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축구대표팀 사령탑 위르겐 클린스만도 눈치 챘다.
K리그가 어린 선수들에 눈길 주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클린스만은 "18살의 이강인이 K리그에서 뛰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며 국내 최상위 리그인 K리그 구단들이 어린 선수들에 보다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클린스만의 발언은 13일 국가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나왔다. 클린스만호는 오는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싱가포르와 2026 캐나다·멕시코·미국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이어 중국 남부도시 선전으로 건너가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아시아 2차예선 2차전을 벌인다.
지난 3월 출항한 클린스만호 드디어 첫 번째 본고사를 치르는 셈이다. 클린스만은 지난달 벌어진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에서 최강 바이에른 뮌헨이 3부리그 자르브뤼켄에 패한 것을 거론하며 "쉬운 경기는 없다"는 말로 싱가포르전, 중국전에 최고의 멤버를 뽑아 승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한 지난달 국내 평가전 2연승 등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며 앞으로의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는 각오도 전했다.
그런 가운데 클린스만은 K리그에 유망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기용하길 부탁했다.
클린스만의 발언은 "수비형 미드필더, 양 윙백 등 취약한 포지션 보강 계획은 어떻게 되나"란 질문에서 비롯됐다.
과거엔 이영표, 송종국, 김동진, 조원희 등 재기 넘치는 측면 수비수들이 많아 대표팀이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였지만 2010년대 넘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져 지금은 취약 포지션으로 변한 상태다. 수비형 미드필더 역시 중국에 구금된 손준호가 6개월 가까이 풀려나질 않으면서 스피드가 떨어지는 30살 박용우가 주전으로 떠오르는 상태다.
이에 대해 클린스만이 오히려 K리그의 실태를 들며 반격하고 있는 셈이다.
클린스만은 "카타르 월드컵 때 현장에서 (한국대표팀 경기를)지켜봤기 때문에 부임하고 월드컵 명단 외에도 다른 어린 선수들이 있는지,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봤다. 어린 선수들이 어떻게, 어느 팀에서 성장하는지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다"며 "풀백들,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 각 포지션마다 3명의 명단이 있다. 행여나 부상이 생기거나 할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선수를 대체 선발할지 논의하고 있다"며 플랜 A, B, C가 모두 있음을 알렸다.
그러면서 클린스만은 지난 6월 세계 4강에 올랐던 20세 이하(U-20) 대표팀 선수들이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겠다며 쓴소리를 했다.
클린스만은 "브렌트퍼드(김지수), 스토크 시티(배준호)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지만 다른 선수들도 K리그에서 뛰어야 한다"며 "국내서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못 얻는 것 같다. 18살 이강인이 K리그에서 뛰었다면 얼마나 기회가 있었을지 되묻고 싶다. 스페인에서 뛰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도 같은 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도르트문트는 내년 발롱도르 수상 1순위로 꼽히는 20살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주드 벨링엄이 지난여름까지 뛰었던 곳이다. 이강인도 17세 10개월이 채 안 된 지난 2018년 12월 발렌시아에서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레이)에 경기를 통해 성인 무대 데뷔를 이뤘고, 다음 시즌인 2019/20시즌엔 1군에서 라리가 17경기(선발 3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5경기를 뛰며 한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 나이에 성인팀 실전을 뛰며 성장했다.
클린스만은 그런 벨링엄과 이강인의 예를 들면서 K리그에도 보다 적극적인 유망주 육성을 당부했다.
그는 "그런데 국내 경기를 보면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많이 못 받는 거같다. 20세 이하 월드컵 선수들 솔직히 기회를 못 받는 거 같다. 조진호 같은 유럽에서 뛰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 국내 선수들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사실 K리그가 유망주 육성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3년 23세 이하 선수를 팀당 한 명씩 엔트리에 의무배치하도록 한 이후 규정을 점점 발전시켜 지금은 22세 이하 선수들 중 한 명은 선발 명단에, 한 명은 교체 명단에 집어넣고 둘 모두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경기당 교체 한도인 5장을 각 팀이 모두 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이런 결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팀이 꼼수를 쓰다보니 여전히 K리그는 나이 많은 선수들이 뛰는 '병장 축구'를 유지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2세 이하 선수 2명을 선발로 넣은 뒤 전반 초반 불러들이고 나이 많은 선수들을 집어넣는 꼼수가 그 것이다.
K리그가 축구는 물론 산업으로서의 발전을 위한 미래 자원 육성에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지만 일각에선 "어린 선수들을 억지로 투입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이라는 논리를 들어 역공까지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축구의 대세는 점점 어린 선수들의 과감한 기용에 있고 이를 잉글랜드와 독일부터 미국, 아르헨티나, 일본도 다르지 않다. "미국 집에서 일한다"며 비판을 받는 클린스만도 이런 K리그의 실태를 8개월 만에 파악하고 개선을 당부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DB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