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여자 쇼트트랙 '포스트 최민정' 1순위로 꼽히는 김길리(성남시청)가 새 시즌 월드컵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결승선 앞두고 '날 들이밀기'를 동메달을 금메달로 바꿨다. 같은 성남시청 선배 최민정의 대표팀 휴식으로 물음표가 달린 여자 쇼트트랙에 새 희망임을 알렸다.
남자 쇼트트랙에서도 숨은 강자 김건우(스포츠토토)가 1500m 2차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다만 이 종목 한국 선수들끼리 충돌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김길리는 23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3/2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10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1분30초998의 기록으로 들어와 하너 데스멋(벨기에·1분30초998), 크리스텐 산토스-그리스월드(미국·1분31초168)를 각각 2위와 3위로 밀어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여자 1500m 결승에서 데스멋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김길리는 이날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면서 아쉬움을 털어냈다.
김길리는 준결승 1조에서 산토스-그리스월드(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해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준결승에서 김길리와 한 조에 속했던 서휘민(고려대)은 4위에 머무르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결승에 오른 김길리는 마지막까지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온 뒤 데스멋과 산토스-그리스월드 사이에 빈 틈 생긴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발을 쭉 내밀어 결승선을 불과 1~2m 앞두고 역전 우승을 이뤄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관왕이자 2022 베이징 올림픽 1500m 금메달리스트인 최민정이 이번 시즌 업그레이드를 위해 태극마크를 반납한 상태다. 세계 최강으로 올라선 네덜란드 선수들과의 3년 뒤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진검 승부를 위해 대표 선발전에 불참했다. 스케이트 부츠, 날 등 기존 장비들을 모두 교체한 가운데 새로운 기술을 갈고 닦는 중이다.
그러면서 지난 시즌 두각을 나타낸 김길리가 최민정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시즌 첫 월드컵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면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김길리는 고교생 신분으로 참가한 지난 시즌 월드컵 1~6차 대회에서 총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포스트 최민정'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김길리는 이어 열린 여자 3000m 계주에서도 이소연(스포츠토토), 서휘민, 심석희(서울시청)와 팀을 이뤄 추가 메달을 노렸으나 마지막에 불운해 입상하지 못했다. 최종 주자로 나선 김길리가 얼음에 걸려 넘어지면서 경쟁에서 밀렸다. 결국 한국은 4분18초719의 기록으로 가장 늦게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캐나다와 미국, 네덜란드가 각각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땄다.
한국 취약 종목인 여자 500m 결승에선 이소연이 42초438로 들어와 5명 중에서 최하위에 그쳤다. 단거리 세계 최강인 크산드라 펠제부르가 41초961을 기록하며 예상대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에선 최민정과 함꼐 최근 여자 쇼트트랙을 양분하고 있는 네덜란드 강자 쉬자너 스휠팅, 그리고 다크호스로 꼽히는 킴 부탱(캐나다) 등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자부에서도 금메달 소식이 들려왔다. 김건우가 남자 10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1분26초712의 기록으로 맨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이날 남자 10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선 한국 남자 쇼트트랙을 대표하는 두 선수가 충돌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전날 남자 1000m 1차 레이스에서 우승한 박지원, 그리고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황대헌이 김건우와 함께 레이스를 펼쳤는데 결승선을 앞두고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레이스 막판까지 4위로 처져 있던 황대헌이 마지막 코너에서 무리하게 인코스를 파고든 게 원인이었다.
선두를 달리던 박지원을 추격하던 황대헌이 2위까지 올라선 뒤 박지원을 뒤에서 밀어 넘어트리는 상황이 나왔고, 결국 두 선수가 함께 넘어졌다. 그러면서 김건우와 루카 슈페첸하우저(이탈리아), 윌리엄 단지누(네덜란드) 등 뒤에서 달려오던 선수 3명이 결승선을 통과해 어부지리로 입상했다.
