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현석 기자) 2030 월드컵 개최지가 발표된 가운데, 공동 개최지로 포함된 남미 국가들에서 열리는 개막 후 첫 세 경기에 걸리는 팀들은 굉장한 이동 거리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평의회를 열어 2030 월드컵 개최국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를 선정했다고 5일 발표했다.
7년을 남겨둔 2030 월드컵을 앞두고 개최지 후보로는 두 개의 국가 그룹이 경쟁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두 나라와 가까운 모로코가 한 팀으로 유치에 나섰고, 역사상 첫 월드컵 개최지인 우루과이와 함께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가 한 팀으로 월드컵 100주년 기념을 내걸고 월드컵 유치를 노렸다.
FIFA는 개최국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로 선정하면서도 월드컵 100주년 기념의 역사를 축하하기 위해 남미 국가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바로 월드컵 첫 세 경기를 유치를 추진한 우루과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가 홈에서 치를 수 있도록 하게 된 것이다.
이는 FIFA가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공동 개최권을 부여한 이후 가장 많은 국가들이 개최지가 되는 월드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26년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도 한일 월드컵보다 한 개 나라가 늘어난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이 개최한다. 다만 개최국이 많아지는 만큼, 기존 한 국가에서 진행될 때보다 경기 진행 과정이나, 경기 진행을 위한 이동 거리도 늘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FIFA는 이번 결정으로 대회 흥행을 위한 유럽 유치와 월드컵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남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며 대회의 의미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인판티노 회장은 "남미에서 월드컵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남미 3개국에서 각각 한 경기씩을 연다"면서 "이곳들에서 열릴 세 경기 중 첫 경기는 모든 것이 시작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갈라진 세계에서 FIFA와 축구는 하나가 되고 있다"는 말로 이번 결정의 정당성도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영국 매체에서는 남미 팀과의 개막 3경기에 포함될 경우 잉글랜드 대표팀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난색을 보였다.
영국 매체 더선은 5일 "2030 월드컵이 3개 대륙에서 열리며 잉글랜드는 13000마일(약 2만 900km) 여정에 직면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더선은 "2030 월드컵은 3개 대륙, 6개 국가에서 개최된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첫 경기를 치르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차례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해당 게임에 참가하는 6개 팀은 바다를 횡단해야 하고, 나머지 토너먼트를 위해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로 향하게 된다"라고 경기 진행 방식을 설명했다.
이어 "잉글랜드도 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는데, 그들이 첫 경기를 위해 남미로 이동한다면 6500마일(약 1만 450km)을 이동해야 한다. 이후 다시 남은 조별리그 경기를 위해 동일한 거리를 이동해 유럽으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이동 거리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해당 거리는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짧은 기간 내에 치러지는 월드컵 특성상 선수들은 장시간 비행으로 컨디션과 경기력에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미에서 기다려서 경기를 치르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 팀과 달리 경기를 위해 남미로 이동 후 유럽으로 다시 떠나야 하는 팀들은 훨씬 더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잉글랜드가 2만 km 가까이 이동하는 것은 한국과 비교하면 약과다. 한국에서 남미 3개국 중 가장 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비행거리가 편도로만 1만 9000km 수준으로 한국 대표팀이 배정된다면 무려 3만 km 이상을 이동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6개국 개최에 이어 영국 공영방송 BBC에 따르면 FIFA는 오는 2034년 개최지 선정 때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만 유치 신청 받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에 따라 최근 '스포츠 워싱' 논란에서 축구와 골프 등에 거액을 쓰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올해 여자 월드컵 공동 개최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은 호주-뉴질랜드 공동 개최 등도 가능할 전망이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축구연맹은 4일 성명을 통해 "사우디에서 진행 중인 사회 경제적 변신과 뿌리 깊은 축구에 대한 열정의 영감을 끌어내 세계 수준의 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월드컵 축구대회 단독 유치 추진 선언은 2030년 대회 개최지를 발표한 FIFA가 2034년 대회 개최지로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국을 거론한 직후 나왔다. 앞서 사우디는 이집트, 그리스와 함께 2030년 월드컵 3대륙 공동 유치를 추진했으나, 경쟁에서 뒤처지자 지난 6월 철회 의사를 밝혔다.
사우디는 오는 2027년 아시안컵을 개최하며 2034년 아시안게임도 유치했다. 또 스포츠 행사는 아니지만 2030년 엑스포를 수도 리야드에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 네이마르 등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을 자국 1부리그에 데려와 축구 흥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AFC 주요 회원국이 본선 진출 여부에 상관 없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전역에 걸쳐서 열렸던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실제론 2021년 개최)와 비슷한 형식이다.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태국 등 동아시아와 호주의 주요 경기장을 골라서 함께 개최하는 것이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가 단독 개최 의지를 일찌감치 내비친 만큼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또 한 번 중동에서 월드컵이 열릴 가능성이 향후 주목받을 전망이다.
한편 월드컵은 오는 2026년 대회부터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본선 출전국이 늘어난다. 아직 경기 수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4개국이 12개조로 나뉘어 팀당 3경기씩 치르고 여기서 각 조 1~2위와 각 조 3위 중 상위 8팀이 32강 토너먼트에 오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기 수는 108개로 기존 64개에서 대폭 확대된다.
개최가 확정된 국가들은 경기를 치를 경기장도 정할 예정이다. 이미 결정된 경기장은 개막전이 열릴 예정인 우루과이 몬테비에도의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경기장뿐이며, 레알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결승전 장소로 유력하다고 점쳐진다.
스페인에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비롯해 메트로폴리타노 경기장(이상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홈구장인 캄노우와 RCDE 경기장(이상 바르셀로나), 누 메스타야(발렌시아), 라 카르투하(세비야), 산 마메스(빌바오), 누에바 콘도미나(무르시아), 엘 몰리나(히혼), 라 로살레다(말라가), 라 로마레다(사라고사), 발라이도스(비고), 리아조르(라코루냐)가 후보 경기장으로 리스트에 올랐다.
포르투갈에선 다 루즈 경기장, 호세 알발라데 경기장(이상 리스본), 다 드라강(포르투) 등이 후보 경기장으로 꼽혔으며, 모로코에선 프린스 물라이 압델라 경기장(라바트), 그랜드 카사블랑카 경기장(카사블랑카) 등을 신축 혹은 개축해서 쓸 경기장으로 명단에 등록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러시아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당초 공동 개최 파트너로 점찍었으나 전쟁 중이라는 변수를 고려해 결국 모로코로 최종 낙점했다. 모로코는 1990년대부터 월드컵 유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했고, 지난 1월 FIFA 클럽 월드컵을 성공 개최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월드컵을 열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에 올랐던 만큼 경기력에서도 개최국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늘어나는 경기 수에 이어 2030 월드컵에서는 남미 대륙에서 벌어지는 첫 세 경기에 포함된 국가들의 엄청난 이동 거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FIFA의 선택이 7년 후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AP, EPA, 로이터/연합뉴스, 더선
이현석 기자 digh1229@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