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부산, 김지수 기자) '명장'의 입담은 현장을 잠시 떠나 마이크를 잡고 있던 1년 동안 더 노련해졌다. 특유의 거침 없으면서도 당찬 목소리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를 다시 정상권으로 이끌겠다는 다부진 출사표를 던졌다.
롯데는 24일 오후 롯데호텔부산 사파이어룸에서 구단 제21대 사령탑 김태형 감독의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태형 신임 감독을 비롯해 이강훈 야구단 대표이사, 최고참 전준우, 주장 안치홍, 투수조장 구승민, 마무리 김원중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태형 감독은 "야구의 도시 부산에 있는 롯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가 된다"며 "찬스가 왔을 때 상대팀을 몰아붙일 수 있는 화끈한 공격 야구를 하고 싶다. 부담보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롯데는 지난 8월 28일 래리 서튼 전 감독이 건강 문제로 자진사퇴한 이후 정규리그 잔여 일정을 이종운 감독 대행 체제로 운영했다. 서튼 감독이 물러난 시점에서 50승 58패로 5위 KIA 타이거즈에 5경기 차 뒤진 7위였고 최종 순위도 변함이 없었다. 올해도 '야구' 없는 쓸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다만 롯데의 비 시즌 행보는 포스트시즌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공석인 감독 선임을 두고 어떤 야구인이 자이언츠의 지휘봉을 잡을지 이목이 집중됐다.
롯데의 선택은 김태형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이었다. 롯데는 지난 20일 김태형 감독과 계약기간 3년, 연봉 및 계약금 6억원 씩 총액 24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현역 감독으로는 최근 재계약을 체결한 이강철 KT 위즈 감독과 함께 최고 대우다.
롯데가 김태형 감독을 영입한 건 성적 때문이다. 롯데는 조원우 감독 시절이던 2017 시즌 정규리그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오른 뒤 2018 시즌 8위, 2019 시즌 10위, 2020 시즌 7위, 2021~2022 시즌 8위, 올해 7위까지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롯데는 올 시즌을 앞두고 포수 유강남(4년 80억), 유격수 노진혁(4년 50억), 투수 한현희(3+1년 40억) 등 외부 FA(자유계약) 선수 영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8위-8위-8위-8위-5위-7위-7위로 '비밀번호'를 찍었던 롯데 역사상 최고의 흑역사에 다시 근접하게는 수모를 겪고 있다.
롯데는 암흑기 탈출을 위해 김태형 감독을 모셔 왔다. 김태형 감독은 2015 시즌 두산 지휘봉을 잡자마자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놨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플레이오프에서 NC,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차례로 격파하고 베어스에 14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김태형 감독은 2016 시즌 두산을 21년 만에 통합우승으로 견인한 데 이어 2019 시즌 또 한 번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역사도 써냈다.
2020, 2021 시즌의 경우 주축 선수들의 FA 이적으로 전력 출혈이 컸지만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헀다. 과감하고 빠른 결단으로 상위팀을 업셋(Upset)하는 드라마를 수차례 보여줬다.
김태형 감독은 2022 시즌 종료 후 두산과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올 시즌 야구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잠시 떠나 있는 시간은 1년이면 충분했고 이제는 롯데의 부활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됐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감독 시절에 전준우를 비롯한 롯데 베테랑 선수들의 열정을 봤다"며 "이기고 지는 건 감독,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 모두 다 책임이 있다. 팀의 약점을 당장은 말씀드릴 게 없다. 좋은 선수들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심플했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얘기를 들었을 것 같다. '팀이 먼저다' 이런 걸 말할 필요도 없다"며 특유의 직설 화법을 선보였다.
김태형 감독은 오는 25일부터 직접 지휘하는 롯데의 마무리 훈련을 통해 선수단 파악부터 나서려고 한다. "선수들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답했다.
신임 감독을 위한 취임 선물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내부 FA 선수들의 잔류는 구단에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롯데는 전준우와 안치홍이 올 시즌 종료와 동시에 FA 권리를 행사할 예정이다.
전준우는 올 시즌 138경기에서 타율 0.312 17홈런 77타점 9도루 OPS 0.852로 맹활약했다. 1986년생으로 만 37세가 됐지만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우타자로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안치홍은 121경기 타율 0.292 8홈런 63타점 OPS 0.774로 전준우와 함께 롯데 타선을 이끌었다. 주전 2루수로 여전히 안정된 수비와 정교한 타격을 보여주면서 자이언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입증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에도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베테랑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년 시즌 구상에 두 선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태형 감독은 취임 선물에 대한 질문을 받고 "24억을 받았으면 이미 (취임 선물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웃은 뒤 "항상 언론에서 FA 선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이 부분은 내가 구단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구단에서 알아서 잘 판단하실 거다"라고 말했다.
롯데 감독직이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모든 야구인은 감독 제안이 오면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도전이다. 책임감도 있고 부담감도 있지만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야 한다. 이거 말고는 다른 할 말은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부산, 김한준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