심판진은 황대헌이 다른 선수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심한 반칙을 했다고 판단했다. 페널티를 넘어 그에게 옐로카드(YC)를 줬다. 지난 3월 2023 서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강자로 올라선 박지원은 불의의 반칙으로 넘어진 뒤에도 꿋꿋이 들어와 4위로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2022 베이징 올림픽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인 황대헌은 전날 열린 1500m에서 우승하며 국가대표 복귀 후 첫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나 한국 선수들간 집안 다툼에서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이게 됐다. '악마의 재능'으로 불리며 천재성 만큼은 타고 난 것으로 평가받는 김건우는 2018/19시즌 이후 약 4년 만에 월드컵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세계 쇼트트랙의 다크호스임을 알렸다.
남자 대표팀은 단체전에선 은메달을 땄다. 남자 5000m 계주에서 황대헌, 장성우(고려대), 김건우, 박지원이 이어달렸는데 6분55초895로 2위를 차지했다. 11바퀴를 남긴 시점에서 중국이 넘어져 한국, 캐나다, 일본의 3파전으로 압축됐다. 홈팀 캐나다가 6바퀴를 남겨두고 인코스 추월로 1위에 올라선 뒤 쾌속 질주했다. 마지막 주자 박지원이 속도를 끌어올리며 추격전에 나섰으나 캐나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남자 500m에선 한국 선수들이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장성우와 서이라가 나란히 준결승 1조에 속했으나 장성우는 41초212로 4위에 그쳐 파이널B(순위 결정전)로 밀렸고, 서이라는 준결승에 아예 나오질 않았다.
이 종목에선 평창 올림픽 때 남자 5000m 계주 우승 주역이 되면서 헝가리에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으나 지난해 중국으로 귀화한 리우 샤오앙이 새 조국에서 월드컵 개인전 첫 우승을 일궈냈다.
전날 황대헌과 남자 1500m 준결승에서 격돌해 조 3위로 쓴 맛을 봤던 린샤오쥔(중국·한국명 임효준)은 23일 남자 500m를 기권했다.
린샤오쥔은 이틀 전 남자 500m 예선을 통과했으나 23일 열린 준준결승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린샤오쥔은 남자 5000m 계주 결승 멤버에서도 빠졌다. 중국 언론은 린샤오쥔이 22일 남자 1500m를 타다가 부상을 입어 23일 일정에 참가하기 어렵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린샤오쥔은 전날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 나선 것을 인정받아 금메달을 하나 목에 걸기는 했다. 중국은 이 종목에서 우승했다.
월드컵 1차 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은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로 가장 좋은 성적을 남겼다. 특히 남자 1000m에서 1차 레이스 박지원, 2차 레이스 김건우, 남자 1500m 황대헌 등 남자 대표팀 3명이 중장거리 종목에서 고루 금메달을 따내며 지난 시즌 상승세를 이었다.
아울러 김길리가 이번 시즌 월드컵 첫 대회부터 우승 낭보를 전한 것도 기쁜 소식이 됐다. 단체전에서 부진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한국 선수단은 곧바로 월드컵 2차 대회를 준비한다. 2차 대회(28~30일)도 1차 대회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진행된다. 이어 일주일 뒤엔 캐나다 라발에서 ISU 4대륙선수권대회까지 치르고 귀국한다. 4대륙선수권은 유럽 대륙을 제외한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선수들이 참가해 치르는 대회다.
3차 대회는 12월 8~10일 지난해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지며 12월 15일부터 3일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4차 대회가 열린다. 내년 2월 독일 드레스덴과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각각 5차 대회와 6차 대회가 펼쳐진다. 3월엔 시즌 가장 권위있는 대회인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다.
◆2023/24 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 한국 선수단 결과
금메달 : 남자 1000m 1차 레이스 박지원, 남자 1000m 2차 레이스 김건우, 남자 1500m 황대헌, 여자 1000m 2차 레이스 김길리
은메달 : 남자 5000m 계주 김건우·박지원·이정민·장성우·황대헌, 여자 1000m 2차 레이스 이소연, 여자 1500m 김길리, 혼성 2000m 계주 김길리·심석희·이소연·김건우·박지원·서이라·장성우
동메달 : 여자 1000m 1차 레이스 서휘민
사진=AP/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