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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만 뜁니다'…1번 영자 양재훈, 역사적 금메달 '조연 아닌 주연'이었다 [항저우 리포트]

기사입력 2023.09.26 09:24 / 기사수정 2023.09.26 09:24



(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개인전 없이 계영만 치르는 양재훈(25·강원도청)이 한국 수영 최초의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주역으로 우뚝 섰다.

남자 계영 800m만을 바라보고 이번 대회를 준비했던 가운데 예선, 결승 모두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한국 수영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한 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양재훈, 황선우(20), 김우민(21·이상 강원도청), 이호준(22·대구시청)이 호흡을 맞춘 한국 남자 계영 대표팀은 25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수영장(Hangzhou Olympic Sports Centre aquastic sports arena)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800m 계영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완벽'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다. 7분01초73의 아시아신기록을 수립하고 강력한 경쟁자였던 중국(7분03초40)을 따돌렸다. 

계영 800m 종전 아시아 기록(7분02초26)은 일본이 갖고 있었다. 2009 로마 세계선수권 이후 14년 동안 아시아 국가 누구도 넘어서지 못했던 아시아 기록을 한국 수영의 '황금세대'들이 갈아치웠다.



한국은 이날 결승전에서 지난 7월 일본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때와는 다른 전략을 들고나왔다. 그동안 국제대회 계영 800m에서 에이스 황선우를 첫 번째 영자로 배치했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순서를 바꿨다. 에이스 황선우를 마지막 영자에 두고 양재훈-이호준-김우민이 황선우 앞에서 먼저 레이스를 펼쳤다.

사실 파격적인 전략이었다. 가장 잘하는 황선우를 맨 마지막에 배치한 것을 이해할 수 있어도 기록이 가장 떨어지는 양재훈을 1번으로 내세우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였다. 수영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출국 전 귀띔했던 깜짝 전략이 바로 양재훈 1번이었다.

그러나 양재훈은 우려를 환호로 바꿨다. 1번 영자로 나서 최고의 레이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던 단거리 강자 판잔러와 왕하오위 외에 24일 남자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딴 미남스타 왕순까지 결승전 1번 영자 히든카드로 들고나와 한국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했다.



양재훈은 밀리지 않았다. 첫 50m 구간에서 24초92를 기록, 왕순(24초69), 일본의 마노 히데나리(24초66)의 뒤를 이어 3위로 출발했다. 이후 100~150m 구간에서 마노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뒤 200m 구간까지 순위를 유지, 이호준에게 바통을 넘겼다.

양재훈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계영 800m 결승에서 자신의 몫이었던 200m 기록은 1분46초83이었다. 지난 7월 일본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이 종목 결승전에서 3번 영자로 나와 기록했던 1분48초35보다 2초 가까이 단축시키며 중국, 일본 선수들 사이에서 분전한 것이었다. 2번 영자로 지난 7월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결승에 진출했던 이호준이 금세 뒤집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금메달 극장 주연이 됐다



2번 영자 이호준은 기대대로 400m를 통과할 때 기록은 3분32초19를 기록, 중국의 3분32초64보다 0.45초 빨랐다.

그리고 3번 영자 김우민이 전날 남자 자유형 1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왕하오위와 격차를 크게 벌렸다. 한국은 김우민이 자신의 레이스를 마쳐 600m 지점에 다다랐을 때 5분16초69를 찍어 중국의 5분18초63보다 1초94나 앞서며 금메달에 성큼 다가섰다. 여기서 사실상 승부가 끝났다.

마지막 영자 황선우는 중국 단거리의 강자 판잔러의 추격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한국은 중국을 1.67초 차로 누르고 계영 800m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 후 중국이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있었던 가운데 이날 자유형 50m에서 지유찬과 계영 대표팀이 중국의 독주를 저지했다. 

스포트라이트는 금메달 순간 터치 패드를 찍은 황선우에게 쏠렸지만 계영 800m 우승은 첫 번째 영자로 나선 양재훈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2개월 사이 2초 가까이 기록을 줄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스 조절도 완벽했다. 양재훈은 이날 오전 열린 계영 800m 예선에서 세 번째 영자로 나섰다. 기록은 1분49초00으로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결승이 아니었던 만큼 전력을 쏟을 필요는 없었다. 체력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운영을 펼쳤고 결승전에서는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고 한국의 아시아기록 경신과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SBS 해설위원으로 나선 '마린보이' 박태환도 "모든 선수들이 다 잘해줬지만 특히 양재훈 선수가 정말 잘했다"며 한국 수영의 역사를 새로 쓴 후배를 치켜세웠다. 이호준 부친 이성환 씨도 "우리 아들도 잘했지만 정말 잘한 선수는 양재훈이었다"며 박수를 보냈다.

양재훈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계영 800m만 참가한다. 오직 이 종목에만 초점을 맞추고 구슬땀을 흘렸고 금메달이라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계영 800m 결승전 종료 후 양재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현장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믹스트존 인터뷰는 TV 중계, 취재 기자 순서로 이뤄진다. 방송 인터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선수들이 시상식 준비를 위해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임박했고 선수들은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한 뒤 믹스트존을 떠났다.




공식 기자회견도 금메달의 한국, 은메달의 중국, 동메달의 일본 선수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진행됐다. 시간 제한이 있었던 탓에 3개국 12명의 선수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없었다. 

양재훈은 짧게 이번 대회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는지 말했다. "중국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 후 수영 종목에서 계속 잘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속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중국을 의식해)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은 없었다"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남자 계영 800m 대표팀은 아시아 기록 수립,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기운을 받아 내년 여름 파리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올해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계영 800m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영국(6분59초08), 은메달을 가져간 미국(7분00초02)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큰 게 사실이지만 동메달을 딴 호주(7분02초13)의 기록을 넘어선 만큼 더 큰 무대에서 또 한 번 시상대에 오르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진=중국 항저우, 김한준 기자/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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