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스마일 점퍼' 우상혁(27·용인시청)이 환하게 웃었다. 원했던 메달 색깔은 아니었지만 아시안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에서 모든 걸 쏟아낸 희열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듯 보였다.
우상혁은 4일 저녁 8시(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주경기장(Hangzhou Olympic Sports Centre)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 출전, 12명의 선수 중 최종 2위에 오르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의 주인공은 현역 최고의 점퍼 카타르의 무타즈 에사 바르심이었다.
우상혁은 결승전 종료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면서 2m33을 넘는 걸 집중했다. 그 다음 내 개인 최고 기록인 2m35 이상인 2m37을 넘어 한국 신기록까지 생각했다"며 "아쉽지만 내년 파리올림픽 바로 있기 때문에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상혁은 지난 2일 남자 높이뛰기 예선을 가볍게 통과했다. 2m15를 가뿐하게 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도 2m10부터 2m15, 2m19, 2m23, 2m26, 2m29, 2m31까지 모두 1차 시기에 성공하면서 금메달을 향한 질주를 이어갔다.
이날 결승은 2m29부터 더욱 박진감 있게 전개됐다. 우상혁, 바르심, 토모히로가 모두 1차 시기에서 성공한 가운데 인도의 사베쉬 안일, 태국의 케오담 타완이 1~3차 시기 모두 실패하면서 시상대에 오를 3명이 결정됐다.
메달 색깔은 2m31부터 주인이 정해졌다. 우상혁은 이 높이를 1차 시기에서 가뿐히 성공시킨 뒤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며 포효했다. 바르심도 1차 시기에서 이 높이를 넘고 흥겨운 세리머니를 펼쳤다. 토모히로는 2m31을 1~3차 시기 모두 실패하면서 탈락과 동시에 동메달을 가져갔다.
이제 결승은 우상혁, 바르심 두 사람의 대결로 압축됐다. 아시안게임이 아닌 세계선수권, 올림픽 같은 긴장감이 그라운드에 형성됐다.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진검승부에 경기장을 가득 메운 7만여 관중은 환호했다. 모든 시선이 우상혁, 바르심에 집중됐다.
우상혁, 바르심은 2m33을 1차 시기에서 나란히 성공했다. 수준 높은 점프가 이어지면서 경기장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2m35를 뛰기 전 번갈아 가며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함성을 유도했다.
희비는 2m35에서 갈렸다. 바르심이 1차 시기에서 곧바로 성공시킨 반면 우상혁은 점프 과정에서 바를 건드렸다. 바르심이 금메달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우상혁은 이후 바를 2m37로 높이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1~2차 시기 모두 바를 건드려 2m35 1차 시기 실패에 이어 3회 연속 실패로 바르심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바르심도 2m37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넘지 못했다.
우상혁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어 대회 2연속 은메달을 수확했다. 비록 바르심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바르심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우상혁은 "바르심 선수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내 기량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흥미롭고 재밌다"며 "내가 좋아하는 높이뛰기를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바르심 선수도 내가 앞 순번에서 뛰었기 때문에 의식을 많이 했을 거다. 덕분에 서로 시너지를 얻어서 잘 넘을 수 있었다"며 "서로 의욕을 끌어올리면서 2m33까지 1차 시기에 넘은 것 같다. 2m35도 그렇게 넘었어야 했는데 아쉽게 못 넘고 2m37도 넘었으면 좋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었다. 파리 올림픽까지 꼭 이 기록을 넘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금메달 획득은 불발됐지만 우상혁의 아시안게임 2연속 은메달도 대단한 성과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4년 인천 대회에서 처음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은 뒤 10위에 올랐던 가운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올해 항저우 대회에서 연이어 아시아 2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지난달 17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3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남자 높이뛰기 경기에서 2m35를 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기량이 '월드 클래스'라는 걸 입증한 상황에서 바르심과 남자 높이뛰기 '원투펀치'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다. 자신이 우러러봤던 존재 바르심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4위에 오른 경험을 발판으로 내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입상권 진입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이 성장했다.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져 큰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고 뛸 수 있는 강심장도 갖춰졌다.
우상혁 스스로도 달라진 위상만큼 여유가 생겼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 즐기는 점프보다 압박감 속에 뛰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별명처럼 웃으며 트랙 위를 누비고 있다.
우상혁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영상을 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떴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웃은 뒤 "지금은 너무 여유 있게 뛰는 것 같다. 그때는 강박, 압박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높이뛰기를 즐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높이뛰기를 즐길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파리올림픽까지 300일도 남지 않았는데 다시 준비를 철저히 해서 바르심 선수와 다른 선수들까지 내가 다크호스로서 무섭게 만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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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