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2010년대 러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칭송받았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근호의 슛을 놓치며 실점해 조롱거리가 된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프가 거의 10년이 다 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날 차고 짓밟을 것 같았다"며 회복하기 너무 어려운 실점이었다고 회상했다.
27일 러시아 언론 '르 샹피오나'에 따르면 아킨페예프는 "내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브라질 월드컵이었다"며 "한국전에서 그런 슛을 놓치고 골대 안에 누워 있으면서 사람들이 날 짓밟고 때리고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한국과 러시아는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에서 격돌했다. 전반전을 0-0으로 마친 뒤 한국이 먼저 득점했는데 교체투입된 이근호가 전반 23분 하프라인부터 치고 들어가다가 아크 오른쪽에서 오른발 슛을 시도했고 아킨페예프가 이를 두 손으로 잡으려다가 놓치면서 볼이 뒤로 향해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아킨페예프는 뒤로 돌아 볼을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또 놓쳤다. 볼이 이미 골라인을 넘어 골이 된 뒤였다.
이근호가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는 사이 아킨페예프는 골문 안에 누워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자책했다. 러시아는 다행히 6분 뒤인 후반 29분 알렉산더 케르자코프가 동점포를 넣어 1-1로 비겼지만 한국전 실점이 치명타가 되면서 알제리에도 밀려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킨페예프는 "대개 2~3일이면 다 잊어버리는데 브라질 월드컵 때는 오래 갔다"며 "한 달간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심리적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훈련장 만큼은 내 실수를 이해하는 동료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훈련장 출퇴근을 하면서 떨쳐냈다"며 "브라질 월드컵 두 달 전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주춤할 상황이 아니었다. 난 돌아왔고 2018년 월드컵에선 8강까지 갈 수 있었다"고 했다.
1986년생인 아킨페예프는 제프 야신 이후 러시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3년부터 CSKA 모스크바 한 팀에서 37살인 지금까지 뛰고 있다. 러시아 1부리그 552경기를 소화했고, A매치도 111경기를 뛰었다. 2008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러시아 4강 진출 중심에도 그가 있었다.
그렇게 백전노장인 그에게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바로 한국전 이근호의 골이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