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장미란 이후 13년 동안 우승 갈증에 시달렸다. 박혜정(고양시청)이 금메달로 오아시스를 선사했다.
박혜정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25㎏, 용상 169㎏, 합계 294㎏을 들어 올렸다. 금메달이었다.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 역도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2010 광저우 대회 여자 최중량급(당시 75㎏ 이상) 장미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후 13년 만이다.
체급 최강자 리원원(중국)이 부상으로 불참하며 박혜정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리원원은 여자 87㎏ 이상급 인상(147㎏), 용상(186㎏), 합계(332㎏) 세계 기록을 보유한 최강자다. 2019년 파타야 세계선수권, 2021년 도쿄 올림픽, 2022년 보고타 세계선수권 등에서 메이저 대회를 연이어 제패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에 앞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이 생겼다. 당시 기권했다. 이번에도 치료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박혜정과 손영희(부산시체육회)가 정상을 놓고 다퉜다. 인상에서 손영희가 1차 115㎏, 2차 120㎏, 3차 124㎏에 차례대로 성공했다. 박혜정도 118㎏, 123㎏, 125㎏으로 무게를 높였다. 한 걸음 앞서나갔다.
두안각소른 차이디(태국)가 합계 275㎏(인상 120㎏·용상 155㎏), 3위로 경기를 마친 뒤 박혜정과 손영희의 대결에 불이 붙었다. 손영희는 용상에서 1차 155㎏, 2차 159㎏을 기록했다. 박혜정은 157㎏, 160㎏을 드는 데 성공했다.
손영희는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자신이 보유한 용상 한국 기록인 169㎏을 신청했다. 승부수였다. 그러나 바벨을 뒤로 떨어트리며 좌절했다. 반면 박혜정은 용상 169㎏을 들어 올렸다. 이 부문 타이기록을 세우며 '클린 시트(인상·용상 총 6차례 시기 모두 성공)'로 우승을 확정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대회 은메달리스트인 손영희는 이번 대회에서 인상 124㎏, 용상 159㎏, 합계 283㎏으로 은메달을 손에 넣었다. 2회 연속 은메달이다.
한국 역도 선수가 1, 2위로 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오른 것은 여자부 최초다. 남녀를 통틀면 1990 베이징 대회 남자 90㎏급 김병찬(금메달), 이형근(은메달), 남자 110㎏급 김태현(금메달), 전상석(은메달) 이후 33년 만이다. 박혜정과 손영희가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박혜정은 '장미란 키즈'였다. 장미란은 한국 역도의 전설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 세계선수권 4회 우승을 달성했다. 동시대 선수들이 약물로 얼룩진 것과 비교하면 더욱 깔끔하고, 뛰어난 업적을 세웠다.
박혜정도 장미란의 경기를 보며 역도선수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1학년 때 역도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 중학생 신기록(합계 259㎏), 주니어 신기록(290㎏)을 갈아치우며 장미란의 뒤를 이을 인재로 떠올랐다.
지난해 5월 그리스 헤라클리온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인상 120㎏, 용상 161㎏, 합계 281㎏으로 우승했다. 7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서도 인상 115㎏, 용상 155㎏, 합계 270㎏으로 정상을 정복했다.
올해 실업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5월 2023 진주아시아역도선수권에서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 출전해 인상 127㎏, 용상 168㎏, 합계 295㎏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인상 2위, 용상 3위, 합계 2위를 만들었다. 당시 우승자는 리원원이었다. 인상 140㎏, 용상 175㎏, 합계 315㎏을 빚었다. 2020년 이후 합계 295㎏ 이상을 기록한 여자 선수는 리원원과 박혜정, 둘 뿐이다.
박혜정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2023 세계역도선수권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서 만개했다. 인상 124㎏, 용상 165㎏, 합계 289㎏으로 3개 부문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했던 지난해 합계 274㎏(인상 119㎏·용상 155㎏)으로 8위에 그쳤던 아쉬움을 씻어냈다.
세계역도선수권에서는 인상, 용상, 합계에 모두 메달을 부여한다. 박혜정은 금메달 3개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에서 인상, 용상, 합계 1위를 싹쓸이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장미란은 현역 시절 총 4차례(2005년 카타르 도하·2006년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2007년 태국 치앙마이·2009년 한국 고양시)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다. 그러나 이 기간 인상 1위 자리는 다른 선수에게 내줬다.
세계선수권에서 이름을 떨친 박혜정은 아시안게임에서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바야흐로 박혜정의 시대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역도연맹 페이스북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