 향해 위험한 태클을 걸었고 이 때문에 다이렉트 퇴장을 선언받았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규정에 의하면 즉각 퇴장 조치를 받은 선수는 잉글랜드 국내에서 열리는 3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때문에 로메로는 리그 12라운드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울브스)와의 경기서도 결장했다. 이어 영국으로 돌아가면 5위 애스턴 빌라, 1위 맨체스터 시티 등 두 강팀과의 경기에 뛸 수 없다.
로메로의 퇴장과 함께 판더펜도 첼시전에서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에 따라 토트넘은 올 시즌 내내 선발 출전을 기록한 적 없던 에릭 다이어를 울브스와의 경기에서 꺼내 선발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로메로는 내달 4일 리그 14라운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의 경기가 끝난 후 토트넘 선발 라인업에 다시 오를 것으로 보인다. 'TBR 풋볼'은 "다이어가 포스테코글루의 전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로메로가 맨시티와의 경기 후 복귀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토트넘 훈련에서도 동료들을 향해 과격한 태클을 저질러 논란에 빠진 수비수지만 브라질전에서의 맹활약은 여전히 로메로가 토트넘 최고의 수비수임을 입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오넬 메시는 이날 경기 전 아르헨티나 원정 팬들이 브라질 팬들에 폭행당했다며 "미친 짓"이라고 분노를 쏟아냈지만 로메로 만큼은 자신의 건재와 부활을 알린 뜻깊은 경기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마르카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